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적 민주사회주의자’ 김철의 생애와 사상 [책&생각]
김철과 한국의 사회민주주의
이만열 외 지음 l 해냄 l 2만5000원
몽양 여운형, 죽산 조봉암에 이어 한국 진보정치사의 맥을 잇는 혁신계 정치가 당산 김철(1926~1994)의 30주기를 맞아 김철의 활동과 사상을 되돌아보는 책이 나왔다. ‘김철과 한국의 사회민주주의’는 2000년 ‘당산 김철 전집’ 출간 이후 당산에 대한 다각적 평가를 담은 글들을 한데 모은 것이다. 제1부는 ‘당산 김철 선생 서거 20주년 기념 학술 심포지엄’에서 발표된 논문들을 중심으로 하고 최근에 나온 박사학위 논문에 바탕을 둔 글을 포함했다. 제2부는 ‘당산 김철 전집’에 수록된 해제를 묶었다. 김철의 생애와 사상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책이다.
신광영(중앙대 명예교수)은 김철 사상이 지닌 현재적 의미를 민주적 사회주의, 세계화 시대의 민족주의, 혁신정당론이라는 세 핵심 개념으로 정리한다. 강수돌(고려대 명예교수)은 김철의 경제사상과 노동사상을 치밀하게 분석한다. 윤기종(한국중립화추진연대 공동 대표)은 김철의 정치사상을 ‘민족적 사회민주주의’라는 개념으로 포착한다. 한완상(전 상지대 총장)도 김철을 ‘민족적 민주사회주의자’로 규정한다.
특히 이만열(전 국사편찬위원장)이 쓴 ‘당산 김철의 생애와 혁신운동’은 김철의 생애를 따라가며 활동과 생각의 핵심을 간추려 정리했다. 1926년 함경북도 경흥군에서 태어난 김철은 일제강점기에 경성고보에 진학해 학교의 항일의식 속에서 민족주의에 눈떴다. 일제 말기에 로맹 롤랑의 ‘성웅 간디’, 네루의 ‘자서전’, 플레하노프의 ‘과학적 사회주의’, 엥겔스의 ‘공상적 사회주의와 과학적 사회주의’, 정약용의 ‘목민심서’ 같은 책들을 통해 사상의 문을 열었다. 해방 뒤 혼란기에는 ‘진보적 민족주의자’로 자임했는데, 특히 1950년대에 민주적 사회주의의 목적과 임무를 밝힌 사회주의 인터내셔널(SI)의 ‘프랑크푸르트선언’을 읽고 크게 공감해 ‘민주사회주의’ 또는 ‘사회민주주의’로 정치의 방향을 잡았다. 김철은 이 무렵 한국의 혁신정당 운동의 사상적·운동적 맥락을 ‘조선 후기 실학에서 시작해 동학혁명을 거쳐 일제강점기의 초기 공산주의 운동과 좌우합작의 신간회 운동, 해방 후 여운형·조소앙·조봉암으로 이어지는’ 노선에서 찾았다.
김철이 혁신정당 운동을 본격화한 것은 1960년 4·19혁명과 이승만 하야로 정치적 공간이 열린 뒤였다. 이때 김철은 혁신계 통합정당인 통일사회당 창당에 참여했다. 그러나 5·16군사정변으로 통일사회당이 해산당하자 김철은 한편으로 통일사회당 재건 운동을 벌이고 다른 한편으로 사회민주주의 사상에 관한 많은 글을 발표했다. 1972년 박정희 정권이 유신체제를 강행하자 김철은 1974년 ‘민주회복국민선언’ 발표를 주도하며 반유신 투쟁에 앞장서고 1975년에는 긴급조치와 반공법 위반 혐의로 투옥돼 1년 반 동안 옥살이를 했다.
김철의 삶에서 큰 논란을 남긴 것은 1980년 전두환 신군부의 집권 과정에서 ‘국가보위입법회의’ 의원이 된 일이다. 이만열의 글은 이 상황을 비교적 소상히 밝힌다. 신군부는 마드리드에서 열리는 ‘사회주의 인터내셔널’ 15차 회의 참가를 막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김철을 끌어들였다. 국제사회에 신군부의 개방성을 선전하려는 포석이었다. 그러나 김철이 신군부의 요구에 순응하지 않자 신군부는 결국 다른 혁신계 인사로 김철을 대체했다. 이후 김철은 전두환 정권의 탄압 속에서 사회민주주의 정당 운동을 계속했다.
이만열은 “군사정권의 폐쇄적인 사상 탄압이 자행되었던 그 시절에 사회주의의 개혁적 논리나 진보적 주장이 수구·반동 세력에 의해 어떤 대접을 받았는가를 생각한다면 그의 생애는 가시밭길을 헤쳐가는 고난의 역정, 그것일 수밖에 없었다”며 “김철은 갖은 오해와 불신을 딛고 일어서서 이 땅에 민주사회주의 이념에 입각한 평화통일·복지사회를 이루기 위해 혁신정당 운동과 그 국제적 연대 운동에 앞장섰다”고 평가했다.
김철은 해마다 새해 초하루 캄캄한 새벽에 효창공원의 백범 김구 묘소를 참배했다. 김철의 사회민주주의가 민족통일이라는 민족주의 이상과 깊이 결합한 것이었음을 보여주는 일화다. 이만열은 김철을 “민족주의자로서 주권의 신장과 민족자주통일운동에 앞장서고, 민주주의자로서 반민주적인 권력의 억압에 줄기차게 항쟁했으며, 사회주의자로서 근로대중의 권익 옹호와 사회정의 구현에 힘쓴” 사람으로 압축한다.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대학에서, 친구따라, 병원에서…처음 마약에 손댄 순간
- 광복절 초유의 “매국정권” 구호…‘윤석열 역사인식’에 시민 분노
- 흡수통일 선언하며 북에 대화 제안…‘이상한’ 윤석열식 통일 구상
- KBS, 광복절 ‘기미가요 방송’ 사과…“진짜 미친 건가 싶습니다”
- 광복절 행사 두 동강…대통령실은 광복회 깎아내리기
- [단독] 미추홀구서만 전세사기 54채 낙찰…법 개정 늑장에 법원 따라 ‘복불복’
- “아기 주검이 떠 있다” 신고…세종시 저수지서 신생아 시신 발견
- ‘명품백 김건희’ 무혐의 전망…이원석, 퇴임 전 수사심의위 꾸릴 수도
- ‘안세영 청소·빨래’도 조사하나…배드민턴협회, 16일 첫 진상조사위
- ‘불교코어’에 ‘업보세탁소’까지…MZ가 점찍으니, 불교도 힙해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