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소설가 김홍을 웃기다 하는가 [책&생각]

임인택 기자 2024. 8. 16.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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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등단 김홍 두번째 소설집
풍자·익살·유희…바닥엔 ‘지뢰’ 심어
없는 자들의 주체적 ‘사라짐’ 형상화
현실법칙 거슬러 ‘갈 데까지 가다’
지난 14일 작가 김홍이 두 번째 소설집 ‘여기서 울지 마세요’를 출간한 문학동네에서 저자 서명을 하고 있다. 기상천외한 전개를 특장으로 하는 김 작가는 아직 화해 못 한 작중인물이 있다고 ‘작가의 말’에 썼다. 문학동네 제공

여기서 울지 마세요
김홍 지음 l 문학동네 l 1만6500원

“권유수는 삶이 끝나는 방식에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NG(엔지) 모음으로 끝나는 삶과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는 삶. 전자가 훨씬 유쾌한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다소 촌스러워질 위험이 없지 않다. 본인들이 결정할 수 있는 사항은 아니다.”

신간 소설집 ‘여기서 울지 마세요’에 수록된 단편 ‘바과, 사나나’ 말미의 구절이다. 삶 대신 ‘소설이 끝나는 방식’으로 바꿔 읽어도 좋겠다. 말마따나 여기 작품들엔 기존의 정통 소설이 갖추고자 했던 엔딩 크레디트랄 만한 게 없다. 자연히 전편이 ‘엔지 모음’ 쪽에 가까워진다. 풍자와 익살, 언어유희, 자연법칙을 넘어선 격물로 능청스럽고 수다스럽다. 그러한 품새가 과도해 되레 “촌스러워”지는 구석이 있겠다. 감상하기 나름이거니와 이젠 실상 작가가 “결정할 수 있는 사항”도 아닌 듯하다. 그 작가가 김홍이기 때문이다. 2017년 등단 이래 발표한 장편 ‘스모킹 오레오’, ‘엉엉’, ‘프라이스 킹!!!’ 등에서 진전해 온 식이고, 이번 소설집 ‘작가의 말’마따나 김홍이 뭔가 골라 “쓰는 게 아니”고 김홍을 “누군가가 찾아오는 것”이라니 말이다.

2019~2023년 발표된 단편 10편이 엮였다. 일부는 전작들의 번외처럼 결부되곤 한다. 응당 유머와 엉뚱함을 빼곤 설명하기 어렵다. 러너스 하이(Runner’s high, 달리기 고통이 부르는 쾌감)가 있다면 글 쓰는 이의 라이터스 하이(Writer’s high)도 있을 터, 김홍의 ‘하이’ 상태는 정말이지…. 그럼에도 이 작품을 유머, 기발 둘로만 등대 삼기엔 글 바닥에 함정이, 의뭉이 많다.

무엇보다 작중 인물들은 ‘쓸쓸함’을 숨기지 않는다. 아무렇지도 않게, 해고당하고 사기당하고 파산한다. 급기야 신체가 떨어져 나간다. 포악한 투기 자본 세계에 감각 단위로 포위된 형상(‘그러다가’)이다. 김홍의 문법은 이 맥락에서 인물과 사태에 대한 연민과 동정, 분노, 패배주의를 차단한다. 유머가 통했다면 무자비한 유머이고, 통하지 않았다면 그만큼 무자비한 세계인 격.

2017년 등단한 김홍 작가. 문학동네 제공

사과와 바나나가 뒤섞인 제목의 단편 ‘바과, 사나나’ 속 주인공 권유수는 젊은 주무관이다. 최근 헬스클럽 회원권 사기를 당했다. “화가 나”고 “애달”프다. 대놓고 기만하는 사람, 사과하지 않는 사람, 안 그래도 친구가 한 명뿐인 자신의 처지를 보란 듯 확인시키는 사람들. 친구 김명수에겐 진득하고 충직한 개라도 있다. 남이 던진 공은 절대 받지 않는 코커스패니얼. 권유수는 저도 공 한번 던지자 사정한다. 뜻밖의 장면이 펼쳐지는데, 그 개 이름이 ‘정치’다. “정치야!” “정치야!”

‘여기서 울지 마세요’에서 눈대목은 ‘사라짐’의 반전이다. 문학에서 소멸은 권력관계로 대개 처분받은 자들의 서사다. ‘여기서…’는 다르다. 명분과 이상으로서 소멸을 스스로 지향한다. 패배한 소시민들의 주체성이 ‘사라짐’이다.

