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치 속 굶주리며 죽어간 동물들이 남긴 ‘숫자 1’[동물 과학수사 연구소 ②]
편집자주
동물학대 범죄에 대한 사회의 관심은 여느 때보다 높습니다. 그러나 2022년 경찰청,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검찰에 송치되는 사건은 55.7%에 그치고, 그나마 송치된다 하더라도 법정에 기소될 확률은 31.9%에 그칩니다. 불송치, 불기소 사유 대부분은 ‘증거 불충분’.
동물은 말을 할 수 없어서 피해를 구체적으로 증언할 수 없습니다. 더군다나 학대당한 동물 상당수는 이미 숨을 거둔 뒤이기에, 증거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과학수사’가 더 필요합니다.
그러나, 한국의 ‘동물 과학수사’는 이제 시작 단계입니다. 그래서 동그람이는 지금까지 동물 부검이 범행을 입증하는데 성공하고 또 실패한 사례를 탐색해 보기로 했습니다. 이를 통해 동물학대 수사에 무엇이 필요한지, 앞으로 어떻게 동물 부검 체계가 나아가야 할지 우리 사회가 고민할 기회가 되기 바랍니다.
그 광경은 매우 비현실적이었다. 지난해 3월의 평온한 토요일이었다. A씨는 잃어버린 반려견을 찾으러 경기 양평군의 한 마을을 뒤지고 있었다. 그러던 도중 한 집 근처에 다가갔을 때부터 코를 찌르는 이상한 냄새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믿을 수 없었다. 쓰레기장을 방불케 하는 폐가 사이사이에 개로 추정되는 동물 사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던 A씨는 양평 주민들이 모인 ‘양평 개와 고양이를 생각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단체대화방에 ‘도와주세요’라는 말만 남길 수밖에 없었다. 대화방 사람들이 ‘사진을 찍어서 보내달라’고 말하자 정신을 차리지 못하던 A씨는 무언가에 홀린 듯 집안 곳곳을 사진과 영상으로 찍어서 단체대화방으로 보냈다.
그 사진과 영상을 보고 동물권단체 ‘케어’도 현장을 찾았다. 하지만 그들도 비현실적인 광경을 마주하고는 다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 사건은 경찰이 제대로 수사를 해야 할 정도의 규모였다. 경찰도 이 정도로 많은 동물 사체는 처음 목격했다. 눈으로 어림짐작한 사체 숫자는 약 400마리. 그러나, 약 3일간 현장을 수습하며 확인한 동물 사체들은 1,256마리였다. 그 해 상반기 시민들을 경악하게 한 ‘양평 동물 대량학살 사건’의 시작이었다.
부검을 의뢰받은 농림축산검역본부 질병진단과 이경현 수의연구관은 가장 먼저 사체의 영양상태를 확인했다. 사건 내용이 ‘방치’라는 말을 먼저 들은 까닭이었다.
동물이 방치된 유형의 사건에서 가장 먼저 생각해 볼 상황은 물과 영양분이 공급되지 않아 동물이 굶주렸을 가능성입니다. 이때 확인해야 하는 게 신체충실지수(Body Condition ScoreㆍBCS)입니다.
이경현 농림축산검역본부 수의연구관
반려동물 보호자 사이에서 BCS는 흔히 체중조절을 할 때 언급되는 지표다. 육안상 갈비뼈가 드러나 보이는지, 체지방량이 어느 정도인지를 종합적으로 평가해 단계별로 나눈다. 세계소동물수의사회(World Small Animal Veterinary AssociationㆍWSAVA)는 BCS를 1(극도 쇠약)에서 9(고도비만)로 나눠서 평가한다. 정상 범위는 4~5다.
그렇다면 이 사건으로 부검 의뢰된 동물들의 BCS는 어느 정도였을까. 1,256마리 중 상당수의 동물들은 이미 백골화가 진행된 상태였다. 통 속에서 방치된 까닭이 컸다. 그나마 상태가 확인 가능한 사체에서 측정한 BCS는 최소 1에서 최대 3 수준. BCS 1은 갈비뼈와 허리뼈, 골반뼈가 멀리서도 육안으로 쉽게 보일 정도를 말한다. 소위 ‘피골이 상접하다’는 말 그대로의 상태. 누군가는 반려동물의 과체중을 걱정하며 따져보는 BCS지만, 이 동물들에게는 생존을 다투는 숫자였던 것이다.
