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 간 차등 인상' 연금개혁 묘수 될까…장년층 반발 거셀 듯

유영규 기자 2024. 8. 1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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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실과 정부가 '세대 간 형평성'과 '지속 가능성'에 방점을 둔 국민연금 개혁안을 곧 발표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연금개혁을 둘러싼 또 한 번의 갑론을박이 벌어질 전망입니다.

15일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세대 간 형평성과 지속가능성에 초점을 둔 국민연금 개혁이 이뤄질 경우 기금의 고갈 시점을 2055년에서 30년 이상 늦출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개혁안은 이달 말 또는 다음 달 초로 예상되는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브리핑에서 발표될 것으로 보입니다.

전문가들은 대통령실이 언급한 '세대별 보험료 인상 차등'이나 '자동 재정안정화 장치'가 거센 논란을 불러올 것이라며 모수개혁 합의를 바탕으로 구조개혁 추가 논의에 나설 것을 제언했습니다.

정부 개혁안은 세대에 따라 적용하는 보험료율 인상 방안을 달리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연령과 관계없이 요율을 일괄 적용하는 현재의 형태에서 나이 든 세대일수록 상당 기간 보험료를 더 내는 차등 구조로 전환하겠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보험료율을 13∼15%로 인상하기로 하면 장년층은 매년 1%포인트씩 인상하고, 청년층은 매년 0.5%포인트씩 인상해 목표로 한 보험료율에 도달하는 시기를 조정하는 방식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이같이 '나이 든 세대일수록 더 빨리 오르는' 인상 방식은 지난해 정부가 발표한 제5차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안에서 나온 바 있습니다.

복지부는 "그룹 인터뷰를 통해 젊은 분들이 본인들은 많이 내도 똑같이 받고, 기성세대는 조금만 내고 많이 받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있었다"며 "보험료율을 올린다면 차등하는 게 세대 간 형평성과 공정성 측면에서 바람직하다는 생각에서 안을 마련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세대에 따라 보험료율에 차등을 두는 사례는 아직 세계적으로 전례가 없습니다.

중장년층의 반발 또한 거셀 것으로 전망됩니다.

오종헌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사무국장은 "세대를 구분하는 기준도 명확하기 어려울뿐더러, 계층을 고려하지 않은 방식"이라며 "50대 비정규직이나 자영업자의 보험료를 20∼30대 정규직보다 더 빨리 올리는 게 '형평'이냐"고 비판했습니다.

또 "보험료가 급격히 올라가면 이것이 부담스러운 중장년 취약계층은 국민연금 납부를 회피할 텐데, 그럼 이들의 노후 생계를 위해 또 기초연금과 생계 급여 등이 투입돼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최영준 연세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도 "막상 실제로 도입하게 된다면 어느 세대를 올리고 어느 세대는 올리지 않을지 등 상당히 많은 난관이 있을 것"이라며 "연금개혁을 기한 없이 늦추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다만 젊은 세대의 박탈감과 불만을 줄여준다는 측면에서는 합리적이라는 견해도 있습니다.

양재진 연세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는 "'독박 쓴다'고 생각하는 젊은 세대의 불만을 줄이고 곧 혜택을 받을 세대에게 더 걷는다는 면에서는 합리적"이라면서도 "이례적인 형태이기도 하고, 조세 저항이 거셀 것으로 예상한다"고 평했습니다.

대통령실은 아울러 연금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자동 재정안정화 장치'도 도입해 연금 구조를 개혁하기로 했습니다.

자동 안정화 장치는 경제 상황에 따라 보험료율이나 소득대체율 같은 모수를 자동으로 조정하는 제도입니다.

상황이 안 좋아지면 연금 지급액을 낮추는 등 연금의 안정성을 자동으로 보장합니다.

다만 목표 보험료율 등 세부적인 수치는 국회 논의를 통해 확정한다는 방침입니다.

스웨덴, 일본, 독일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상당수 국가들이 이 장치를 운용하고 있습니다.

스웨덴의 자동조정장치는 기대수명이 늘어나면 연도별 연금 지급액이 축소되고, 연금 부채가 자산보다 커질 경우 균형재정을 달성할 때까지 지급액이 줄어드는 방식입니다.

일본은 지난 2004년 연금액을 기대수명 연장과 출산율 감소에 연동해 삭감하는 자동조정장치를 도입했습니다.

일명 '거시경제 슬라이드'입니다.

독일도 2004년 연금 지급의 자동조정장치를 도입했습니다.

전체 경제활동인구 및 연금 수급자 규모의 변화를 바탕으로 급여 수준과 보험료율을 자동 조정하는 방식입니다.

양재진 교수는 "대부분의 OECD 국가들이 안정화 장치를 도입해 자동으로 소득 대체율을 낮추든지 수급 연령을 뒤로 미루고 있다"며 "방향은 불가피하다고 본다"고 평했습니다.

하지만 재정 안정에 방점을 둔 장치인 만큼, 재정안정론 반대편에 서 있는 소득보장론자들의 반발이 나올 수 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오종헌 국장은 "자동안정화 장치는 노인빈곤율이 낮아진 상태에서 도입을 고려해야 하는 것이지, 지금 노인 빈곤율이 40%에 육박하는 우리나라에서 보장성 강화에 대한 논의는 하나도 없이 자동안정화 장치만 도입한다는 건 연금의 본 목적을 외면하는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최영준 교수도 "빈곤을 해소할 급여를 보장해 주지 못한다면 연금 제도가 존재할 이유가 있느냐"며 "(빈곤층이) 결국 나중에 공공부조의 도움을 받게 된다면 연금의 의미가 없어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다만 최 교수는 "재정안정화 장치를 반대한다기보다는, 논의는 할 수 있지만 도입하려면 원점에서 엄청나게 많은 논쟁이 필요하고, 그러다 보면 개혁을 할 수 없다고 보는 입장"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이처럼 정부가 국민연금 구조개혁안을 들고 나오면서 국회에서의 여야 간 합의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 또한 나옵니다.

여야는 21대 국회 종료를 앞둔 지난 5월 연금개혁과 관련해 이른바 '더 내고 더 받는' 모수개혁안 합의 직전까지 갔었습니다.

현재 9%인 보험료율(내는 돈)은 13%로 인상하되 소득대체율(받는 돈)을 42%에서 43% 또는 45%로 상향조정하자고 공방을 벌이다, 이재명 전 대표가 국민의힘 절충안인 44%를 수용하겠다고 밝히면서 타결이 이뤄지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민주당이 채상병 특검법 본회의 표결 등을 밀어붙이고, 여당이 이를 저지하려 모든 국회 일정을 보이콧하고 연금개혁에 대해서도 모수개혁뿐 아니라 구조개혁 병행을 요구하면서 불발됐습니다.

이번에 정부가 구조개혁까지 들고 나오면서 여야는 모수개혁과 구조개혁 모두에 대한 합의를 이뤄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미 보험료율을 올릴 수 있는 안이 있으니 그걸 올린 다음에 추가적으로 구조개혁 논의를 하면서 보완할 것을 제언했습니다.

최영준 교수는 "연금개혁에 대한 대통령실의 관심은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자동조정장치 등을 발표하게 된다면 합의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지난번의 (소득대체율) 44%, (보험료율) 13%에서 시작하면 된다"고 제언했습니다.

(사진=연합뉴스)

유영규 기자 sbsnewmedi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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