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다고 마구 잡았더니…완전히 사라진 50억마리의 새[멸종열전]
웬만한 사람이면 미국 초대 대통령 이름 정도는 대부분 기억한다. 조지(George) 워싱턴. 그렇다면 그의 아내 이름은 무엇일까?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아내 이름도 가물가물한데 그걸 우리가 어떻게 알겠는가! 아무튼 조지 워싱턴의 아내 이름은 마사(Martha)다. 오늘의 주인공이다.
“○○○들이 하늘의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머리 위를 3일 밤낮에 걸쳐 휩쓸고 지나갔습니다. 말 그대로 하늘이 ○○○ 떼로 가득 찼습니다. 한낮의 빛은 일식처럼 가려져 있었고, 배설물은 녹는 눈조각처럼 점점이 떨어졌으며, 계속되는 윙윙거리는 날개 소리에 나는 최면에 걸릴 것만 같았습니다.”
여기서 ○○○은 무엇일까? 아마도 많은 독자들은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인 펄 벅(Pearl Buck, 한국명 박진주, 1892~1973)의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흑백영화를 떠올릴 것이다. 1970년대 KBS <명화극장>에서 무던히도 방영하던 <대지> 말이다. 어린 내가 볼 때도 당시 많이 보여주던 히치콕의 영화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어설픈 영화였다. 미국 배우가 중국인 역할로 등장할 정도니 말 다 했지 않은가. 하지만 한 장면만은 강렬히 남아있다. 장면을 말로 풀면 이렇다.
“드넓은 평원에 메뚜기가 가득하다. 메뚜기 떼가 지나간 곳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무서운 메뚜기 떼가 마을로 다가오자 농부들은 논과 밭의 작물을 지키려고 사력을 다해서 싸운다.”
그렇다면 위에 나오는 ○○○의 정체는 ‘메뚜기’일까? 아니다. 위 글을 기록한 사람은 역사상 가장 유명한 조류학자인 존 제임스 오듀본(1785~1851)이다. 그렇다면 새여야 한다. 그 새의 학명은 엑토피스테스 미그라토리우스(Ectopistes migratorius). 종명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여행비둘기 또는 나그네비둘기라고 부르는 야생 비둘기다.
가슴살과 기차
19세기까지만 해도 여행비둘기는 미국 하늘을 잔뜩 날았다. 지구 인구가 10억명에 불과하던 시절에 여행비둘기는 50억마리에 달했다. 그런데 지금은 단 한 마리도 남아 있지 않다. 어떻게 된 일일까? 그 답을 우리는 문학에서 찾을 수 있다. 캐나다 작가 윌리엄 버처는 자신의 단편 소설 ‘깃털 달린 폭풍(A feathered Tempest)’에 이렇게 묘사했다.
“짙푸른 캔버스였던 하늘은 살아서 펄떡이는 날개 덩어리로 변해 있었다. 새들은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의 파도처럼 보일 정도로 빽빽하게 날아다녔다. 아래에서 소총을 든 사냥꾼들이 일제히 조준하고 발사했다. 귀를 의심케 하는 굉음이 계곡에 울려 퍼졌고, 곧 공기는 화약과 피의 악취로 가득 찼다. 비둘기들이 가을 낙엽처럼 쏟아져 내렸고, 그들의 몸은 역겨울 정도로 규칙적으로 땅에 쿵쿵 부딪혔다. 어떤 비둘기들은 땅에 닿기도 전에 죽었고, 어떤 비둘기들은 힘없이 퍼덕이며, 안타까운 경련을 일으키며 목숨을 다해 날아갔다. 사냥꾼들은 무표정한 얼굴과 차가운 눈빛으로 쓰러진 사체들 사이를 다니며 아직 살아 있는 시체들을 몽둥이로 내리쳤다. 그들에게 그것은 학살이 아니라 수확이었으며, 끝이 없어 보이는 자연이 그들에게 부여한 포상금이었다.”
