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무드의 뿌리’ 유대인의 법전을 읽는다 [책&생각]

고명섭 기자 2024. 8. 16.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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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 율법 해석서 ‘미쉬나’
국내 연구자 9명 합동 작품
가장 오래된 ‘미쉬나’ 필사본 ‘카우프만 코덱스’. 위키미디어 코먼스

미쉬나(전 6권)
권성달 외 번역‧주해 l 한길사 l 각 권 4만원 ~8만원

‘탈무드’는 ‘유대인의 지혜서’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탈무드’는 유대교의 법전에 관한 주석서다. ‘탈무드’의 뿌리가 되는 그 법전이 ‘미쉬나’(미슈나)인데, 이 법전 전체를 번역하고 주해한 책 ‘미쉬나’(전 6권)가 우리말로 나왔다. ‘미쉬나’ 전체 번역‧주해는 동아시아를 통틀어 이번이 처음이다. 유대학과 히브리어학을 전공한 연구자 9명이 4년을 꼬박 들여 함께 작업한 결과다.

‘ 미쉬나’ 번역‧주해 연구책임자인 최창모 전 건국대 중동연구소 소장은 번역 작업을 마치고 출판을 준비하던 중 병환으로 세상을 뜨기도 했다. 이 전집에는 ‘미쉬나’의 역사적‧문화적 배경지식을 일목요연하게 알려주는 최중화 부산장신대 교수의 ‘미쉬나 길라잡이’도 함께 묶였다.

유대민족은 서양 중세 이래 ‘책의 민족’이라고 불렸다. 이때 ‘책’이 가리키는 것이 ‘구약성서’와 ‘미쉬나’와 ‘탈무드’이다. ‘구약성서’의 앞부분 ‘모세오경’의 계율을 법전화한 것이 ‘미쉬나’이고, ‘미쉬나’를 해석하고 확장한 것이 ‘탈무드’다. ‘미쉬나’의 텍스트가 성립한 것은 로마제국의 강압 정책으로 고대 이스라엘이 해체되던 기원 후 1~3세기다. 이 시기에 발생한 큰 사건 가운데 하나가 기원후 70년 예루살렘 성전이 로마군에 파괴된 일이다. 성전을 중심으로 하던 유대 신앙이 거점을 잃은 것인데, 이후 유대인들은 저마다 일상에서 신앙을 이어갈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다. 이때 유대인의 생활과 신앙을 규율하는 법전 구실을 한 것이 ‘미쉬나’다. ‘미쉬나’를 포함한 ‘성스러운 책’이 있었기에 유대인은 2000년 동안 정체성을 지켜나갈 수 있었다.

‘미쉬나’는 히브리어 동사 ‘샤나’에서 파생한 말이다. ‘샤나’는 ‘반복하다, 공부하다’를 뜻하며 여기서 나온 명사 ‘미쉬나’는 ‘공부, 학습’을 뜻한다. 이 어원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미쉬나’는 스승이 제자들에게 반복해서 가르친 것, 제자들이 반복해서 학습한 것이라는 의미를 품고 있다. 입으로 전해오던 유대교 율법(토라)을 가르침과 배움의 과정을 통해 해석하고 정리한 것이 ‘미쉬나’다.

‘미쉬나’의 출현은 로마 지배가 일으킨 거대한 변동의 결과다. 그 변동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유대 사회 내부에서 율법 해석이 분화했는데, 그 분화를 보여주는 것이 기원후 1세기 힐렐과 샤마이를 우두머리로 하는 두 학파의 등장이다. 힐렐 학파와 샤마이 학파는 율법 해석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힐렐이 율법을 개방적이고 진보적으로 해석했다면, 샤마이는 엄격하고 보수적으로 해석했다. 두 학파의 율법 해석은 5세대에 걸쳐 200년 가까이 경쟁하다가 3세기 초에 랍비 ‘예후다 하나씨’에 이르러 오늘날 우리가 보는 ‘미쉬나’로 집성됐다. 또 이 텍스트를 뿌리로 삼아 이후 5세기 말까지 ‘미쉬나’ 주해서인 ‘탈무드’가 성립했다. 흥미로운 것은 예후다 하나씨가 힐렐의 7대손이었는데도 샤마이 학파의 보수적인 가르침을 해석의 중심으로 삼았다는 사실이다.

