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 포퓰리즘’으로 개혁 맞선 검찰 [이철희의 돌아보고 내다보고]
검찰 특수부는 정치인이나 재벌, 사회 저명인사를 타깃으로 삼는 특수수사를 통해 신망을 얻었다. 검언유착을 통해 피의 사실을 흘리는 극장식 수사로 대중적 분노를 한껏 자극한다. 검찰정권의 등장은 이런 포퓰리즘으로 얻은 전리품이다.
검찰은 세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넘버원이다. 오죽하면 검찰국가란 말이 나올까. 막강검찰이 요즘 보여주는 모습은 영어 관용표현 ‘high and mighty’ 그대로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검찰국가가 등장하진 않았다. 검찰은 숱한 역경을 이겨냈고, 국가기관 간 권력투쟁에서 승리했다. 국회, 사법부, 그리고 대통령까지 제압했다. 명실공히 최고의 권력기관이 됐다. 그렇게 오랜 세월 구축한 위상과 힘이 지금의 검사 출신 대통령과 검사 출신 여당대표, 검찰시대를 만들어낸 동력이다.
해방 후 정부수립 시기는 곧 국가기관 간의 권력배분이 이뤄지는 시기이기도 했다. 이때 검찰은 잘 살아남았다. 법원으로부터 독립했고, 수사권도 확보했다. 기소독점권도 유지했다. 준사법기관이란 관념도 만들어냈다. 일제 강점기에 워낙 경찰이 파쇼라고 불릴 정도로 식민지 지배의 주구로 날뛰었기에 검찰은 큰 도전 없이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할 수 있었다. 군사정권하에서는 ‘도광양회’(때를 기다리며 은밀히 힘을 기른다)했다. 정통성 부재에 시달린 정부가 법보다 주먹을 앞세우다 보니 정보기관과 보안사(현 국군방첩사령부), 정보경찰의 역할과 비중이 클 수밖에 없었다. 검찰의 역할은 법적 치다꺼리에 그쳤지만 그 덕에 국민의 원성을 사진 않았다.
덕분에 민주화 과정에서도 검찰은 다치지 않고 가진 권한을 고스란히 지켜냈다. 일찍이 검사 출신으로 국회의원을 지낸 엄상섭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검찰기관이 범죄 수사의 주체가 된다면 기소권만 가지고도 강력한 기관인데 수사의 권한까지 더하게 되니 이것은 결국 ‘검찰파쇼’를 가지고 온다.” 1987년 국가를 재구성할 때 검찰을 정상화했어야 했다. 정치권은 이 황금찬스를 놓쳤다. 검찰의 권력지수는 계속 우상향했다. 이제 힘으로 다스릴 수 없는 시절인지라 법과 그 법의 집행기관이 중요해진 탓이다. 검찰은 대통령 권력을 뒷받침하는 중추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검찰은 ‘살아 있는 권력’에 유난히 약했고, 도전하거나 갈등하는 이들에겐 유난히 강했다. 그러다 보니 검찰개혁이 시대과제로 등장하게 됐고, 노무현 정부는 이를 강하게 추진했다. 검찰로선 일대 위기였다.
미국 법무부 장관을 지낸 로버트 잭슨은 전시의 군대를 제외하곤 검사가 가장 힘 있는 집단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가장 위험한 집단’이 될 수도 있음을 경고했다. “검사의 기소사안 선택은 곧 기소대상의 선택으로 이어진다. 바로 여기에 검사의 가장 위험한 권력이 있다. 즉, 검사는 기소 필요성이 있는 사안(cases)을 고르기보다는 처벌하고 싶은 인물(people)을 고르게 된다. 검사가 엄밀하게 살펴보면 누구라도 법전에 적힌 수많은 범죄 중 하나쯤은 위반한 사실을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범죄행위를 먼저 인지한 뒤 그 범인을 찾아내는 문제가 아니라 ‘어떤 사람을 먼저 선택한’(picking the man) 뒤 법전을 뒤지고 수사를 벌여 그에게 범죄 혐의를 갖다 붙이는 문제가 된다. 검사가 싫어하거나 괴롭히고픈 사람을 고르거나, 꺼려 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어떤 집단 등을 선택한 뒤 그 혐의를 찾아내는 일이 이 왕국에서 벌어진다. 검찰권 남용의 가장 큰 위험도 여기에 있다. 이렇게 되면 법집행은 내 맘대로가 된다. 지배집단 또는 집권층과 불화를 겪으면, 다른 정치적 견해를 가지면, 검사의 기분을 상하게 하거나 걸리적거리면 그게 죄가 된다.”(‘The Federal Prosecutor’)
우리 검찰은 위기 때마다 잭슨이 우려한 방식을 능란하게 활용했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활용해 개혁 에너지를 흐트러트렸다. 검찰, 특히 특수부의 ‘수사 포퓰리즘’은 자극적이고 효과적이었다. 수사 포퓰리즘은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킬 만한 사안, 예컨대 권력형 부패나 비리 사건을 고른 뒤 자극적 혐의 내용을 흘려 여론재판을 유도하고, 그를 통해 엘리트에 대한 반감을 조장하는 수사 방식이다. 그들은 정치인이나 재벌, 사회 저명인사를 타깃으로 삼는 특수수사를 통해 신망을 얻었다. 검언유착을 통해 수사내용이나 피의 사실을 흘리는 극장식 수사로 대중적 분노를 한껏 자극한다. ‘논두렁 시계’는 그 백미다. 그렇게 함으로써 엘리트 대 대중의 대립구도를 만들고, 그 포퓰리즘 프레임 속에서 자신들의 권력과 위상을 유지·강화한다. 나쁜 놈 때려잡는 정의의 칼잡이, 이것이 검찰의 생존비결이었다.