19세기, 개체수가 지구 인구의 5배
파도처럼 보일 만큼 하늘에 빽빽
처음엔 식용…이후엔 재미로 잡아
사격장 표적으로 쓰고 통조림까지
수십년 사이 급감…동물원서 보존
미 영부인 이름 딴 암컷 1914년 숨져
멸종 시간 정확하게 아는 유일한 종
유전적 다양성 낮아 환경 적응 실패
북아메리카에 자리를 잡은 유럽인들에게 여행비둘기는 이집트를 탈출한 히브리인에게 내려진 만나와 같은 존재였다. 여행비둘기는 이름 그대로 먹이와 서식지를 따라 수천㎞ 장거리 여행을 했다. 몸무게는 300~400g으로 비둘기 중에서는 비교적 큰 편이었다. 가슴 부위가 매우 발달되어 있으며 맛도 있었다. 워낙 많은 개체가 함께 이동하기 때문에 특별히 사냥 기술이 좋지 않아도 하늘을 향해 총을 쏘기만 하면 쉽게 잡을 수 있었다.
사람이 아무리 많이 잡는다고 해서 그걸 어떻게 다 먹겠는가? 고기는 버리고 깃털을 이불과 베개에 넣기도 했다. 여행비둘기는 잡아도 잡아도 많았다. 심지어 오듀본이 “이런 잔혹한 대량 살육을 보며 이 종은 곧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개체수가 늘었다”고 기록했을 정도다. 먹는 것을 넘어서 여행비둘기를 재미 삼아 사냥했다. 심지어 놀이동산에서 장난감 총으로 지나가는 오리를 쏘는 것처럼, 여행비둘기를 산 개체로 잡아서 사격장의 표적으로도 썼다.
그런데 아뿔싸! 19세기에 들어 미국 곳곳에 철도가 들어섰다. 그리고 통조림 기술이 상용화되었다. 이젠 당장 먹을 만큼만 잡는 게 아니라 잡을 수 있는 대로 잡아서 통조림을 만들어 전국에 판매했다.
여행비둘기는 하늘을 날지 않을 때도 쉽게 잡혔다. 여행비둘기는 밤나무, 너도밤나무 열매와 참나무 도토리, 블루베리를 찾아 다니며 먹고 잤다. 수백, 수천마리가 함께 잠자리를 만들었다. 사람들은 잠자리를 튼 나무 밑에 유황을 태우거나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려서 여행비둘기를 잡았다. 1860년대에 활발히 이용하게 된 전신 기술의 발전도 여행비둘기에게는 치명적이었다. 전신을 통해 여행비둘기의 경로에 대한 정보가 쉽게 전파되었다.
1914년 9월1일 오후 1시 멸종
여행비둘기 개체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자 당장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여행비둘기는 나무 열매를 먹고 씨앗을 퍼뜨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또 그들의 똥, 구아노는 토양을 비옥하게 했다. 여행비둘기 개체수 감소는 밤나무와 참나무 개체수를 줄였으며 숲 구성을 바꾸었다. 여행비둘기가 줄자 도토리 같은 열매가 나무 아래에 쌓이고 설치류가 증가했다. 대신 여행비둘기를 즐겨 먹던 독수리와 여우는 다른 먹이를 찾아야 했다.
여행비둘기는 한 지역에 너무 많은 수가 둥지를 틀기 때문에 새의 무게로 나뭇가지가 부러지기도 하고 때로는 나무 전체가 쓰러지기도 했다. 이것은 파괴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캐노피에 구멍을 만들어서 햇빛이 바닥에 닿게 하여 새로운 식물의 성장을 촉진해 숲을 역동적으로 만들었다. 여행비둘기가 사라지면서 자연 교란의 빈도가 줄어들었다.
여행비둘기의 감소가 생태계에 안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사람들도 여기에 대처하기 시작했다. 1857년 오하이오주에서는 여행비둘기 보호법안이 제출되었다. 하지만 기각되었다. 당시로서는 여행비둘기 개체수가 아직 어마어마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890년대가 되자 여행비둘기를 보기 힘들어졌다. 1900년까지 손에 꼽히는 정도의 개체만 보고되었다.
1907년 뉴욕시는 비둘기를 사격장의 산 표적으로 삼지 못하게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야생 개체가 마지막으로 총에 맞아 죽은 게 1906년의 일이었다. (도대체 이런 법은 왜 만든 것일까?) 인간에게 사로잡혀 사육되던 개체들도 슬금슬금 죽어갔다.
야생에서는 15년 정도 살지만 가정의 새장에서는 오래 살지 못했다. 오하이오주 신시내티 동물원은 수컷 두 마리와 암컷 한 마리를 겨우 키우고 있었다. 맙소사! 한때 북아메리카 조류 개체수의 40%를 차지했던 여행비둘기가 겨우 세 마리 남은 것이다. 그러다 수컷 한 마리가 죽고 암수 한 쌍만 남게 되었다. 동물원은 그들에게 조지와 마사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그렇다. 미국 초대 대통령 부부의 이름이다. 마사는 1914년 9월1일 오후 1시에 죽었다. 향년 29세.
