[그 영화 어때] 박정희 대통령도 보다가 한숨쉴 박정희 다큐 호소 영상물 ‘그리고 목련이 필 때면'
안녕하세요, 조선일보 문화부 신정선 기자입니다. ‘그 영화 어때’ 83번째 레터는 15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그리고 목련이 필 때면’(이하 ‘목련’)입니다.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일대기를 다뤘다고 주장하는 영상물이죠. 김흥국씨가 제작과 홍보를 맡았습니다. ‘그 영화 어때’ 정기 발송이 목욜인데, ‘목련’ 첫날 성적 넣어 보내드리자 싶어 이번주는 금욜자가 됐습니다. 15일 3888명이 관람해 박스오피스 16위네요. ‘목련’ 수준이 어떻든 박정희 대통령을 스크린에서 만나고 싶은 관객이 찾아준 결과인 것 같습니다. 지난달 19일 여의도 국회에서 시사회를 했고, 지난 9일 정식으로 언론 시사회를 했습니다. 12일자 저희 지면에 리뷰 기사를 짧게 썼는데 오늘 레터에서는 국회 시사와 언론 시사를 비교해보고, 지면에 못 다 쓴 내용까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정치색을 떠나서, 현재 영화 시장에서 이 영상물의 개봉은 유의미한 지점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건국전쟁’ 흥행 성공의 후광을 노리는 ‘다큐 호소 영상물’이 이후로도 계속 나올테니까요.
12일 월욜에 ‘목련’ 리뷰 기사가 나가고 아침부터 몇 분께서 문자를 보내주셨습니다. 요약하면 “고맙다”는 말씀들이었습니다. “알면서도 다들 말을 못하고 있었다”는 분도 계셨고요. 뭘 아느냐. ‘목련’이 매우 부실한 결과물이라는 것이죠. 15일 관객 중에 티켓값을 다 내고 보신 분이 계신다면 제 안타까움을 전해드립니다. 가끔 영화 보면서 “이건 본다고 돈을 낼 게 아니라 봐줬으니 돈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목련’이 딱 그랬습니다. 관람료뿐 아니고 오가며 발생한 교통비며 시간과 에너지 투입에 대한 기회비용까지 관객에게 돌려줘야 하는 수준입니다. 만약 관람 전 기대가 컸다면 정신적 보상까지 포함돼야겠네요. 주관람층이 어르신들이라서 특히 더 그렇습니다.
지면 리뷰는 언론 시사 때 버전에 바탕해서 썼는데, 지난달 국회 시사 때는 더 심각한 수준이었습니다. 총체적 난국이었다라고밖에 표현을 못하겠네요. 분위기는 반대로 최고조였는데요, 장소가 의원회관 대회의실이었으니 500명 정도면 꽉 차는 곳인데 사람이 하도 많아 보조의자를 놓고도 부족할 정도였습니다. 자리가 없어 저는 통로에 앉아 봤습니다. 알고보니 국민의힘 당원들이 대거 참석했더군요. 그래서인지 당 대표에 출마한 후보 두 명이 와서 상영 중간 휴식 시간에 지지 호소 연설도 했습니다. ‘목련’ 제작과 홍보를 맡은 김흥국 대표가 상영 시작 전 마이크를 잡고 “이렇게 많이 오신 걸 보니 눈물이 날 것 같다, 감격스럽다”며 분위기를 띄웠습니다. 터지는 박수, 뜨거운 열기. 여기까지는 좋았습니다. 그런데.
상영 5분도 지나지 않아 “이건 뭐지?”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도입부에 대뜸 제시하는 내용부터 그랬습니다. “육영수 여사의 부친은 첩이 3명이나 있었고, 첩 중 2명은 심지어 친자매였다.” 팩트이긴 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그게 육 여사를 조명하는 다큐에서 제일 먼저 앞세우고 싶은 내용? 이후에 어찌 풀어가려고 이것부터? (육영수 여사 부친의 처첩 싸움은 이후에도 다시 강조됐습니다) 이후 전개된 내용은 의구심을 더 키웠습니다. 특히 전체 분량 중 30% 가량이라는 재연 장면은 보다가 못 견디고 눈을 감고 싶어지더군요.