‘미쉬나’가 성립하던 시기는 유대인들의 저항이 로마제국의 탄압으로 번번이 꺾이던 때였다. 예루살렘의 성전이 파괴됐을 뿐만 아니라, 132년에는 유대 지도자 바르 코크바가 이끄는 대규모 반란이 일어났다. 로마 역사가 카시우스 디오는 이 반란으로 유대인 58만명이 죽임을 당하고 마을 985곳이 불탔다고 전한다. 그러나 ‘미쉬나’는 이런 정치적‧사회적 사건에는 거의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는다. 오직 구전 율법을 모으고 해석하는 일에만 몰두한다. 사회적 격변은 텍스트의 배후에 그림자처럼 어른거릴 뿐이다.

‘미쉬나’는 모두 여섯 ‘권’에 예순세 ‘부’로 이루어져 있다. 각 부는 장으로 구성돼 있고, 장에는 절이 들어 있는데, 이 절을 또 ‘미쉬나’라고 부른다. 미쉬나는 율법의 최소단위를 가리키는 말이자 이 율법을 모아놓은 텍스트 전체의 이름이기도 하다. ‘미쉬나’의 각 권을 차례로 보면 다음과 같다. 제1권 ‘제라임’(농경)은 농업 생산물을 거두어 헌물로 바치는 일을 규정하고, 제2권 ‘모에드’(절기)는 안식일과 명절을 설명하며, 제3권 ‘나쉼’(여성들)은 가족에 관련된 법을 종합한다. 제4권 ‘네지킨’(손해)은 민법과 형법에 관한 조항을 설명하며, 제5권 ‘코다쉼’(거룩한 것들)은 제사와 성전에 관련된 법을 모으고, 제6권 ‘토호롯’(정결한 것들)은 정결과 부정에 관해 이야기한다.

독특한 것은 이 법을 설명할 때, 하나의 해석만 제시하지 않고 랍비들의 여러 견해를 두루 소개한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미쉬나’가 단순한 법전이 아니라 율법과 관련한 해석을 비교함으로써 율법 이해의 폭을 넓히는 일종의 학습서 노릇을 함께 하고 있음을 알아볼 수 있다. 그렇더라도 ‘미쉬나’의 기본 성격은 어디까지나 율법 해석서라는 데 있다. ‘구약성서’ ‘출애굽기’의 ‘안식일에는 일하지 말라’라는 명령을 보자. 성서는 구체적으로 무엇이 ‘일’인지는 말해주지 않는다. ‘미쉬나’는 모두 39가지 일이 있다고 목록을 만들어 답한다. 바느질, 밭갈이, 추수하기, 곡식 갈기 같은 것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미쉬나’ 제1권 ‘제라임’은 농경을 주제로 하지만 그 시작(제1부)은 ‘브라홋’(기도)이다. 인간 삶의 기본이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기에 농사를 첫 권에서 다루지만, 동시에 기도 곧 ‘신의 말씀을 듣는 일’이 먹는 일보다 더 중요하며 모든 것이 기도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 텍스트 편집자의 믿음이었음을 책의 순서에서 읽어낼 수 있다. ‘제라임’의 제2부는 ‘페아’인데, 히브리어로 ‘모퉁이’라는 뜻이다. ‘추수할 때 남겨두어야 하는 밭 가장자리의 일부’가 ‘페아’다. ‘페아’는 다시 셋으로 나뉜다. 첫째, 추수할 때 일부러 남겨두는 것, 둘째, 추수하다가 떨어진 것, 셋째, 추수한 뒤 잊어버리고 가져오지 않은 것.

이 세 가지는 다시 거두어들이면 안 된다. 왜 안 되는가? 먹을 것이 없는 사람들에게 돌아가야 할 몫이기 때문이다. 이웃의 어떤 사람도 굶주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 이 가르침의 정신이다. 미쉬나의 토대가 되는 ‘모세오경’은 그렇게 베풀어야 할 사람으로 이방인·고아‧과부를 거명한다. 랍비 문학을 깊이 연구한 20세기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가 타자의 현상학에서 불러내는 타자 곧 이방인‧고아‧과부의 출처가 어디인지 여기서 알아볼 수 있다.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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