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을 접고 새로움을 펼치는 그림책 [책&생각]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일반 그림책의 책장을 넘기는 방식으로는 이 책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림책 '접으면'의 삽지에 쓰여 있는 말이다.
그 후, 종이와 필름지가 결합된 본문, 빛을 비추면 새로운 형상이 드러나는 가공, 구멍 뚫기, 특이 판형 등 물성이 강조되는 책들을 내면서, '제작비가 많이 들어서 출판하기 어렵다', '비싼 책은 안 팔린다'라는 말들을, 수십 번의 독자 모니터링을 거치며 극복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접으면
김윤정·최덕규 지음 l 윤에디션(2023)
“일반 그림책의 책장을 넘기는 방식으로는 이 책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림책 ‘접으면’의 삽지에 쓰여 있는 말이다. 뭐지? 책장을 펼치며 작가가 암시하는 신호를 알아차리기 위해 집중한다. 양각으로 숨어 있듯이 표시된 선을 따라 접으며, 새롭게 드러나는 이미지에 집중한다. 책장을 넘기고 접으면서 바뀌는 이미지들을 살핀다. 그다음에는 책장을 접음으로써 성큼 줄어드는 그림책 속 공간 사이의 거리와 시간을 즐긴다. 더불어 달라지는 이미지에 따라 글이 다른 느낌으로 전달되는 것을 경험한다. 그러다 어, 그림책의 두 주인공을 알아차린다. 이제 각 화면을 연결하면서 전체 서사를 생각할 차례다. 이렇게 이 책은 읽는 행위에, 넘기는 것뿐만이 아니라 접는 것을 포함시킨다. 또한 서사를 먼저 파악하는 관습적 책읽기와는 역방향으로 그림책 보기를 하게 된다.
이 책의 키워드인 ‘접다’ ‘펼치다’는 종이를 다루는 행위이자, ‘생각을 접는다’, ‘꿈을 펼치다’와 같이 중의적 의미로 사용된다. “접으면 보이지/ 작은 시작이/ 시작은 계속할 수 있는 마음을 주지”라는 문장처럼 책의 형식을 활용하여 책읽기 행위와 의미를 맞아떨어지게 한다. 이것은 의미와는 상관없이 흥미를 돋우기 위해 습관적으로 책의 여러 장치를 사용하는 것과 대비된다.
‘접으면’의 차별점은 또 있다. 부부작가인 김윤정, 최덕규가 직접 만든 ‘윤에디션’이라는 출판사를 통해 창작, 디자인, 제작, 판매 모든 과정을 직접 하고 있다. 시작은 김윤정 작가의 첫 더미북인 ‘냠냠’이 13곳의 출판사로부터 거절당하고 절박함으로 2014년 볼로냐국제아동도서전에 참여하면서였다. 국내를 벗어난 세계 시장으로의 인식 전환이었다. 그 후, 종이와 필름지가 결합된 본문, 빛을 비추면 새로운 형상이 드러나는 가공, 구멍 뚫기, 특이 판형 등 물성이 강조되는 책들을 내면서, ‘제작비가 많이 들어서 출판하기 어렵다’, ‘비싼 책은 안 팔린다’라는 말들을, 수십 번의 독자 모니터링을 거치며 극복했다. 2018년에는, 제본이 복잡한 ‘롱북’을 실험 삼아 200권 제작해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이만원에 팔았는데 수 시간 만에 매진된 것을 계기로 독립출판사를 차렸다. 또한 기존 그림책에서 채택하지 않은 실험적 형식을 받아주는 곳을 찾다가 덜컥 공장을 인수하기까지 했다. 이렇게 두 작가의 창작, 제작, 유통과정에서의 도전과 실험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기존 유통 시스템을 이용하지 않은 위험부담은 어떻게 극복했을까? 작가가 직접 배송을 하기에 가능한, 구입자 저마다에게 특별함을 부여해주는 방식이다. 가령 띠지에 받는 사람의 이름을 넣어주는 서비스나, 독자들과의 접점 확대, 스토어를 통한 밀착 대응이 그것이다. 책을 받아본 독자의 생생한 리뷰가 쌓이고, 자신만을 위한 책이 아닌 주변에 선물해주는 책으로 확산되었다. 윤에디션의 첫 책 ‘빛을 비추면’은 2018년 나온 후 현재까지 2만3000부가 판매됐다고 한다.
강연이나 소셜미디어 활동 등 작가들의 직접적 홍보가 매출에 영향을 준다고 하는 요즘이다. 기존 출판 시스템에 도전하고, 작가의 역할을 극대화한 환경에서 태어난 ‘접으면’은 어떤 길을 걸을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일이다.
조은숙 그림책 연구자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대학에서, 친구따라, 병원에서…처음 마약에 손댄 순간
- 광복절 초유의 “매국정권” 구호…‘윤석열 역사인식’에 시민 분노
- 흡수통일 선언하며 북에 대화 제안…‘이상한’ 윤석열식 통일 구상
- KBS, 광복절 ‘기미가요 방송’ 사과…“진짜 미친 건가 싶습니다”
- 광복절 행사 두 동강…대통령실은 광복회 깎아내리기
- [단독] 미추홀구서만 전세사기 54채 낙찰…법 개정 늑장에 법원 따라 ‘복불복’
- “아기 주검이 떠 있다” 신고…세종시 저수지서 신생아 시신 발견
- ‘명품백 김건희’ 무혐의 전망…이원석, 퇴임 전 수사심의위 꾸릴 수도
- ‘안세영 청소·빨래’도 조사하나…배드민턴협회, 16일 첫 진상조사위
- ‘불교코어’에 ‘업보세탁소’까지…MZ가 점찍으니, 불교도 힙해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