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화재에 車 들고 연기 흡입하는 로봇에 관심
이달 1일 인천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발생한 메르세데스-벤츠 전기차 화재는 소방 장비 진입이 어려운 지하 주차장에서 발생한 탓에 피해가 커졌다. 이 사고를 계기로 불이 난 전기차를 들어 옮기거나 불이 확산하지 않도록 물을 뿌리는 로봇, 화재 시 발생하는 유독가스를 밖으로 빼내는 로봇 등이 관심을 받고 있다.
HL만도가 지난해 12월 선보인 주차 로봇 ‘파키’는 레벨4(고도자동화) 수준의 자율주행이 가능하다. 차 밑으로 들어가 바퀴를 들어 올려 차를 옮긴다. 카메라와 라이다(RiDAR) 센서를 활용해 주변 상황을 인지하며 최고 초속 2m으로 움직이고 최대 3톤(t)의 무게를 버틴다.
현대위아의 주차로봇도 파키와 유사한 형태다. 최고 초속 1.2m, 최대 2.2t의 무게를 들 수 있다. 현대위아 주차로봇의 두께는 110㎜로 전후좌우 어디로든 차 바닥에 접근할 수 있다.
두 주차 로봇을 전기차 화재에 투입할 수 있다면 차를 안전한 곳으로 옮겨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다만 주차 로봇은 바닥이 평평한 형태라 경사로를 오르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다. 또 애초에 소방용으로 제작된 로봇이 아니어서 화재 대응용으로 활용된 사례는 아직 없다. 불에 잘 타지 않는 내연 성능을 갖추는 것도 과제다.
현대위와 관계자는 “이번 사고를 계기로 주차 로봇의 소방 역할에 대해 고민이 생겼다. 전기차뿐 아니라 다양한 자동차 화재 초기에 주차 로봇이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벤츠 전기차 화재에서는 10세 이하 아동 7명 등 주민 20명이 연기를 흡입해 병원으로 이송됐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화재 사고에서 나타난 인명피해 유형 중 유독가스 흡입에 의한 피해는 전체의 65%(유독가스 흡입·화상 40%, 유독가스 흡입 25%)에 달한다. 화재 현장에서 유독가스를 잘 빼내는 것만으로도 피해를 상당히 줄일 수 있다는 얘기다.
인천소방본부는 궤도형 배연 로봇 도입을 연구 중이다. 궤도형 배연 로봇은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화재 진원지에 가까이 다가가 연기를 포집한 뒤 밖으로 빼내는 역할을 한다. 궤도를 장착해 지형·지물에 관계없이 운행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해외에서는 소방 로봇이 성과를 올리고 있다. 2020년 10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소방청(LAFD)은 소방 로봇을 도심 화재 현장에 배치했다. 작은 탱크를 떠올리게 하는 소방 로봇은 소방차와 소방관이 들어가기 어려운 화재 현장에서 활약했다.
이 로봇은 1분에 9400리터(L)의 물을 분사할 수 있고, 방열 장비를 통해 화재 현장에서 최대 10시간 활약할 수 있다. 길이 2.13m, 높이 1.5m, 무게 1.58t으로 미국 폭탄제거용 로봇에 사용되는 금속 뼈대를 사용했다고 한다. 또 고화질 카메라와 적외선 카메라를 여러 대 장착했고 70도(°) 경사를 오를 수 있다. 800㎏의 물건도 견인한다.
현대차그룹의 로봇 전문 기업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사족보행 로봇개 ‘스팟’도 화재 현장을 누비고 있다. 뉴욕소방청(FDNY)은 2022년 스팟 2대를 도입했는데, 소방관 접근이 어려운 곳에 들어가 현장 이미지로 데이터를 수집하고, 붕괴 위험이 있는 건물 내부에서 구조적인 안전성을 진단한다. 일산화탄소 등 유독·인화성 가스의 농도를 측정하는 일도 맡고 있다.
국내에서도 소방 로봇의 도입은 여러 번 시도됐으나 활용도가 떨어져 현장에 출동한 사례는 극히 적다. 그러나 이번 전기차 화재를 계기로 제대로 된 소방 로봇이 도입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011년 소방본부가 전국에 배치한 무인 방수로봇은 길이 125㎝, 너비 73㎝, 높이 75㎝의 크기로 500℃에 견디고, 계단 등 40° 경사로 주행이 가능하도록 개발됐다. 그러나 자체 방수 탱크가 없어 소화전에 연결해 사용해야 하고 가격이 1억1000만원에 달해 보급에 어려움을 겪었다.
로봇 업계 관계자는 “로봇은 여러 분야에서 활용되지만 그간 소방 관련 로봇의 주목도는 크지 않았다”며 “이번 전기차 화재를 계기로 특수 화재에서 로봇의 필요성이 높아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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