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의 피케티 ‘인류는 평등해지고 있다’ 두둔한 까닭 [책&생각]

한겨레 2024. 8. 16.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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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의 짧은 역사 토마 피케티 지음, 전미연 옮김 l 그러나 l 2만2000원 2013년 '21세기 자본'을 통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프랑스의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의 주장은 한결같다.

불평등은 단지 경제 영역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역사적·정치적 산물'이며, 하여 "경제학자, 사회학자, 철학자들에게만 맡겨둘 수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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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토마 피케티 신간 국내 소개
‘불평등 개선된 장기적 흐름’ 분명
단 1980년 이래 소유불평등 재확산
차별철폐·검증 위한 지표·절차 절실
2018년 10월30일 한겨레신문사 주최로 열린 제9회 아시아미래포럼 개막식(서울)에서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가 ‘불평등의 현재와 해법’을 주제로 기조 강연했다. 피케티는 “왜 민주주의는 불평등을 해소하지 못했는가” 먼저 묻고, “불평등 극복을 위해서는 소득세 누진세율을 올리고, 교육에서 더 많은 공공재를 제공하는 평등주의 지향의 강력한 정당 강령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겨레 자료사진

평등의 짧은 역사
토마 피케티 지음, 전미연 옮김 l 그러나 l 2만2000원

2013년 ‘21세기 자본’을 통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프랑스의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의 주장은 한결같다. 불평등은 단지 경제 영역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역사적·정치적 산물’이며, 하여 “경제학자, 사회학자, 철학자들에게만 맡겨둘 수 없다”는 것이다. 최근 국내 출간된 ‘평등의 짧은 역사’(2021)에서 토마 피케티는 이 주장을 확장시킨다. 그는 각국의 경제·기술적 발전 단계가 같더라도 “소유 체계와 경제의 체계, 사회 제도와 정치 제도, 조세 제도와 교육 제도를 만드는 방식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고 강조한다. 즉 ‘정치적 선택들’에 따라서 인간 사회의 부와 권력 분배 양상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 하나 일관된 주장은 18세기 말 이후로 비록 규모가 제한적이긴 하지만 “평등을 향한 장기적인 흐름”만큼은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제목이 ‘불평등의 역사’ 아닌 ‘평등의 짧은 역사’인 이유다. 다만 피케티는 자신이 평등을 향한 흐름이 존재한다고 말하는 이유가 “우쭐대자는 의도”가 아닌 “단단한 역사적 기반 위에서 평등을 향한 투쟁을 계속하자”고 말하기 위함이라고 강조한다.