박 대통령이 1940년 4월 만주국육군군관학교 입교할 때부터가 재연에 담기는데, 크로마키 배경 영상이 연기하는 배우들에 녹아나지 못하고 동동 뜨는 조악함이라니. 아마추어 영화 아카데미 학생이 만들어도 이 정도는 아니겠다 싶었습니다. 그 와중에 진지한 배우들 연기, 그럴수록 커지는 괴리감. 나레이션은 또 어찌나 장중한지. 고두심씨와 현석씨가 번갈아하는데 낭독한다기보다 부르짖는다 싶을 때가 많았습니다. 자료 영상 부족 탓인지 맥락과 무관한 장면을 돌려막기로 반복해 보여주고. 일부 ‘배우’들은 전문 배우가 아닌 듯 시선 처리부터 너무나 어색해 보는 제가 불안해질 정도였습니다. 사운드 설비 탓인지 일부 재연 장면은 음향이 제대로 안 잡혀 귀까지 불편해지고. 오죽하면 제 옆쪽에 계시던 한 어르신이 그러시더군요. “아이구, 편집 많이 해야겠다.” 어르신, 과연 편집만의 문제일까요. 어느모로 봐도 도저히 견적이 안 나오는걸요.
박정희 대통령 다큐를 기다리고 있을 관객 입장에서 봤을 때, 내용상 가장 큰 문제는 박정희와 육영수 비중이 너무 적다는 점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 이후 해방정국 역사가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데 80여분 중에 후반부에 이르러서야 박 대통령이 언급되는가 싶었으나 곧바로 1026으로 넘어가고 국민이 오열합니다. 제작자가 강조하고 싶었을 업적 부분은 나레이션으로 황급히 처리하고 끝. 그 정신 없는 와중에도 김흥국 대표가 비장한 표정으로 박 대통령 유품을 둘러보는 장면은 챙겨 넣었고. 육 여사 시신을 붙잡고 박 대통령이 오열하는 연기는 지금 생각해도 민망하네요. 배우들만의 문제로 말씀드리기에는 대본과 연출이 모두 부재한 상황. 이날 시사 끝나고 비판이 빗발쳤다고 들었습니다. 도저히 개봉이 가능한 수준이 아니었으니까요. 김흥국 대표도 “많이 고치겠다”고 할 정도였으니.
그렇다면 언론 시사 때는 어땠느냐. 국회 시사 때보단 나았습니다. 도입부도 육 여사 부친 축첩 강조에서 한강의 기적 언급으로 바뀌었고요. 재연 부분은 대거 삭제했더군요. 김흥국 대표 출연분도 들어냈고요. 그래도 근본적인 문제를 털어내진 못했어요. 치밀한 연구로 논란을 돌파하던지, 새로운 사실을 제시하던지, 이야기를 재미있게 구성하던지 뭐가 됐든 한 방향으로 감독의 뚜렷한 비전이 있었어야 하는데 어느 쪽도 아니었으니까요.
‘목련’의 본격적인 촬영이 4월부터 시작된 걸로 들었는데, 개봉까지 불과 넉 달 남짓이었으니 그 안에 뭐를 제대로 할 수 있었겠습니까. 다른 인물도 아니고 박 대통령을 다루면서, 이렇게 얼렁뚱땅 접근해서 무엇을 얻으려 한 걸까요. 김흥국 대표는 “육 여사 서거날인 8월15일에 개봉을 맞추고 싶었다”고 하던데, 그렇다고 이렇게 만들다 만 것 같은 상태에서 개봉하는게 맞는 판단이었을까요. 판단을 떠나 무엇보다 관객에 대한 예의인걸까요. 정치판에선 북을 둥둥 두드리면서 구호를 외치면 사람이 모이겠지만, 여기는 영화판입니다. 제작자는 티켓을 산 관객에게 그에 값하는 가치를 돌려줘할 의무가 있습니다. 봉준호 감독 영화도 개봉하면 1만5000원이고, ‘목련’ 같은 다큐 호소 영상물도 동일하게 1만5000원이에요. 어떤 관객은 그저 박 대통령의 자료 화면 몇 장만 봐도 만족할지 모르겠지만, 상당수 많은 이들은 “박정희 보여준다더니 이게 뭐냐, 속았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제작비가 적었던 탓은 아닌 것 않습니다. 김흥국 대표가 밝힌 제작비는 “2~3억 정도”인데, ‘건국전쟁’이 그 정도거든요. 다큐도, 아니 다큐는 특히, 감독을 포함한 제작진의 시각이 중요합니다. 인물에 어떻게 접근하는지 방향성에 따라 같은 인물이 완전히 다르게 보일 수 있으니까요. 언론 시사 버전에서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 가장 자주 언급된 단어는 ‘울보’입니다. “박 대통령은 울보였다”는 말을 대여섯번 들은 것 같네요. 박정희라는 인물을 조명하면서 가장 강조하는 포인트가 ‘울보’라니.
