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화재, 진짜 문제는 ‘셀’…안전 빠진 인증제
전기차 업계의 잇단 제조사 정보 공개, 화재 예방 효과는 미지수
인천 지하주차장 화재 이후 완성차 업체들이 배터리 제조업체를 속속 공개하고 있지만 ‘법적 강제’가 아닌 ‘권고’인 데다, 제조사 공개만으로는 화재 예방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특히 정부 차원에서 전기차 화재 주원인인 ‘배터리 셀’의 안전성을 검증하고 차량 정기검사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5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내년 2월부터 전기차 배터리 인증제를 시행한다. 통상 전기차에는 개별 배터리 셀을 묶은 모듈을 패키징한 배터리 팩이 장착된다. 이 배터리 팩을 대상으로 ‘충격을 가하고 물과 불에 집어넣는’ 등 다양한 시험을 거쳐 안전성을 점검하는 게 배터리 인증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배터리 팩만 한정해 관련 기준을 마련하고 안전 시험을 거치는 것은 알맹이가 빠진 ‘반쪽짜리 인증제’라고 지적한다. 일반적으로 전기차 화재 대부분은 배터리 셀 불량이나 충격에 의한 셀 단락으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배터리 셀 단위, 모듈 단위에서의 정밀검사와 관련 인증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최영석 원주한라대 미래모빌리티공학과 객원교수는 “배터리 셀을 생수병에 비유할 수 있는데, 그 생수병에 들어 있는 물이 어떤 수원에서 채취됐는지, 바이러스나 세균으로부터 안전한지 확인이 돼야 마실 수 있다”면서 “(시행 예정인) 배터리 인증제는 생수병을 묶음으로 담은 상자가 얼마나 안전한지만을 점검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정부가 배터리 셀에 대해 공인인증(형식승인) 제도를 시행하지 않는 것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도 연관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미국은 배터리 셀에 대해 ‘자가인증’을 실시하고 있다. 자가인증은 국가가 인정한 시험기관이 안전성과 성능의 신뢰성 등을 관련 기준에 따라 평가하는 형식승인과 달리, 업체가 자율적으로 시험 등을 거쳐 정부에 관련 자료를 제출하는 방식이다.
업계에서는 우리 정부가 한·미 FTA 규정 위반 등을 우려해 배터리 셀에 대한 형식승인 제도를 시행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미국은 기업의 잘못으로 화재 등이 발생해 소비자가 피해를 볼 경우 정부가 소송하고, 소비자들도 집단소송을 진행하기 때문에 자가인증의 무게가 우리와 사뭇 다르다”면서 “전기차 배터리에 대해서는 일정 기간만이라도 정부가 타당한 안전성 기준을 제시하고, 안전 관련 개별 자료를 확보해 관리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배터리 제조업체 공개를 ‘권고’가 아닌 법적 규제 수준으로 강제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번 메르세데스 벤츠 차량 화재의 경우 소비자의 원성과 정부의 압력에 등을 떠밀린 업체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배터리 제조업체를 공개했다는 게 정설이다. 권고에 그치면 어느 순간 비공개로 전환될 가능성이 크다.
전기차에 대한 정기검사 등을 한층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내연기관 자동차는 발명된 지 100년이 훨씬 지나 안전성 등에 대한 원인 분석과 검증이 거의 끝났다”면서 “하지만 전기차의 경우 역사가 1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고 화재와 직결되는 배터리 안전성이 완전히 담보되지 않은 만큼 정기검사 기준 등이 보다 강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준 선임기자 j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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