2003년 11월3일 검찰이 대선자금 수사를 5대 그룹과 그 이상으로 확대한다는 발표를 했다. 당시 대검 중앙수사부 보고서에 에스케이(SK)그룹이 한나라당(현 국민의힘)에 100억원을 대선자금으로 건넸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이 정보는 그해 2월 에스케이글로벌 분식회계 수사 과정에서 들은 얘기였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기업들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혐의가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들에 대한 수사가 시작됐다는 점이었다. 중앙플러스 보도에 따르면, 여야에 130억원을 정치자금으로 제공한 에스케이그룹을 제외한 다른 기업들이 누구한테 얼마를 줬는지에 대한 충분한 자료나 증거 없이 모호한 진술 하나만 들고 검찰이 수사에 착수했다고 한다. 기사엔 당시 수사검사의 증언도 담겨있다.
“에스케이는 증거를 갖고 수사에 나서 100개(100억) 부분에 대해 자백까지 받았다. 이후 다른 기업으로 수사를 확대한다는 방침이 발표됐지만, 진짜 그때는 아무 증거가 없었다. 검찰의 고민이 깊었다. 대통령 측근 최도술(10월15일), 한나라당 재정국장 이재현(10월30일) 구속 이후 워낙 불법 대선자금을 철저히 수사하라는 여론에 떠밀린 측면도 있다.” 범죄 혐의가 확인된 후에 수사가 이뤄지지 않은 점에 대해선 이인규 전 중수부장도 인정한다. “이들 재벌의 불법 대선자금 제공에 관해서는 아무런 증거나 자료도 없었다.”
구체적인 혐의나 증거도 없이 정당-재벌을 타깃으로 삼는 강압수사야말로 내 맘대로 법집행의 전형이다. 당시 수사를 주도하던 이인규는 자신의 회고록에 삼성의 이학수 부회장을 만나 이렇게 얘기(?)했다고 적고 있다. “수사에 협조하면 총수를 처벌하지 않는 등 최대한 선처하겠습니다.” “수사에 협조하지 않을 경우 지금까지는 겪어보지 못한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통하지 않자 타깃을 바꿔 엘지(LG)를 공략하기 시작했다. “협조하지 않으면 지주회사 설립, 계열 분리와 관련해서 저질렀던 부당 내부거래에 대해 모두 수사할 거야.” 협박에 이어 검찰은 엘지홈쇼핑 압수수색에 나섰다. 엘지그룹의 구씨와 허씨 일가의 지분관계 정리 방법을 들여다볼 수 있는 창구 회사였기 때문이다. 이를 계기로 비로소 대선자금 수사가 풀리기 시작했다. 이인규 전 검사가 영웅담처럼 전하는 얘기는 검찰수사의 민낯이다. 그들은 잭슨이 말한 ‘가장 위험한 집단’이 되었다.
역사의 물꼬가 바뀌었다. 정치권은 전전긍긍했고, 재계도 숨을 죽였다. 국민들은 환호했다. 난감한 건 검찰개혁을 하려던 노무현 정부였다. 민정수석에 비검찰 출신을 앉히고, 법무부 장관에 판사 출신 여성을 임명했다. 이런 기세가 대선자금 수사로 꺾였다. 검찰은 검찰개혁을 둘러싼 여론전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불법 대선자금 수사로 인해 검찰개혁의 당위성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약화되었다. 검찰이 불법 대선자금 수사를 성공적으로 마치자 검찰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유례없이 높아졌다. 정치개혁을 실현할 수 있는 주체로서 검찰이 정치권을 제치고 떠올랐다. 팬카페가 만들어지고 화환과 음식이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에 배달되었다. 국민검사라는 칭호도 생겨났다.”(‘검찰을 생각한다’) 검찰은 수사 포퓰리즘으로 살아남았다.
이런 점에서 검찰정권의 등장은 검찰이 수사·기소로 짓누르고, 포퓰리즘으로 휘어잡아 얻은 전리품이다. 그런데 검찰은 왜 보수와 손잡았을까?
이철희 | 방송에서 정치평론을 하다 정치에 나서 20대 국회의원, 문재인 정부 마지막 정무수석을 지냈다. 2020년 ‘대통령 탄핵 결정요인 분석: 노무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 탄핵 과정 비교’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인자를 만든 참모들’ ‘정치가 내 삶을 바꿀 수 있을까’ 등의 책을 냈고, ‘진보는 어떻게 다수파가 되는가’ 등의 역서가 있다. 우리 정치가 어쩌다 이렇게 나빠졌는지, 무엇이 문제인지, 어떻게 해야 나아질 것인지 등에 대해 터놓고 얘기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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