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비 탓에 죽었다?…갑자기 떠난 '로큰롤 황제'의 말년[뉴스속오늘]
[편집자주] 뉴스를 통해 우리를 웃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1977년 8월16일, '로큰롤의 황제' 엘비스 에런 프레슬리(Elvis Aaron Presley)가 향년 42세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엘비스는 미국 테네시주 멤피스의 자택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다.
공식 사인은 '심장마비'였다. 하지만 현재까지도 그의 사망 원인과 관련한 소문은 무성하다.
프레슬리의 주치의였던 조지 니코플러스 박사는 지난 2010년 진짜 사인을 '만성변비'라고 주장해 화제가 됐다. 부검 당시 나온 대변량만 20kg이 넘었다고 한다.
이 밖에도 그는 생전 다양한 건강 문제를 겪고 있었다. 혈액에선 아편 계 약물이 꽤 높은 수치로 검출됐다. 마지막 7개월여간 의료진으로부터 최소 8805개의 알약, 주사제 등을 처방받기도 했다.
또 사망 당시 그를 옮겼던 구급대원은 프레슬리의 체중이 250파운드(약 113kg) 정도로 무거웠다고 증언했다.
엘비스는 1935년 1월8일 미국 미시시피주 투펄로의 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넉넉지 않은 형편이었다. 가족 중엔 어머니와 유독 사이가 각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교회는 그에게 음악적 영감을 심어준 곳이었다. 생일날 받은 기타를 들고 교회에 가서 레슨을 받기도 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는 학교에 매일 기타를 들고 등교해 점심시간마다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했다.
프레슬리는 제대로 된 음악 수업을 받지 않아 악보를 읽지 못했고 귀동냥으로 음악을 배웠다. 종종 음반 판매점에 들러 주크박스와 청취 부스에서 음악을 듣곤 했다고. 그는 행크 스노, 로이 아커프, 어니스트 터프, 데트 다팬, 지미 로저스, 지미 데이비스 등 컨트리 가수의 음악을 즐겨 들었다.
1950년대 초반부터 프레슬리는 본격적으로 가수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1956년 1월 싱글 '하트브레이크 호텔(Heartbreak Hotel)'을 발매하며 데뷔에 성공했다.
데뷔 후 '하운드 도그(Hound Dog)', '러브 미 텐더(Love Me Tender)', '제일하우스 록(Jailhouse Rock)' 등 다양한 명반을 쏟아냈고 인기는 당연한 수순으로 따라왔다. 하반신을 흔드는 파격적인 춤사위는 물론 흑인의 전유물로 취급되던 로큰롤을 선보이며 미국 내 큰 화젯거리가 됐다. 훤칠한 키와 잘생긴 외모도 한몫했다.
젊은 층에서의 인기는 대단했다. 1958년 입대한 엘비스는 주서독 미 육군에서 복무했는데, 당시 수많은 여성 팬들이 그를 보기 위해 서독을 방문할 정도였다.
1967년 5월1일엔 군 복무 중 만난 11살 연하 프리실라 앤 프레슬리와 결혼했고 이듬해 하나뿐인 딸 리사 마리 프레슬리를 낳는다.
엘비스는 1968년 NBC 방송국에서 특집 방송으로 편성한 복귀 프로그램을 통해 재기에 성공했다. 1969년 라스베이거스에서만 4주간 총 57회 공연을 선보였고 1970년 6회에 걸친 투어에는 총 20만 명 넘는 인파가 몰렸다. 1972년 존 레논, 밥 딜런, 데이비드 보위 등 당대 최고 가수들과 함께 출연한 뉴욕 공연도 매진을 기록했다.
심지어 그는 1970년 12월21일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에게 만나고 싶다는 서한을 보내 백악관에서 만남을 가졌다. 두 사람의 만남은 2년여간 비밀이었다 1972년이 돼서야 워싱턴포스트에 의해 대중에 알려졌다.
1973년에는 세계 최초로 인공위성 생중계된 자선 공연 '엘비스: 알로하 프롬 하와이'를 진행했다. 당시 40개국에서 약 15억명이 동시에 공연을 시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8만5000달러(약 1억 1645만원)가 기금으로 모였다.
그러나 엘비스의 인기는 하와이 공연을 끝으로 점차 하락하기 시작했다.
같은 해 10월엔 아내 프리실라와 합의 이혼하게 됐다. 이혼에서 온 상실감 때문인지 그는 폭식하게 됐고 체중이 한때 74kg에서 117kg까지 늘어났다고. 또 잠에 들기 위해 수면제를, 잠에서 깨기 위해 각성제를 반복적으로 복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타공인 세계 최고의 로큰롤 황제, 엘비스 프레슬리.
그는 역사상 많은 음반을 판매한 솔로 아티스트로 알려져 있다. 등한시되던 로큰롤이란 음악 장르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으며, 당시 무시 받던 흑인 음악으로 전 세계적 성공을 거둔 인물이었다. 또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주요 타깃이 그의 등장으로 장년층에서 청년층으로 옮겨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엘비스는 대중음악계 판도를 뒤집어 놨다.
지난 2018년 미국 백악관은 '자유의 메달' 수상자 중 한 명으로 엘비스 프레슬리를 선정했다. 자유의 메달은 국가안보와 세계평화, 문화 분야에 공헌한 미국인에게 수여되는 상이다.
백악관은 "엘비스 프레슬리는 전 세계 많은 팬에게 미국 문화를 규정하는 인물이다. 그는 가스펠, 컨츄리, 리듬 앤드 블루스(R&B) 등을 자신의 음악에 융합해 10억장 넘는 음반 판매 기록을 세웠다"며 "사후 40여년이 지났지만, 프레슬리는 영원한 미국의 영웅"이라고 평가했다.
세상을 떠난 지 약 50년이 지났지만 엘비스 프레슬리는 현재까지도 많은 돈을 벌고 있다. 포브스가 사후 수익 순위를 집계한 2001년 이래로 한 번도 순위권에서 빠지지 않았으며 마이클 잭슨 사망 전까진 줄곧 1위를 차지했다.
엘비스의 전처인 프리실라는 올해 79세로 여전히 살아있다.
반면 싱어송라이터였던 외동딸 리사 프레슬리는 지난해 1월 54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사인은 소장 폐색증. 사망 수년 전 받은 비만 대사 수술로 장내 유착물이 생기면서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리사는 불과 4살 때 부모님의 이혼으로 아버지와 떨어져야 했으며 9살엔 세상을 떠난 아버지와 영영 이별해야 했다. 그는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에도 베벌리 힐스에서 열린 골든글로브 시상식에 참석했다. 아버지 이야기를 다룬 영화 '엘비스(Elvis)'에서 주연을 맡은 오스틴 버틀러가 남우주연상을 수상하자 이를 지켜보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리사 프레슬리는 대니 키오, 마이클 잭슨, 니콜라스 케이지, 마이클 락우드 등과 총 4번 결혼했고 4번 이혼하는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았다. 2020년엔 아들 벤자민 키오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도 했다.
민수정 기자 crystal@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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