언론 시사 직후에 열린 간담회에서 김흥국 대표와 윤희성 감독의 발언은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짐작하게 해주더군요. 윤 감독은 “이게 완성본이 아니다, 개봉일에 맞추느라 워낙 급했다”며 “좀 창피할 정도로 어설프다”고 말하시던데, 듣던 귀를 의심했습니다. 그럼 이거 무료로 상영하는 건가요. 왜 관객이 돈을 내고 아직 작업이 끝나지도 않은 영상물을 봐야합니까. 김흥국 대표는 한 술 더 떠 “이런 영화는 관객이 같이 만들어가는 거다, 많이 보시고 의견을 달라”고 하던데 아니, 왜 관객이 시간과 에너지를 투입해 극장까지 와서 돈까지 내고 이걸 본 후에 의견까지 줘야하는 건지,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고 설득이 되는 작품이라고 당당하게 주장하실 수 있는건지.
만든 감독도 “어설프다, 창피하다”고 하는 수준인데도 김흥국 대표는 “MZ 젊은 세대분들도 같이 보고 사랑받고 싶다”, “보수 다큐 영화가 사랑받아서 (다큐 최고) 기록을 깨고 싶다” “마동석이 봐주면 천만 간다”고 하셨는데, 들을수록 답답해지더군요. 저랑 같은 영상물 보신 거 맞습니까. ‘MZ 젊은 세대분들’의 눈높이가 얼마나 높은지 아시는가요. 가장 황당했던 발언 중 하나는 마치 영화 한 편이 도깨비 방망이 휘둘러서 나올 수 있는 것처럼 “안 그래도 밤새 작업해둔 (괜찮은 버전의) 편집본이 따로 있다” “개봉일까지 가능하면 다시 편집해보겠다”고 하던 말이었습니다. 영화 한 편을 만들기 위해 수년의 땀과 눈물을 쏟아붓는 사람들은 밤을 샐 줄 몰라서 그랬겠습니까. 개봉까지 수일 남은 시점에서 언제 편집을 다시 하고 언제 등급심사를 다시 받겠다는 건지. 영화판을 너무 쉽게 보시는 거 아닌가요. 관객을 정당 당원처럼, 깃발 흔들어 동원할 수 있는 인력으로 보시는 건 아닌지요.
저를 슬프게 하는 건, 그럼에도 박정희 대통령 다큐라고만 듣고 ‘목련’을 보겠다고 극장을 찾을 관객이 있을 거라는 점입니다. 주위에 그런 분이 계시다면 차라리 KTV 국민방송을 권해주세요. 어차피 ‘목련’의 영상 중 상당수가 워터마크도 제대로 지우지 않은 KTV 화면입니다. 김흥국 대표의 주장과 달리, ‘목련’을 봐준다고 해서 ‘보수 우파’에 도움이 될 것 같지도 않습니다. 그 반대가 오히려 성립하겠죠. 이념을 내세워서 관객을 모으려는 생각부터가 잘못된 출발점이고요. 최고의 창작자들이 전부를 쏟아서, 모든 걸 바쳐서, ‘이 정도면 최선’이라고 생각되는 시점에 선보여도 관객에게 외면당할 수 있는게 상업 영화 시장입니다.
이념 차치하고, 박정희와 육영수라는 인물은 영화적으로 풀어낼 지점이 많습니다. 이보다 더 극적이고 더 논쟁적인 인물이 몇 명이나 될까요. 무엇보다 영화로 만들어진 적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창작자라면 욕심낼 여지가 풍부하지 않나 싶습니다. 육영수 여사는 같은 여자 입장에서 봤을 때 ‘어떻게 그렇게 살았지’ 싶은 일화가 여럿이더군요. 적어도 ‘목련’ 같은 다큐 호소 영상물 수준보단 영화적으로 정당한 평가를 받을 작품이 나오면 좋겠네요. 오늘은 좀 답답한 레터였습니다. 다음 레터는 좀 더 재밌는 얘기로 뵐게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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