이모와 ‘나’는 가상화폐에, 기획부동산에 각기 돈을 퍼부었다 완전히 망한다. 외할머니가 남긴 빌라에 함께 살게 된 까닭. 얼마 전 죽은 할머니의 사망신고를 안 했다. ‘카지노 자본주의’가 개인만 숙주 삼진 않는다. 한국야구위원회(KBO)가 출시한 국민희망체육펀드도 사기를 당해 대국민 상대 ‘먹튀’로 끝났다. 대규모 펀드 투자한 지자체까지 결국 대출 담보 삼았던 야구장을 압류당한다. 구장이 문 닫고, 국민적 증오를 사면서 한국 프로야구는 종식을 맞는다. 전직 선수가 글러브, 공, 유니폼, 모자, 양말, 벨트, 고글까지 죄다 합쳐 당근마켓에 2만5천원에 내놓는다. 알고 보니 우규민. 야구를 공공재로 전제한 미국 작가 필립 로스의 논리(‘우리 패거리’)가 아니더라도, 대중의 기억과 거처가 망실될 판이다. 임용고사 실패 뒤 대리운전했던 ‘나’는 돌연 야구를 해보겠다 나선다. 소멸의 정치가 발생하는 지점이다. (야구는 작중 할머니도 좋아했고, 작가 김홍도 광팬이어서겠으나) 이제라도 ‘나’는 원하는 걸 추구해본다. 어렵사리 코치를 구해 투구해 보니 시속 100㎞가 나온다. 코치가 놀란다. “공이 똑바로 가지 않는 게 인생의 진리”다, 직구 말고 커브를 가르쳐달라. 코치는 말한다. “인생에 대해 알고 싶으면 그냥 인생을 제대로 살아.” 구속은 한달새 150㎞를 찍고, 무장 늘더니 스피드건이 측정 못 한다. 정부가 ‘독립’ 야구 ‘운동’ 단속에까지 나서자, 마지막 공을 잠실구장에서 던져보고 싶다. 마침내 마운드에서 마지막 뿌린 공은 지난 고통, 추억을 부르고, 소닉붐을 일으키며 캐처를 무너뜨리고, 피처 또한 정신을 잃고… 깨어보니 ‘나’도 나를 떠나 반작용처럼 밀려 날아가고 지구 밖으로까지 나아가니… 지구가 곧 내가 던진 커다란 공이 되는 형국이다. “완전히 혼자가 된” 나는 비로소 “평화로”워지니, “돌고 돌면 언젠가는 시작한 자리로 돌아”온다는 죽은 할머니의 작별 인사처럼 광포한 현세가 미약한 존재에 의해 ‘원점’ 내지 ‘그라운드 제로’로 소실되는 데에 이 단편 결미의 -종교적이기까지 한- 함의가 있다.

이러한 기괴한 사태가 다소곳이 서사되겠는가. 표제작을 보자. 빵집 알바 오산해는 가난해도 밝다. 탐욕한 자본주의에도 거뜬히 맞설 긍정 에너지의 소유자다. 야구하는 ‘나’의 기운이 투구 속도였다면, 산해는 조도다. 하도 밝고 힘차 빛이 난다. 독서 적합 조도가 500럭스(㏓), 정밀 작업 조도가 2000럭스인데, 산해는 일할 때 2만5000럭스를 발산한다. 빵집 손님은 선글라스를 껴야 한다. 산해 덕분에 매출이 늘고 점장인 ‘나’도 그를 아꼈으나, 자신의 엠비티아이(MBTI)를 ‘GSTK’로 소개하는, 듣고 보니 ‘개샛키’인 사장이 쫓아낸다. 2년 만에 프로야구가 재개되면서 산해는 미친 듯 뿜어내는 빛으로 야구장 조명 알바를 한다. 이어 오키나와 미군 기지 내 원자실험에 산해는 빛으로 활용되다… 육체를 잃고 만다. 사장 대신 해고를 통보해야 했던 내가 산해에게 마지막 말하지 않았던가. “너무 빛나지 말아요. 힘들잖아요. 너무 환하지 말아요. 우리 견딜 수 있는 만큼만 밝아요.” 산해는 결국 소멸된 것인가. 그렇지 않다. 또 다른 사라짐의 반전이 기다린다.

‘사라짐으로써 사라지지 않는다’는 역설은 ‘불상의 인간학’에서 더 직접적이다. 소멸의 미학은 특정 사회, 국가 단위가 아닌, 전지구적 상황(‘포르투갈’ 등)에서 또한 모색된다. 허황한 속도와 허황한 조도로 지금의 세계를 통째 소멸시키려는 주인공들의 근원적 힘은 눈물, 다들 쪽쪽 빨아가 말려버리려는 “물”에 가깝다 하겠다. 산해의 마지막 말이 바로 “울지 마세요 점장님. 여기서 울지 마세요”인 까닭이고, 장편 ‘엉엉’ 등에 대한 또 다른 응답 같다.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나도 너도- 사라져주는 것인바 지금 여기, 눈물을 거둔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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