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과 양육이란 공식에 포획되지 않는 ‘사랑의 방식’[책과 삶]

박송이 기자 2024. 8. 16.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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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폭력이 심각한 멕시코 사회
여성이 가정폭력에 희생되지 않고
모성이 사회적 명령이 되지 않는
서로 다른 선택이 존중받는 사회
돌봄의 공동체는 얼마나 가까운가
과달루페 네텔은 출산과 양육에 대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 <이네스는 오늘 태어날 거야>를 썼다. Mely Avila 제공

이네스는 오늘 태어날 거야|

과달루페 네텔 지음|최이슬기 옮김 |바람북스 |298쪽 |1만7800원

‘이네스는 오늘 태어날 거야. 이네스를 만날 수 있게 너도 와.’ 새벽 6시 라우라는 친구 알리나의 메시지를 받는다. 임신 37주 차인 알리나는 배 속 딸의 이름을 일찌감치 이네스라고 정했다. 17세기에 살았던 멕시코 페미니스트 시인의 이름이었다. 이네스는 제왕절개 예정일보다 일주일 빨리 세상에 나오려 하고 있었다. 이네스를 만날 수 있는 날은 이네스가 태어나는 이 날, 단 하루뿐이었다.

출산을 두 달 앞둔 어느 날, 의사는 이네스의 뇌가 독립적으로 기능하지 못한다고 진단하며 이네스가 태어나자마자 죽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알리나는 그날로부터 이네스가 태어나기까지 7주 동안 혼란과 고통 속에서 출산과 함께 이네스의 장례 절차까지 준비했다. 출산일까지 매일 배 속의 이네스와 추억을 만드는 데 집중했고, 의사에게 이네스의 얼굴을 볼 수 있도록 수술할 때 자신을 재우지 말라고 당부했다.

멕시코의 소설가 과달루페 네텔의 <이네스는 오늘 태어날 거야>는 출산과 비출산, 모성과 양육에 대해 다룬 소설이다. 비혼과 비출산을 확고하게 지켜나가는 주인공 라우라, 한때 라우라와 같은 신념을 공유했지만, 결혼 후 난임 시술을 받으며 임신·출산을 선택한 친구 알리나, 통제되지 않는 아들을 홀로 키우며 삶의 의욕마저 놓아버리는 옆집 여자 도리스, 아기를 양육하는 일에서 삶의 근원적 기쁨을 찾는 보모 마를레네, 라우라에게 출산을 권하면서도 모성은 “거의 모든 경우 여성들이 무언가를 성취하는 걸 방해”하는 “사회적 명령”이라고 토로하는 라우라의 엄마 등 소설은 출산과 양육에서 각자 다른 길을 선택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펼쳐 놓는다. 소설은 시종일관 차분하고 담담한 어조로 이들의 삶이 어떻게 어우러지는지를 보여주면서, 출산·양육·정상 가족이라는 협소한 가부장제 공식에 포획되지 않는 돌봄과 연대, 사랑의 방식에 대해 말한다.

‘활택뇌증’이라는 병명을 갖고 태어난 이네스는 의사의 단언과 달리 살아남는다. 하지만 이네스의 생존 기간이 며칠이 될지 몇 달이 될지 몇 년이 될지 예견할 수 없었다. 태어나자마자 죽을 것이라는 의사의 단언 속에서 이네스와의 충실한 이별만을 준비하던 알리나는 또 다른 혼란에 빠진다. “알리나는 그 순간 일말의 기쁨을 느끼기는커녕 오히려 정신이 아득해지면서 거부 반응 비슷한 것을 느꼈다고 기억한다.”

알리나는 남은 인생을 이네스를 돌보는 데 바쳐야 한다는 사실에 절망한다. 이네스가 일찍 죽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 이네스가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 두 가지 모두 크나큰 위협이었다. 알리나는 미래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일상의 행동과 사건에 집중하기로 하지만, 종종 불안에 휩싸이며 감당하지 못할 금액의 물건을 사들인다. 그러다 이네스의 의료보험을 보장받을 수 있는 좋은 조건으로 복직을 하게 되면서 알리나는 낮에 이네스를 돌봐줄 헌신적인 보모 마를레네를 채용하게 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알리나와 마들레네의 관계는 조금씩 어긋나게 되고 치료에 적응하며 나아지던 이네스의 상태는 다시 나빠진다.

<이네스는 오늘 태어날 거야>. 바람북스 제공

한편 라우라는 매일 옆집 아이 니콜라스가 엄마에게 고함을 지르는 것을 듣게 된다. 라우라는 니콜라스가 2년 전 폭력적인 아빠가 죽은 후, 엄마 도리스에게 분노와 욕설을 퍼부어왔다는 것을 알게 된다. 도리스는 아들을 진심으로 사랑하지만 “자신의 에너지를 먹어 치우고 생명력을 다 빨아들이”는 그를 감당하지 못한다. 라우라는 어느덧 조금씩 이들의 삶에 개입하게 되고 도리스를 대신해 니콜라스와 시간을 보내면서 뜻밖에도 아이를 돌보는 일에서 기쁨을 맛본다.

이야기의 전개는 차분하고 부드러우며 그 어떤 선명한 메시지도 내세우지 않지만, 소설을 다 읽을 때쯤 독자는 막연하게 생각했던 ‘돌봄’의 공동체와 그 가능성을 이전보다 뚜렷이 감각하게 된다. 알리나는 생명의 위기 속에서도 강인한 생의 의지를 보이는 이네스에게 긍지를 느끼고, 그 과정에서 ‘모성’을 두고 경쟁하던 마들레네를 새로운 가족으로 받아들인다. 라우라는 도리스가 니콜라스를 여동생의 집에 맡기는 과정을 같이 고민하면서 한 편에서는 도리스가 우울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돕는다. 젠더폭력이 심각한 멕시코를 배경으로 이에 저항하는 여성들의 모임, 시위 등이 하나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가운데 소설은 여성들이 출산과 양육에 대한 각자의 선택을 존중하며 지지와 연대의 손길을 내미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그려낸다.

출산과 양육이 주요 소재인 소설인 만큼 읽다보면 몇 년째 저출생 위기를 거론하는 한국 사회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소설은 저출생 위기의 해법이 ‘돌봄의 공동체’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알리나가 소진되지 않으면서 이네스를 돌볼 수 있는 사회, 도리스처럼 여성이 가정 폭력으로 희생되지 않는 사회, 모성이 사회적 명령으로 강요되지 않는 사회, 모성·부성·정상가족을 관계의 정답으로 내세우지 않는 사회…한국 사회는 이같은 ‘돌봄의 공동체’로부터 얼마나 가까이 혹은 멀리 떨어져 있을까.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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