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율 사상 최저…외국인으로 버티는 일본[글로벌 현장]

2024. 8. 16.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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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추상사 어린이집 모습. 사진=이토추상사


지난 6월 일본 수도 도쿄의 지난해 합계출산율이 처음으로 1명 이하로 떨어졌다는 소식에 일본이 발칵 뒤집혔다. 일본 47개 도도부현 중 최저인데, 이 통계에 착시가 있다는 분석이 주목받고 있다. 출산율은 가장 낮지만 기혼 여성 출생아 수는 오히려 전국 평균보다 많다는 것이 핵심이다. 단순히 출산율만 보고 저출산 대책을 마련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라는 지적이다.


 도쿄 출산율 가장 낮지만 ‘착시’

도쿄의 지난해 출산율은 0.99명으로 전체 도도부현 중 유일하게 1명을 밑돌았다. 일본 전체 출산율도 1.20명으로 사상 최저였다. 출산율은 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자녀 수다. 그동안 도쿄의 출산율이 낮은데 대해 주거비, 교육비 등이 높아 양육 부담이 크다는 분석이 많았다. 그러나 통계를 뜯어보면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게 니혼게이자이신문의 지적이다. 많은 젊은 미혼 여성이 진학이나 취업을 위해 도쿄로 유입해 출산율을 끌어내렸다는 것이다.

출산율은 미혼을 포함한 15~49세 여성을 분모로 두고 출생아 수를 분자로 놓고 계산한다. 지난해에만 15~24세 여성 7만2000명이 도쿄로 전입했다. 전출을 제외하면 약 4만 명 늘었다. 도쿄에 전입하는 젊은 미혼 여성이 늘어 분모가 커지면서 출산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이 없었다면 도쿄의 출산율은 1명을 웃돌았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도쿄에 살면서 결혼한 여성의 출산율은 낮지 않다. 2020년 기준 결혼한 여성 1000명당 출생아 수는 도쿄가 76.4명으로 전국 평균인 74.6명보다 많았다. 재정이 튼튼한 도쿄도가 여러 출산 및 육아 지원책을 펼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아이를 키우기에 좋은 도시라는 설명이다.

도쿄에 본사가 있는 주요 대기업도 출산 및 육아를 적극 지원하고 있다. 일본의 5대 종합상사 중 하나인 이토추상사가 대표적이다. 애초 시작은 인력 부족에 대응해 노동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었다.

이토추상사는 2010년 사내 직장어린이집을 설치했다. 2013년에는 ‘아침형 근무제’를 도입했다. 오전 5시부터 오전 8시까지 일하면 야근수당과 동일하게 1.5배를 지급하고 오후 3시에 퇴근하는 제도다. 일본 기업 중에선 드물게 조식까지 제공하고 있다. 그 결과 이토추상사의 출산율은 2012년만 해도 0.60명으로 일본 전체(1.41명)의 절반에도 못 미쳤지만 2021년엔 1.97명까지 상승했다.


 지방 소멸 리스크 더 부각


문제는 지방이다. 도쿄의 통계 착시가 지방에선 반대로 나타나고 있다. 나가사키현 고토시, 교토부 미야즈시, 고치현 도사시, 홋카이도 이시카리시, 후쿠오카현 지쿠시노시 등은 2022년까지 5년간 연평균 출산율이 이전 5년보다 높아졌다. 그러나 출생아 수는 줄었다.

젊은 여성이 도시로 이주함에 따라 출산율의 분모를 구성하는 여성 수가 줄어 겉으로 보기에 출산율이 개선된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일본 국토교통성의 2020년 조사에서 ‘지방에서 도쿄로 옮긴 이유’에 대해 “좋은 직장이 없다”거나 “원하는 진학처가 없다”는 대답이 가장 많았다.

출산율이 높은 지방이라고 해서 아이 키우기 좋은 환경이 갖춰졌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게 핵심이다. 출산율이 높으면 좋고 낮으면 문제라는 단순한 도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결혼과 출산 전에 살던 곳을 떠나는 것은 지방 소멸 리스크를 더 부각한다는 지적이다.

