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내 눈앞에서 사라지거라” 수탈자에게 여자는 괴물이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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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여성 작가가 여성의 세계를 사자후한 것이지만, 대목대목 여성 독자에게 불편할 수 있다.
"죽은 것들보다 살아 있는 것들을 더 무서워해야 한다"는 짐짓 상투적인 말이 폭발하는 맥락이 바로 여성들이 감당 중인 세계의 실체다.
"내 눈앞에서 사라지거라, 여자여." 시인 김혜순의 추천사대로 여성이 "산다는 건 살아남은 것"이라서, 각 소설은 기록이고 증언이자 내일도 산다는 각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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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계
마리아 페르난다 암푸에로 지음, 임도울 옮김 l 문학과지성사 l 1만5000원
이 소설은 여성 작가가 여성의 세계를 사자후한 것이지만, 대목대목 여성 독자에게 불편할 수 있다. 적나라함 때문이다. “죽은 것들보다 살아 있는 것들을 더 무서워해야 한다”는 짐짓 상투적인 말이 폭발하는 맥락이 바로 여성들이 감당 중인 세계의 실체다.
단편 ‘괴물’은 10대 초반 쌍둥이 자매의 한 시절에 대한 기록이다. 겁 많고 순한 메르세데스와 ‘나’는 학교에서 무시당하는 게 싫어 공포영화를 찾아본다. ‘엑소시스트’, ‘샤이닝’, ‘나이트메어’ 따위를 억지로 빌려다 본다. 영화보다 더 무서운 악몽을 감당해야 한다. 영화와 꿈보다 더 잔혹한 공포는 없다. 하지만 자매를 돌보는, 고작 두 살 더 많은, 14살가량의 거주 가사도우미 나르시사의 말은 다르다. 특히 자매들이 생리를 시작한 때로부터, “인생을 4백 번은 산 사람”처럼, 자매들의 팔을 아플 만치 꽉 붙들고서 말한다. “이제 진짜로 죽은 것들보다 살아 있는 것들을 더 조심해야 한다”고, “이제 진짜로 죽은 것들보다 살아 있는 것들을 더 무서워해야 한다”고, “이제 여자가 된 거”라고. 자매는 울고 만다. 그날 밤 또 악몽을 꾼 자매는 나르시사를 찾는데…. 비명 지르는 딸들의 뺨을 때리고 천연스레 침실로 돌아가는 아빠와 마주했을 뿐이다.
‘괴물 2’로 불러도 이상할 게 없는 단편 ‘경매’는 투계꾼 아빠를 따라 투계장에서 자라는 여자아이의 얘기다. 내장이 터지고 털 뭉치가 뽑혀 나간 수탉들에 놀라도 아빠는 위로하지 않는다. 되레 “계집애처럼 굴지 말라고. 그냥 닭이잖아, 씨발” 할 뿐이다. 투계꾼 남성들이 만지고 입을 맞춰도 딸은 아빠에게 말하지 못한다. “계집애처럼 굴지 말라고. 그냥 투계꾼이잖아, 씨발” 할까 봐. 다만, 이 아이가 무지하고 무책임한 아버지로부터, 그를 가해하는 남자무리들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는 방법을 가르친 것도 투계장이니, 그건 저 또한 괴물이 되는 일이다. 창자가 터지고 피똥이 섞여 죽은 닭은 험상한 투계꾼들도 꺼린다는 사실을 안 뒤다. 악마가 되려던 그들이 기겁해 되레 말하길, “네 딸은 괴물이야.”
‘투계’는 에콰도르 출신의 언론인이자 소설가인 마리아 페르난다 암푸에로(48)의 2018년 소설집이다. 피할 수 없고 은폐된 채 대물림되는 남성 가족의 폭력, 여성을 차별하고 억압하며 수탈해 가는 가부장 사회, 그에 맞서 욕망하길 멈추지 않는 여성들의 숭엄한 생존투쟁을 13편 단편으로 전한다. 욘 포세식 단문으로 몰아치는 단편 ‘수난’은 그 모든 현실의 뒤틀린 ‘신화’ 같다. 다 빼앗은 채 군림하는 ‘그’의 말. “내 눈앞에서 사라지거라, 여자여.” 시인 김혜순의 추천사대로 여성이 “산다는 건 살아남은 것”이라서, 각 소설은 기록이고 증언이자 내일도 산다는 각오다. 그렇게 새 신화가 쓰이고 있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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