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보구의 빨간벙커] 리디아 고가 보여준 '미증유의 게임'
[골프한국] 시대를 풍미하고 전설이 된 천재의 이야기는 종종 드라마나 영화가 되어 우리를 찾아오곤 하는데, 지난 11일 끝난 파리 올림픽 여자골프 대회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
금메달은 리디아 고 선수가 차지했는데, 그녀는 인터뷰에서 '동화 속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기분'이라고 자신의 심정을 표현했다.
그녀는 이 금메달로 세 번의 올림픽에 연속 출전하여 각기 다른 메달을 획득한 특별한 선수가 됐고, 그동안 달성하지 못한 1점을 더해 LPGA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는 최연소 선수로 기록될 것이다.
아마추어 시절부터 '골프 천재'로 알려진 리디아 고의 드라마처럼 짜릿한 이야기를 잠시 해보자.
2012년 1월, 14세의 그녀는 호주 레이디스 프로페셔널 골프투어의 뉴사우스 웨일스 오픈에서 ALPGA 최연소 우승을 하고 "역사의 일부가 되는 것은 기적과 같습니다."라는 천재가 품을 만한 오만한 인터뷰를 한다.
그해, LPGA 대회인 2012 CN 캐나다 오픈에서 우승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는데 이때 나이가 15세 4개월이었다. 그전까지 아마추어가 LPGA에서 우승한 최연소 기록은 렉시 톰슨이 가지고 있던 16세 7개월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아마추어 신분으로 다음에 열리는 2013 CN 캐나다 오픈 대회 타이틀을 방어하게 된다. 이 기록도 LPGA 역사에 나오기 힘든 아마추어 기록이다. 그녀는 아마추어 신분으로 15번 출전한 LPGA대회에서 모두 컷 통과를 하고, 메이저 대회인 2013년 에비앙 챔피언십에서 수잔 페테르센에 이어 준우승을 한다.
이런 경기력으로 LPGA에 입성하려는 그녀에게 부족한 것은 나이였는데, LPGA의 규칙은 18세 이하의 선수는 LPGA커미셔너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월반하는 학생처럼 교장 선생님의 승인을 받은 그녀는 2014년 16세의 나이로 LPGA에 입성한다. 그해 3번의 우승을 하고, 다음 해 남녀 골프 역사상 최연소 세계 1위라는 새로운 기록을 쓴다.
이렇게 화려한 10대의 기록을 가진 그녀에게도 위기가 찾아온다. 그것이 10대에서 20대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데, 2017년을 기점으로 그녀는 그동안 축적한 모든 것과 결별하는 모험을 시도한다. 캐디와 스윙코치는 물론 그동안 사용하던 용품도 캘러웨이에서 PXG로 바꾼다. 그런 연유인지 2014년에서 2016년까지 12승을 거둔 그녀는 2017년 우승이 없는 한 해를 보낸다. 그녀의 부진이 깊어지자 그 원인을 변화를 감행한 모든 것에서 찾기도 했고 '천재'라는 수식어도 점점 사라져 갔다.
침묵이 길어지고 44개 대회만에 우승한 2018 LPGA 메디힐 챔피언십은 아마추어 시절을 잠깐 추억하는 것에 불과했다. 그리고 코로나로 셧 다운된 2020년을 지나고 2021년까지 가끔 리더보드 상위권에 오르는 평범한 선수 중 한 명처럼 보였다. 이대로라면 10대 때 보여주던 과녁을 찾아가는 화살처럼 날카롭던 퍼팅 실력을 다시는 못 볼 것만 같았다.
하지만 2022년 그동안의 부진을 만회하려는지 심기일전한 그녀는 3번의 우승으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이 시기에 약간의 변화가 감지되는데 10대 때 보이던 엘리트의 오만한 모습이 사라지고 성숙된 모습으로 변모한 온화한 표정이 화면에 비친다.
올해 LPGA 첫 대회인 2024 토너먼트 챔피언스를 우승하자 두 번째 대회마저 거머쥔다면 순탄하게 명예의 전당에 입성할 것도 같았다. 어쩌면 거의 손에 쥐게 될 뻔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넬리 코다는 마지막 날 승부를 연장으로 끌고 갔고 이 승부를 자신의 5연승의 첫 번째 제물로 삼았다. 리디아 고에게는 뼈아픈 순간이었지만 우승자인 넬리 코다를 안아주며 축하하는 그녀의 표정에는 진심이 느껴졌다.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토마스 에디슨의 '천재는 99%의 노력과 1%의 영감으로 만들어진다'는 말이 있다. 에디슨은 노력이 중요하다는 의미로 들리는 이 말을 통해, 노력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성과에 날개를 다는 것은 '영감'이란 것을 말하고 싶었다고 전해진다.
파리 올림픽 골프 대회 마지막 날 챔피언 조에서 출발한 리디아 고는 '내 끝은 내가 결정한다'는 문구를 되뇌고 있었다. 미국의 체조 전설 시몬 바일스가 한 이 말은 그녀의 가슴에 새겨졌고 영감을 줬다고 한다.
그 말 때문이었을까. 그녀의 행동은 가야 할 방향을 분명히 아는 사람처럼 자신감이 있었다. 18번 홀에서 마지막 버디 퍼트를 홀에 떨구고 얼굴을 감싼 그녀를 보고 전무후무한 일이 벌어졌다고 아나운서가 말한다. '골프 천재 소녀'였던 그녀가 과거형이 아닌 현재형의 천재로 돌아온 것이다. 그녀가 또 어떤 도약을 할지 알 수 없지만 지금 이 순간은 미증유의 시간이다.
*칼럼니스트 장보구: 필명 장보구 님은 강아지, 고양이, 커피, 그리고 골프를 좋아해서 글을 쓴다. 그의 골프 칼럼에는 아마추어 골퍼의 열정과 애환, 정서, 에피소드, 풍경 등이 담겨있으며 따뜻하고 유머가 느껴진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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