피케티에게 인류의 진보는 기정사실이다. 의료와 교육이 대표적인 사례로 언급된다. 19세기 초 영아 사망률은 20% 내외였지만, 오늘날은 1% 이하다. 지금 인류는 “그 어느 시대보다 건강한 삶을 누리고” 있다. 교육과 문화적 혜택 역시 늘어났다. 19세기 초만 해도 전 세계 인구의 10% 미만이 초등학교에 진학했지만, 오늘날 “부유한 나라”에서 젊은 세대의 절반 이상이 대학에 진학한다. 오랫동안 “계급적 특권이었던 일이 점차 다수에게 개방”된 것이다. 물론 이러한 현상들이 선진국과 개도국 사이의 커다란 간극, 즉 “다른 차원에서의 불평등을 보다 심화”시키기도 했다. 피케티에 따르면 “평등을 향한 여정은 계단식 과정”을 밟기 때문이다. “일련의 기본적 권리와 재화에 대한 접근”이 인구 전체로 서서히 확대”되는 것은 순리다. 다만 그 과정에서 “좀 더 높은 차원에서 불평등이 나타나게 마련”인데, 이런 불평등은 새로운 접근과 해법을 요구한다. “이상적인 민주주의에 도달하기 위한 정치적 평등의 여정이 그렇듯이, 사회·경제·교육·문화적 평등의 여정 또한 결코 끝나지 않고 항상 계속되는 과정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평등을 향한 여정은 “불공정에 맞선 투쟁과 반란의 결과”다. 그렇다면 투쟁과 반란의 대명사 격인 혁명은 평등을 온전하게 가져왔을까? 반반이다. 프랑스 혁명과 뒤이은 1789년 8월 귀족계급의 특권 폐지는 평등을 향한 커다란 진보가 틀림없다. 하지만 귀족들은 “조세·정치·법률상의 특권을 완전히 상실”했는데도 이후로도 오랫동안 “소유자 계급으로서의 특권과 사회적 지위”를 누렸다. 프랑스 혁명기 부의 재분배 역시 제한적이었다. 아니 돌고 돌아 제자리였다. 왕국의 토지와 교회의 부동산 등이 배상 없이 국유화되었지만, 소작농들에게 땅이 돌아가지는 않았다. 경제력을 가진 이들이 경매를 통해 다시 차지했기 때문이다. 이는 중요한 함의를 지닌다. “국가의 보호 하에 자신의 재산으로 최대 수익을 내기 위해 애쓰는, 사회적 반대급부 없이 오로지 개인의 축재에만 몰두하는” 소유주의적이고 자본주의적인 이데올로기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피케티는 20세기, 그중 1914년부터 1980년 사이를 ‘대규모 재분배’ 시기로 규정한다. 이 시기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 스웨덴 등 서구 국가들은 물론이고 일본, 러시아, 중국, 인도 등에서도 소득과 자산의 불평등이 현저히 감소되었다. 사회적 국가(Social State)의 강력한 부상, 소득과 상속에 부과된 강력한 누진세 도입 등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만 해도 모든 종류의 세금과 분담금, 징수금을 합한 총 세수가 미국은 물론이고 유럽 전역에서 국민 소득의 10% 이하였다. 하지만 1914~1980년 사이 이 비중은 미국에서 3배, 유럽에서는 4배 증가했다. 이에 힘입어 서구 대부분의 나라가 ‘조세 재정 국가’와 ‘사회적 국가’로 도약했다. 이 국가들은 누진세를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피케티에 따르면, 누진세 덕에 불평등이 감소하고 소득과 자산의 사회 상층부 집중 현상이 완화되었다. “세금 부담 증가와 부의 사회화”가 왜 필요한지에 대한 집단적 수용성도 높였다.

2018년 10월30일 아시아미래포럼에 참석한 토마 피케티 교수가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하지만 1980년 이후 세계 곳곳에서 소유 불평등이 다시 증가했다. 미국은 반(反)노조 정책과 연방 최저 임금 붕괴가 하위 소득 감소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기업 고위 간부들의 보수가 급등하는 현상은 누진 세제가 흔들리고 있다는 방증이다. 피케티는 ‘공익을 위해서만 불평등을 허용하는’ 사회적 국가와 누진세가 “자본주의를 변화시킬 수 있는 강력한 도구”라고 강조한다. 그럼에도 소유의 재분배만으로는 자본주의를 극복하기 어렵다. 단지 경제만의 문제가 아니라 피케티가 누누이 강조한 것처럼 “사회적·역사적·정치적” 산물인 탓이다. 피케티는 평등을 향한 흐름이 도저했음에도 ‘형식적 평등’에 그친 경우가 많았다고 강조한다. “출신에 상관없이 권리와 기회의 평등을 누려야 한다”는 이론적 원칙만 설파할 뿐, 현실에 맞는지 확인·검증할 방법은 강구하지 못한 것이다. 그는 실질적인 평등을 이루기 위해서는 세계 곳곳에 만연한 “젠더 차별, 사회적 차별, 종족-인종 차별을 철폐할 수 있는 지표와 절차들을 만들어내는 것이 시급”하다고 명토 박는다. 이 길은 저절로 오지 않는, “적극적인 시민들을 요구”하는 길이다. ‘21세기 자본’의 자취가 짙게 배어 있지만, 경제학의 틀에 갇히지 않고,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평등을 쟁취하는 길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책이다.

장동석 출판도시문화재단 사무처장·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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