경찰 수사 결과, 이곳은 반려동물 번식장과 경매장에서 ‘악성 재고’ 취급받은 동물들의 종착지였다. 사체가 발견된 집주인 B씨는 3년 전인 2020년부터 번식장 개들을 집으로 데려와 방치했다. 그가 개를 데려오는 대가로 받은 돈은 한 마리에 1만원 수준. 사료값도 안 되는 수준의 돈을 받고 데려왔으니, 제대로 된 사료를 줬을 리 만무했다. 불어나는 개체 수를 조절하기 위한 중성화 수술도 당연히 없었다. 그 정황도 이 연구관의 눈에 들어왔다.
내부 장기가 확인된 16마리 중 임신 상태에서 목숨을 잃은 동물들도 일부 있었습니다. 30여 마리는 태어나자마자 세상을 떠나기도 했습니다.
이경현 농림축산검역본부 수의연구관
수도 없이 많은 동물들이 좁은 공간에서 모여 산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비극을 부른다. 먹이와 같은 생존에 필요한 자원이 부족한 까닭이다. 애니멀 호더(Animal Hoarderㆍ동물 저장강박증)가 동물학대 중 하나로 분류되는 이유다. 양평 사건처럼 돈을 목적으로 하지 않더라도 우리 주변에는 종종 애니멀 호더가 사회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를 확인할 수 있다.
지난 2022년 7월, 대구에서 발생한 사건도 그랬다. 대구 남구의 한 빌라에서 17마리로 추정되는 고양이들이 발견됐다. 당시 빌라 주민들은 “문 앞에 벌레들이 들끓고, 악취까지 난다”며 경찰에 신고했다. 이미 신고가 들어가기 1년 전부터 주민들 사이에서는 굶주린 고양이가 창문 틈을 이용해 탈출했다는 목격담이 돌기도 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빌라 문을 강제로 열자 끔찍한 광경이 나타났다. 현관에 엉켜 있는 고양이들의 사체 뒤로 썩은 냄새가 진동했다. 집을 비운 빌라 거주민은 사건 발생 약 1주일 뒤에야 모습을 드러냈다. 경찰 조사과정에서 그는 “개인 사정 때문에 약 3개월간 집을 비웠다”며 “고양이를 몇 마리 키우는지도 모른다”고 답했다.
고양이들이 어떤 처지였는지 집주인조차도 말할 수 없는 상황. 도대체 그 좁은 방에 있던 17마리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애니멀 호더 사건의 또다른 공통점에 대해 이 연구관은 이렇게 설명했다.
갯과 동물이나 고양이과 동물처럼 육식동물의 경우 송곳니가 뾰족하고 긴 편이라 다른 동물을 공격할 때는 표시가 남습니다. 특히 송곳니 간격이 동물마다 차이가 있어 이빨 사이의 간격을 통해 동물의 종을 추정해볼 수도 있습니다.
이경현 농림축산검역본부 수의연구관
실제로 부검 의뢰된 17마리 사체 중 6마리의 사체에서는 이 연구관이 말한 ‘송곳니 자국’이 확인됐다. 사인조차 확인할 수 없는 백골화된 사체에서 선명하게 새겨진 송곳니 자국이 말하는 것은 단 하나였다. 사체 섭식.(Animal scavenging) 먹이를 주는 사람 없이 굶주림 끝에 서로의 사체를 뜯어먹은 것이다.
법원은 양평 사건 범인 B씨에게 징역 3년, 동물보호법 위반 사범에게 내릴 수 있는 최고 형벌을 선고했다. 사건이 잊히지 않도록 서울 한복판에서 동물 위령제까지 개최한 양평 군민들의 염원을 받아들인 것이다.
재판부는 판결을 내리며 “피해 동물 개체 수가 너무 많다”고 말했다. 물론 숫자로만 보면 1,256마리와 17마리는 큰 차이가 날 지도 모른다. 그러나 범행동기도 다른 두 사건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공통점 한 가지는 있었다. 반려동물은 사람이 책임 없이 어딘가에 방치된다면, 그곳은 결국 그 동물에게 가장 잔인한 무덤이 된다는 사실. 동물보호법이 보호자의 관리 책임을 묻고 있는 이유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73116290003245)
정진욱 동그람이 에디터 8leonardo8@naver.com *자료제공 = 농림축산검역본부 질병진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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