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진보단 가늘고 길게"… 직장은 오래 다니는 게 최고

[S리포트-불황의 그늘] ③ 불황에 직장인들이 대처하는 법

[편집자주] 직장인들이 점심시간 편의점이나 구내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번화가의 불야성은 옛말이다. 저녁 회식이 사라졌다. 코로나19를 이겨냈던 식당들도 주저앉았다. '공실' 안내는 익숙한 풍경이 됐다. 오르지 않는 월급에 내집 마련은 더욱 요원해졌다. 내수침체의 터널을 걷는 우리의 모습을 돌아봤다.

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 문화가 확산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사진=이미지투데이

"굳이 임원 달아야 하나요?"

# 설렘을 가지고 대기업에 입사한 20대 A사원은 재직 3년차 만에 임원의 꿈을 접었다. 평일부터 주말까지 밤낮 없이 모든 삶을 회사에 맞춰 살고 있는 상사들처럼 살 자신이 없어서다. 회사는 돈을 버는 곳일 뿐이라는 생각에 오늘도 '받는 만큼 일하자'는 마음가짐으로 근무하고 있다. 동기들과 대화해 봐도 대부분 승진보단 워라밸(삶과 일의 균형)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회사에서 업무 능력을 인정받기보다 오래 근속하며 퇴근 후 자신의 삶을 찾고자 하는 풍토가 나타나고 있다. '젠지'(Gen Z·1990년대 후반~2010년대 초반 출생)세대 사이에선 '임포족'(임원 승진 포기족)을 선언하는 직원들이 늘고 있다.

지난해 잡코리아가 MZ세대(1980년대에서 2000년대 초반 출생) 직장인 1114명을 설문한 결과 응답자의 54.8%가 '임원 승진 생각이 없다'고 답했다. '책임을 져야 하는 위치가 부담스러워서'라는 응답이 43.6%로 가장 높았다. '임원 승진이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 같아서'라는 응답은 20%, '임원은 워라밸이 불가능할 것 같아서'는 13.3%로 뒤를 이었다.

젊은 층이 워라밸을 선호한다면 은퇴가 머지않은 중·장년층은 되도록 오래 회사에 남아있고자 한다. 임원 승진에서 후배에게 밀리면 자발적으로 물러나야 하는 것도 옛말이다.

중견기업에 재직 중인 50대 후반의 B차장은 정년까지 회사를 다닐 계획이다. 2기수 후배들이 자신보다 먼저 부장으로 승진해 눈치가 보이기는 하지만 불황에 창업을 하려던 계획도 접었다. B씨는 "평생 한 회사에 뼈를 묻었기 때문에 당장 회사 밖으로 나간다고 해도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장사도 생각해봤지만 먼저 퇴직한 선배들을 보니 걱정이 앞설 뿐"이라고 밝혔다.

최근 대기업 노조를 중심으로 정년 연장 요구가 거세다. 현대자동차 노조는 올해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 교섭에서 생산직 근로자가 정년(만 60세)을 마친 뒤 원할 경우 현재 부서에서 1년 더 일할 수 있도록 한 '숙련 재고용' 제도 적용을 만 62세까지 1년 늘리는 데 합의했다. 노조의 정년 연장 요구에 회사가 타협안을 제시한 것이다. 급여는 생산직 계약 초봉 수준인 연봉 5000만∼6000만원(성과급 제외)이다.

HD현대그룹의 조선 3사(HD현대중공업, HD현대삼호, HD현대미포)도 60세인 정년을 국민연금 수령에 맞춰 65세로 5년 연장하는 동시에 임금피크제를 폐지해 달라는 공동요구안을 내걸고 협상을 진행 중이다. 현대제철 노조도 정년 연장과 임금피크제 폐지를 올해 임단협 요구안에 포함했다.

다수의 노조가 정년 연장을 요구하고 나선 것은 현재 63세인 국민연금 수령 개시 연령이 2028년에는 64세, 2033년에는 65세로 조정되는 반면 법정 정년은 여전히 60세이기 때문이다. 동국제강그룹 노사는올해 임단협을 통해 정년을 만 61세에서 만 62세로 연장하는 데 합의했다.

재계 관계자는 "워라밸을 중시하는 문화가 확산하면서 승진에 적극적이지 않는 직원들이 많아졌다"며 "젊은 부장급 중 일부는 임원을 최대한 늦게 하고 싶어 하기도 해 풍토가 바뀐 것을 실감한다"고 말했다.

최유빈 기자 langsam41@m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