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규 칼럼] 농민의 의미와 새로운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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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은 누구인가? 너무도 평이해 보이는 이 질문은 전문가들 사이에서 결코 쉽지 않은 문제이다.
20세기 초반 이후 많은 유럽의 학자들과 정치인들이 농민 계급의 역할과 관련된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특히 199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정부가 대기업을 포함한 산업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면서, 농민들의 역할과 가치에 대한 폄훼는 더욱 심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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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은 누구인가? 너무도 평이해 보이는 이 질문은 전문가들 사이에서 결코 쉽지 않은 문제이다. 20세기 초반 이후 많은 유럽의 학자들과 정치인들이 농민 계급의 역할과 관련된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1970∼1980년대 서구에서는 급격한 자본주의 발전 속에서도 왜 영세한 농민들이 여전히 살아남는가에 대한 활발한 학술적 논의가 있었다. 최근에는 ‘새로운 농민’과 ‘재농화(再農化)’라는 개념을 가지고 유럽의 농촌사회 변화를 설명하는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다.
한국에서 농민은 누구이고 어떤 사회적 존재인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농민을 ‘가족노동을 기반으로 농산물을 직접 생산하는 데 종사함으로써 생계를 영위해 나가는 사람들’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한국에서 근대적인 의미의 농민이 만들어진 것은 1950∼1960년대 농지개혁을 통해서다. 농지개혁을 통해 일제강점기의 약탈적인 소작제가 폐지되고, 자기 땅을 소유한 소농체계가 형성된 것이다. 새로운 사회 환경 속에서 다수의 농민들이 농지를 소유하게 됐다. 이는 토지를 기반으로 한 전통적·억압적 관계를 해체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변화였다. 하지만 1960년대 이후 진행된 근대화의 거센 물결 속에서 농민은 소외되고 배제됐다. 공업 발전과 수출경쟁력 강화를 위해 저곡가 정책이 지속됐고, 미국의 농산물 원조와 값싼 외국산 농산물 수입은 농민들의 삶을 피폐하게 했다.
1970년대 새마을운동과 녹색혁명은 잠시 농민들의 소득 향상을 가져왔지만, 농업과 농민의 위상을 바꾸는 데는 많은 한계를 가졌다. 오히려 생산주의의 과도한 강조는 농가 부채를 증가시켰고, 농약과 화학비료의 투입을 증가시켰다. 이는 농민들의 삶을 어렵게 하고, 먹거리 안전을 위협하는 결과를 낳았다.
한국의 경제발전 과정에서, 농촌은 산업발전을 위한 인력과 식량 공급지로 간주됐다. 이 과정에서 탈농(脫農)은 가속화했고, 농촌의 인구 과소화와 고령화는 깊어졌다. 특히 199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정부가 대기업을 포함한 산업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면서, 농민들의 역할과 가치에 대한 폄훼는 더욱 심화했다.
이제 한국의 다중적 위기 상황에서 그동안 추구했던 ‘발전’의 결과가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과 세계 최고 수준의 자살률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명징하게 보여준다. 한국 사회는 이제 근본적인 지속가능성 위기에 처해 있다. 저출산과 자살은 보다 심층적인 사회적 위기의 지표이다. 한국인들의 현생에 대한 만족 정도, 미래에 대한 희망, 행복의 가능성 등에 대한 냉철한 평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 위기의 시대에 어떻게 미래를 열어갈 것인가? 나는 그 답이 농(農)에 있다고 생각한다. 탈농이 한국 농촌과 한국 사회의 위기를 만들어냈던 현상이었다면, 이를 반전시키기 위한 움직임은 재농화다. 다시 농사를 짓고, 농촌에 사람이 모이고, 농의 가치를 귀하게 여기는 것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살아나는 길이다.
농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것이다. 농민은 파편화된 개인주의와 경쟁주의에서 벗어나 새로운 공생과 돌봄문화 만들기의 주체이다. 농촌은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생명농업과 생태적 삶의 실천 공간이다. 이러한 역할을 통해 농민은 코마 상태에서 빠진 한국 사회에 새 생명을 불어넣고, 지속가능한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다.
김철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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