지난 4월 일본 민간 전문가로 구성된 ‘인구전략회의’가 낸 보고서를 보면 일본 1729개 기초지자체 중 744개가 소멸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이를 낳는 핵심 세대인 20~39세 여성 인구가 2020년 대비 2050년에 절반으로 줄어드는 지역이다. 도쿄 등 대도시가 아니라 혼슈 동북부 도호쿠 지역 등 지방이 대부분이다.


 외국인으로 생산가능인구 유지

도쿄냐 지방이냐를 떠나 지난해 일본 전체 출산율이 사상 최저를 기록하면서 일본 인구는 역대 가장 큰 폭으로 감소했다. 향후 일본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입힐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최근 일본 총무성은 주민기본대장 기준 인구동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올해 1월 1일 기준 일본인은 약 1억2156만 명으로 전년 대비 약 86만 명 감소했다. 전년 대비 감소폭은 1968년 조사 시작 이래 최대 규모였다. 일본인 인구는 2009년 정점을 찍은 뒤 15년 연속 줄었다.

일본인 인구가 줄어드는 것과 달리 일본에 사는 외국인은 사상 최대 규모로 늘었다. 외국인은 약 33만 명 증가한 약 332만 명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처음으로 300만 명을 넘어섰다. 외국인을 포함한 총인구는 약 1억2488만 명으로 집계됐다. 외국인이 33만 명 늘었지만 일본인이 86만 명 줄면서 전체적으로 전년보다 53만 명 감소했다.

일본에 사는 외국인은 전년과 마찬가지로 모든 도도부현에서 증가했다. 가장 많이 늘어난 곳은 도쿄도(6만6304명)다. 외국인이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도쿄도(4.65%)가 가장 높았다. 이어 오사카부(2만8661명), 아이치현(2만3808명) 순으로 많이 늘었다.

기초지자체로 보면 외국인이 가장 많은 곳은 오사카부 오사카시(16만9392명)다. 이어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11만5954명), 아이치현 나고야시(9만2758명), 교토부 교토시(5만5434명), 효고현 고베시(5만4428명) 순으로 집계됐다.

외국인이 중요한 이유는 일본의 생산가능인구를 유지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생산가능인구(15~64세)는 전체의 59.71%로 전년 대비 거의 변동이 없었다. 외국인은 특히 유학생, 기능실습생 등 20대가 많아 노동의 주축이 되고 있다.


 인구 늘리고 생산성 높여야

일본은 외국인 근로자를 늘리기 위해 안간힘이다. 일본 국회는 올해 개발도상국 출신 외국인 기능직 취업을 장려하는 ‘기능실습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기존 ‘기능 실습’을 대신하는 ‘육성 취로’라는 제도를 새로 도입한 것이 핵심이다.

육성 취로 제도로 3년간 일한 뒤 기능 시험과 일본어 테스트 등을 통과하면 최장 5년간 취업할 수 있는 ‘특정 기능 1호’ 자격을 얻을 수 있다. 그 후엔 재류 자격을 갱신하며 계속 살 수 있는 ‘특정 기능 2호’가 되는 것도 가능하다. 특정 기능 2호는 가족과 함께 살 수 있고 향후 영주권도 신청할 수 있다. 특정 기능 근로자는 현재 일본에 20만 명가량 있는데 일본 정부는 이를 최대 80만 명까지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일본 경제의 미래가 없다는 지적이다. 데이비드 웨인스테인 미국 컬럼비아대 경제학 교수의 분석이다. 버블 경제가 붕괴한 뒤 일본이 저성장에 빠진 첫 번째 원인이 바로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생산가능인구 축소라는 것이다.

일본은 오랜 기간 정체됐던 물가와 임금이 오르기 시작했다. 덕분에 마이너스 금리가 해제되며 ‘금리 있는 세상’이 열렸다. 일본의 지난해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597조 엔으로 올해 처음으로 600조 엔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이 잘해서 성장한 것이 아니다. 코로나19 때 공급 제약으로 촉발된 세계적 인플레이션 때문이다. 실질 GDP 기준으로는 성장했다고 볼 수 없다. 올해 1분기엔 전기 대비 성장률이 연율 기준 마이너스 2.9%를 기록했다. 결국 생산가능인구 증가와 함께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는 게 여러 경제학자의 지적이다.

도쿄=김일규 한국경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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