여행비둘기는 정확한 멸종 시간을 아는 유일한 종이다. 100년이 지난 2014년 미국 스미스소니언 자연사박물관은 ‘한때는 수십억마리가 있었다’라는 특별전에 까치오리, 캐롤라이나앵무와 함께 최후의 여행비둘기 마사를 전시했다. (이 전시는 2015년 10월까지 계속되었다.)
50억마리가 0마리로
이상하다. 원래 여행비둘기는 북아메리카에 많이 살고 있었을까? 여행비둘기는 사냥하기도 쉽고 맛도 좋다. 그렇다면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주식으로 삼을 만도 했는데 그런 기록이 없다. 원주민들은 오히려 덩치가 크고 무서운 들소를 주식으로 삼았다. 그렇다면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들어온 다음에 개체수가 늘어난 것은 아닐까? 유럽인들이 북아메리카의 생태계 균형을 깨뜨림으로써 얼떨결에 여행비둘기가 과도하게 늘어난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사람이 아무리 많이 잡아도 그렇지 어떻게 50억마리가 불과 수십년 사이에 0마리가 된다는 말인가! 인간의 남획 때문에 멸종했다고 하기에는 석연치 않다. 도대체 왜 갑자기 사라졌을까? 남획 외에 어떤 이유가 있을까?
공룡의 멸종에 관한 이론이 1980년대 중반까지 100가지도 넘었던 것처럼 여기에도 다양한 가설이 있었다. 병이 돌았다, 폭풍에 사라졌다, 심지어 남아메리카로 이주했다가 낯선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몰살했다는 주장까지. 이런 걸로는 설명할 수 없다. 그럴듯한 가설이 필요하다.
가설들 중 가장 강력한 것은 동부 숲의 개간이다. 여행비둘기는 대규모 군집으로 살면서 번식해야 하는데 커다란 숲이 통째로 사라졌다. 그러자 번식 성공률이 극적으로 떨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숲의 개간이 미친 영향이 인간에 의한 사냥의 효과를 넘을 수는 없다는 게 과학자들의 판단이다.
야생 개체수가 줄어들 무렵 사육되는 여행비둘기들이 많았다. 왜 다른 비둘기와 달리 여행비둘기는 인공 번식에 실패했을까? 여행비둘기의 특징 때문이다. 여행비둘기는 겨우 한 개의 알만 낳는데 그것도 작은 집단에서는 번식할 수 없는 습성이 있다. 번식에 성공하려면 최소한의 집단 규모를 유지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지 않아 급격히 멸종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여행비둘기는 희한하게도 집단 규모는 크지만 유전적 다양성은 매우 낮았다. 인간이라는 급작스러운 환경 변화에 적응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여행비둘기는 아무리 개체수가 많아도 유전적 다양성이 낮으면 쉽게 멸종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사람은 이제 80억명이나 된다. 엄청난 개체수다. 여기에 걸맞은 유전적 다양성이 있는지 의문이다.
최후의 여행비둘기로 기념되는 마사는 정작 단 하루도 야생에서 산 적이 없다. 아마도 시카고 브룩필드 동물원 또는 밀워키 동물원에서 태어났을 것이다. 나중에 신시내티 동물원에 기증되었다. 아무튼 미국 국민들은 복을 받았다. 그래도 최후의 한 쌍에게 이름을 붙일 정도로 사랑하고 존경하는 대통령 부부를 가졌으니 말이다. 만약 1993년 이후 관찰하지 못하고 있는 크낙새 한 쌍을 2024년에 발견한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대통령 부부 이름을 붙일 수 있을까?
▲필자 이정모
여섯 번째 대멸종을 맞고 있는 인류가 조금이라도 더 지속 가능하려면 지난 멸종 사건에서 배워야 한다고 믿는다. 연세대학교와 같은 대학원에서 생화학을 공부하고 독일 본대학교에서 유기화학을 연구했지만, 박사는 아니다. 서대문자연사박물관, 서울시립과학관, 국립과천과학관에서 일했으며 현재는 대중의 과학화를 위한 저술과 강연, 방송 활동을 하고 있다. <과학이 가르쳐준 것들> <과학관으로 온 엉뚱한 질문들> <살아 보니, 진화> <달력과 권력> <공생 멸종 진화> 등을 썼다.
이정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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