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유전자’ 없이 태어난 아이들…막장 드라마 이야기가 아니다 [책&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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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두 아이를 키우던 26살의 리디아가 사회복지 지원 신청을 하면서 친자 확인 검사를 받았다.
몇 주 후 사회복지과에서는 리디아와 두 아이의 디엔에이(DNA)가 불일치한다고 통보했다.
리디아의 모친, 아이들의 친부, 심지어 산부인과 의사도 리디아가 두 아이를 임신·출산했다고 증언했지만, 복지과 직원은 믿지 않았다.
리디아의 말을 믿지 않은 판사도 셋째 아이 출산을 하려는 리디아에게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유전자 검사를 하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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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쌍둥이’의 DNA도 내 몸에
“인간은 ‘자기’와 ‘비자기’의 뒤섞임”
친절한 설명, 인문학적 서술 돋보여
마이크로 키메리즘
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타인의 DNA
리즈 바르네우 지음, 유상희 옮김, 신의철 감수 l 플루토 l 1만8500원
혼자 두 아이를 키우던 26살의 리디아가 사회복지 지원 신청을 하면서 친자 확인 검사를 받았다. 몇 주 후 사회복지과에서는 리디아와 두 아이의 디엔에이(DNA)가 불일치한다고 통보했다. 리디아는 억울했다. 리디아의 모친, 아이들의 친부, 심지어 산부인과 의사도 리디아가 두 아이를 임신·출산했다고 증언했지만, 복지과 직원은 믿지 않았다. 리디아의 말을 믿지 않은 판사도 셋째 아이 출산을 하려는 리디아에게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유전자 검사를 하라고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놀랍게도 리디아의 자궁에서 막 나온 셋째 아이도 유전적으로 그의 아들이 아니었다. 도대체 리디아와 리디아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마치 단편 추리소설을 보는 듯 흥미진진한 이 이야기는 ‘마이크로 키메리즘’에 등장한다. 불륜 소재 드라마에서 상대방을 의심하는 배우자가 아이의 머리카락을 몰래 채취해 유전자 검사를 맡기는 장면이 흔히 등장한다. 이런 장면은 사람마다 고유한 디엔에이를 갖고 있고, 유전자 검사를 통해 친자 확인이 가능하다고 믿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러나 현대 과학의 연구와 발전에 따라 이런 믿음은 흔들리고 있다. 과학 저널리스트이면서 이 책의 저자인 리즈 바르네우는 “디엔에이 지문 하나로 한 사람의 정체성이나 기원을 밝힐 수 있다는 견해를 학설의 지위에 올려놓기엔 우리의 생물학은 너무 부족하다”고 말한다.
리디아의 얘기로 돌아가면, 리디아의 피부, 머리카락, 뺨 안쪽에서 채취한 세포는 아이들의 디엔에이와 달랐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리디아의 자궁경부 세포에서 다른 디엔에이가 나왔고, 아이들의 디엔에이와 일치했다. 당시 리디아 사례를 연구한 연구자들은 이 다른 디엔에이는 “(임신 초기 리디아와 함께 리디아 엄마의 자궁에 있다) 사라진 쌍둥이 자매에서 비롯된 디엔에이”라고 추정했다. 책에 따르면, 외동 임신의 10~30%는 두 개의 배아에서 시작되고, 이 배아들은 극초기에 하나로 합쳐지거나 며칠 후 한 배아가 살아 남은 배아에 세포를 물려주고 사라진다. 과학자들은 이 배아를 ‘사라진 쌍둥이’ 또는 ‘유령 쌍둥이’라고 부르는데, 어떤 사람은 자신의 유전적 프로필 외에도 ‘사라진 쌍둥이’의 유전적 프로필까지 동시에 갖고 태어나기도 한다. 이처럼 내 몸 안에 다른 사람에게서 온 세포를 갖고 있는 현상을 ‘마이크로 키메리즘’이라고 부른다. 이 용어는 그리스 신화에서 사자의 머리, 염소의 몸, 뱀의 꼬리를 한 ‘키메라(chimera)’를 차용해 만들었는데, 발견 당시 과학자들은 ‘외래 세포’가 염증을 유발할 것이라는 공포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많은 연구 결과, 외래 세포들은 우리 몸에서 능동적으로 장기와 통합하고 협력한다는 사실도 발견됐다.
우리 안에 있는 외래 세포로 가장 대표적인 것은 산모에서 태아로 또는 태아에서 산모로 이동하는 세포들이다. 따라서 저자는 “우리는 모두 마이크로 키메라”라고 말한다. 또 먼 할머니 세포가 엄마의 장기에 저장됐다가 태반을 통해 아래 세대에게 건너가기도 하고, 장기 기증자의 세포나 성적 파트너의 세포들도 내 몸 안에 들어와 남아 있을 수 있다.
‘마이크로 키메리즘’의 발견은 나란 존재가 ‘자기와 비자기가 뒤섞인 존재’라는 것을 알려주고 인간 정체성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과학적 사실과 발견을 이해하기 쉽게 풀어갈 뿐만 아니라 ‘마이크로 키메리즘’이 불러일으키는 인문학적 사유까지 잘 담아냈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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