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의 1945년 8월15일 [책&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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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말뚝',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등을 우리에게 남기고 간 작가 박완서(1931~2011)의 단 하나 역사소설이 있습니다.
개성서 맞은 1945년 해방일, 목숨 걸고 숨겨왔을 비단 원단이 변색된 채, 사괘에 태극까지 바느질된 채 휘날리는 집집의 태극기를 보며 14살 박완서는 "개성이 내 고향이라는 게 자랑스"러워지고, 한편 일장기에 먹을 써 태극기를 급조한 자기네가 부끄럽다 했으니, 작가에게 '미망'은 "내 귀향의 방법이자 고향에 바치는 헌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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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말뚝’,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등을 우리에게 남기고 간 작가 박완서(1931~2011)의 단 하나 역사소설이 있습니다. 이번주 개정판으로 나온 ‘미망’입니다. ‘잊으려 해도 잊을 수가 없다’는 한자어죠. 구한말부터 일제 거쳐 분단 때까지를 배경으로 송상 전처만의 가족사 통해 되살리고자 한 건, 제 고향 개성(정확히는 개풍군)의 풍토입니다. 마을을 고루 적시던 시내(‘나깟줄’)를 좋아한 작가의 회고(산문집 ‘두부’)로 보면, 상인들 바지런은 청결하고, 겉치레는 마다하는 습속과도 닿습니다. 앉은 자리 풀도 안 자라는 족속이라 누군간 했겠지만요.
작가가 맨 나중 꼽은 개성 기질이 “저항 정신”입니다. 5전 들고 비누 심부름 간 아이가 신장개업한 일본인에게서 덤까지 두 개를 가져오자 그 어미가 돌려보내 조선인 가게서 하나만 사오게 했다는 일화, 그러니 일본 상인들이 개성엔 발을 못 붙였다는 “누구나 다 아는 사실” 따위가 근거죠. 개성서 맞은 1945년 해방일, 목숨 걸고 숨겨왔을 비단 원단이 변색된 채, 사괘에 태극까지 바느질된 채 휘날리는 집집의 태극기를 보며 14살 박완서는 “개성이 내 고향이라는 게 자랑스”러워지고, 한편 일장기에 먹을 써 태극기를 급조한 자기네가 부끄럽다 했으니, 작가에게 ‘미망’은 “내 귀향의 방법이자 고향에 바치는 헌사”였습니다.
‘미망’ 연재 중인 1988년 작가는 남편과 아들을 잃습니다. “내가 독재자라면 88년 내내 아무도 웃지도 못하게 하련만. 미친년 같은 생각을…”하다 1990년 ‘미망’은 기어코 완결되었으니, ‘고향’은 그 고통마저 달래고 박완서를 불러낸 것이라 하겠습니다.
최근 여기저기서 근거입네 진실입네 학자연하며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을 뒤집고 조롱합니다. 누군가에겐 오염된 ‘고향’의 기억이 되고 말 터, 미망의 미래 그게 두려울 뿐입니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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