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젤렌스키가 말렸지만...“해저 가스관 폭파, 우크라 총사령관이 강행”
2022년 9월 유럽 에너지 위기를 유발한 노르트스트림 가스관 폭발사건은 러시아가 아닌 우크라이나군 관계자가 지휘해 수행한 작전의 결과라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4일(현지시각) 보도했다.
WSJ는 이 작전에 참여했거나 내용을 직접적으로 알고 있는 우크라이나 국방·보안 고위관료들을 인용해 노르트스트림 폭발의 전말을 상세히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노르트스트림 가스관 폭발 작전은 발레리 잘루즈니 당시 우크라이나군 총사령관의 지휘로 민간 자금을 지원받아 진행됐다.
작전을 계획한 건 2022년 5월이었다. 당시 러시아의 침공을 버텨낸 전과를 자축하기 위해 우크라이나군 고위 장교와 사업가 등이 모인 자리에서 누군가 노르트스트림 가스관 파괴 공작을 제안했다.
노르트스트림은 러시아와 독일을 잇는 발트해를 통과하는 해저 가스관으로, 러시아는 이를 통해 서유럽에 천연가스를 공급하며 전쟁 비용을 충당해왔다.
애초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이 작전을 승인했다. 보안 유지를 위해 모든 논의와 준비는 서류 없이 구두로 이뤄졌다.
하지만 미 중앙정보국(CIA)이 이 계획을 알게 됐다. 미국 당국 관계자들은 이를 독일에 알리는 한편 CIA는 젤렌스키 대통령에 노르트스트림 폭파 작전을 중단하라고 경고했다.
경고를 받은 젤렌스키 대통령은 잘루즈니에게 작전 중단을 명령했으나, 잘루즈니는 작전을 강행했다.
폭발 작전에는 우크라이나 현역 군인과 전문지식을 가진 민간인 등 6명으로 구성된 팀이 참여했다. 이들 중에는 심해잠수사와 여성 1명도 포함됐다. 이들은 배 한 척을 타고 가스관에 접근해 작전을 수행했다. 여성 팀원은 잠수 능력도 있지만 이들 팀이 놀러 온 친구 일행처럼 보이도록 하는 역할도 맡았다.
작전에 들어간 비용은 30만달러(약 4억원)로, 우크라이나 사업가가 이를 지원했다. 한 작전 참가자는 이 작전을 ‘민·관 협력’이라고 표현했다.
2022년 9월 어느날 잠수사들은 두명씩 짝을 지어 바다로 들어갔다. 이들은 타이머가 달린 기폭 제어장치에 연결된 HMX라는 폭발물을 설치했다.
이들이 다녀간 뒤 2022년 9월26일부터 덴마크와 스웨덴의 배타적경제수역(EEZ) 내 해저에 설치된 노르트스트림-1과 노르트스트림-2 가스관 4개 중 3개가 연이어 파손됐다.
작전에 참여한 요원들은 독일을 떠나는 과정에서 배 안에 지문 등 자취를 남겼다.
이를 포착한 독일 당국은 2022년 11월 가스관 폭발의 배후에 우크라이나가 있다는 결론을 내린 뒤 지난 6월 초 용의자 중 하나로 우크라이나 특수부대원으로 의심되는 ‘볼로디미르 Z’의 체포영장을 발부해 추적하고 있다.
독일 현지 매체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에서 다이빙 학교를 운영하는 부부 스비틀라나와 예브헨 우스펜스카가 용의자로 지목됐다. 그러나 두 사람은 폭발이 일어난 깊이는 약 80m였지만 자신들이 잠수 가능한 최대 깊이는 30m라며 의혹을 부인했다.
우크라이나는 노르트스트림 폭파 연루설을 부인하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 대변인 미하일로 포돌랴크는 15일 “이런 작전은 기술적, 재정적 자원이 있어야만 가능하다”며 “폭격 당시 이 모든 조건을 갖춘 건 오직 러시아 뿐이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보안 기관의 한 고위 관리도 WSJ에 “(젤렌스키 대통령은) 제3국 영토에서 이 같은 조치를 시행하는 것을 승인하지 않았고 관련 명령을 내리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독일에서도 신중론이 나왔다. 독일 야당 CDU 소속 로데리히 키제베터 의원은 라디오 방송을 통해 “모든 단서가 우크라이나를 향하는 것은 여러 이해관계나 허위 정보 때문일 수 있다”며 “여전히 모호한 상황이라 이런 정보는 ‘거짓 깃발’ 작전, 즉 우크라이나에 책임을 떠넘기려는 시도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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