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서 저녁까지, 몇 마디의 말과 몸짓이 바다를 이뤄 [책&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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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더위 이야기를 한다.
열대야를 견디기에 어떤 책이 좋을까? 이런 책은 어떨까.
이야기는 인간의 찰나와도 같은 빛이 세상 만물 위로 부드럽게 번지는 책.
아직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일이 있을까? 살아 있는 사람들은 무와 무 사이, 혼자와 혼자 사이, 아침과 저녁 사이에서 이제는 세상을 떠나고 없는 사랑했던 사람들의 "커피 더 마실 거죠?" "담배 그만 피워요" "조심해" 같은 몇 마디 말들, 몸짓들을 떠올리며 눈물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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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그리고 저녁
욘 포세 지음, 박경희 옮김 l 문학동네(2019)
모두가 더위 이야기를 한다. 열대야를 견디기에 어떤 책이 좋을까? 이런 책은 어떨까. 여름밤은 부드럽고 겨울은 얼음 위로 눈송이가 하늘하늘 떨어지는 북구 출신의 작가가 쓴 책. 배경은 광활하고 외로운 곳인 책. 이야기는 인간의 찰나와도 같은 빛이 세상 만물 위로 부드럽게 번지는 책. 그런 조건에 딱 들어맞는 작품이 있다. 노르웨이 작가 욘 포세의 ‘아침 그리고 저녁’. 책의 내용은 단순하다. 소설의 첫 장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다. 아이가 태어나는 동안 아버지는 이런 생각을 한다.
“이제 아이는 추운 세상으로 나와야 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는 혼자가 된다, (…) 언제나 혼자일 것이다, 그러고 나서, 모든 것이 지나가, 그의 때가 되면, 스러져 다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왔던 곳으로 돌아갈 것이다. 무에서 무로, 그것이 살아가는 과정이다. 동물이나 새, 물고기, 집, 그릇, 존재하는 모든 것이, (…) 어디 그뿐이랴. 인간이 무에서 무 같은, 그런 것을 생각할 수는 있다 해도, 그것만은 아닌 것이, 그 이상의 많은 것이 있다. 하지만 그 다른 것들이란 무엇인가?”
다음 장에서 요한네스라 이름 붙여진 그 갓난아이는 노인이 되었고 홀로 죽어가고 있다. 노인 요한네스는 보통 때처럼 아침에 일어났다. 그는 평생 그래 왔듯 부엌으로 가서 담배를 한 대 입에 물고 커피 주전자를 들고 물을 받아 가스레인지 위에 올린다. 그리고 치즈를 바른 빵을 먹는다. 늘 하던 일들이다. 그런데 그날 아침 사물들은 좀 이상했다. “제각기 지금까지 해온 일들로 인해 무겁고, 동시에 가볍다.” “모든 사물들이 그 자신처럼 나이 들어 각자의 무게를 지탱하며 거기 서서, 전에는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고요를 내뿜고 있다.” 그날은 물건들이 다 금빛으로 반짝였다. 대체 모든 것이 달라 보이는 이유는 뭔가? 그 자신은 여느 때와 다름없고 오늘 아침은 다른 모든 아침과 같지 않은가? 그런데도 모든 것을 달라 보이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어쨌든 바다로 나가는 것 말고 달리 뭘 할 수 있겠는가?
그는 바다에서 평생을 함께한, 그러나 이제는 세상을 떠난 친구를 만난다. 요한네스는 바다와 언덕과 들판, 해안가 집들을 둘러본다. 야생초들, 그의 작은 배, 보트하우스. 모두 그가 잘 아는 것들이고 평생 그가 속해 있던 것들이다. “그것들을 다시는 볼 수 없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그것들은 마치 소리처럼, 그렇다, 그 안의 소리처럼 그의 일부로 그 안에 머물 것이다.” 그는 갈매기 한 마리가 날아올라 바람과 함께 사라지는 것을 본다. “모두 얼마나 자주 봐왔던 것들인가.” 이렇게 해서 자전거, 낡은 주전자, 커피잔, 기억 속의 사람들, 외로운 부둣가 작은 갈매기 한 마리까지 작별하기 어려운 성스러운 것이 된다. 요한네스는 이제는 죽고 없는 아내, 젊은 날 사랑을 느꼈던 여인을 만난다. 그다음엔 육체와 말을 잃고 머나먼 서쪽 바다로 친구를 따라간다.
욘 포세는 인간이라면 필연적으로 만나게 될 죽음의 순간을 격렬한 감정적 동요 없이, 가끔씩은 감정을 내비치면서도 절제하면서 썼다. 한 인간의 삶을 -그리 오래지 않아 사라지기 때문에 아쉬워하는- 겨울빛처럼 썼다.
아직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일이 있을까? 살아 있는 사람들은 무와 무 사이, 혼자와 혼자 사이, 아침과 저녁 사이에서 이제는 세상을 떠나고 없는 사랑했던 사람들의 “커피 더 마실 거죠?” “담배 그만 피워요” “조심해” 같은 몇 마디 말들, 몸짓들을 떠올리며 눈물짓는다. 무 그 이상의 것들이 있다. 육체는 가도 사랑처럼 남는 것들이 있다. 침묵에서 태어나는 것들이 있다.
정혜윤 시비에스(CBS)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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