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 신종 ‘나쁜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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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는 반드시 정실 인사로 해야 돼. 능력 있는 놈 임명하면 자기가 실력으로 됐다고 생각해서 윗사람에 충성을 안 해. 나한테 충성하는 놈한테 자리를 줘야 인사권자한테 보답한다고."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겠다'는 인사를 여가부 장관에 임명한 게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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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 파괴 인사'가 등장했다
“인사는 반드시 정실 인사로 해야 돼. 능력 있는 놈 임명하면 자기가 실력으로 됐다고 생각해서 윗사람에 충성을 안 해. 나한테 충성하는 놈한테 자리를 줘야 인사권자한테 보답한다고.”
기자 초년생 시절 한 정부부처 국장급 인사에게 들은 얘기다. 그러나 개인에 충성하는 인사를 요직에 기용하면 그 조직의 미래는 암울하다는 걸 누구나 경험으로 알고 있다.
정실 인사와 더불어 ‘나쁜 인사’의 대표격으로 거론되는 게 낙하산 인사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주요 정부산하기관에는 대선 캠프 출신과 낙선·낙천 인사들이 낙하산을 타고 내려온다.
윤석열 정부에선 이 두 가지 외에 처음 보는 형태의 ‘나쁜 인사’가 추가됐다. 바로 조직이나 기관의 설립 목적과 정반대 가치관을 가진 인사를 수장으로 임명해, 해당 조직이 본연의 기능을 못 하도록 망가뜨리는 인사다.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겠다’는 인사를 여가부 장관에 임명한 게 시작이었다. “공영방송이 공기가 아니라 흉기가 됐다”는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임명, “불법파업엔 손배 폭탄이 특효약” 등 노조 혐오 발언으로 유명한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 지명은 대표적 ‘기관 정체성 파괴 인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런 인사의 희생양이다. “기저귀를 차고 있는 게이” 등 성소수자 혐오 발언으로 유명한 이충상 상임위원의 언행에 대해선 국제인권단체가 항의 서한을 보냈을 정도다. 이제 위원장마저 차별금지법이 “공산주의 혁명으로 가는 수단이 될 수 있다”며 반대해 온 안창호 전 헌재 재판관을 지명했다. “인권 전문성이 부족한 사람이 지명된 적은 있어도 정반대 인물이 지명된 적은 없었다”는 학계의 탄식이 나온다.
과거사 인식과 관련한 기관도 정체성 파괴 인사의 주요 타깃이다.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과 군사정권 시절 인권 침해 사건의 진실 규명이 목적인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김광동 위원장은 “전시엔 원래 재판 없이 사람을 죽일 수 있다”고 말해 충격을 줬다.
면접에서 “일제 시대 한국인 국적은 일본”이라 대답한 사람을 독립기념관장으로 임명한 것도 이런 일관된 인사 방침에 따른 것이라 봐야 할 것이다. 사안이 정쟁화하고 있지만 본질은 일제 식민지배의 정당성과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대한 것이므로 매우 중요하다.
김형석 관장의 ‘일본 국적’ 발언은 그동안 역대 한국 정부가 견지해 온 “일제 강제병합은 체결 당시부터 무효이고 식민지배는 불법”이라는 원칙에 배치된다. 일제가 태평양전쟁을 위해 조선인을 징병·징용한 데 대해서도 ‘당시 조선인은 일본 신민으로서 동원된 것이므로 강제성이 없다’는 일본 정부의 입장에 동조하는 것이 된다.
정부는 앞서 한국학중앙연구원장에도 식민지 근대화론자인 김낙년 동국대 명예교수를 임명했다. 일본 정부의 ‘침략 역사 지우기’ 행보를 비판할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다. 직접 만난 일본 언론인과 정치권 인사들이 “여태까지 이런 한국 대통령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 입을 모으는 것은 현 정부의 행보에 일본인마저 놀라고 있다는 것을 드러낸다.
기관의 설립 목적을 부정하는 사람을 기관장으로 앉히는 인사는 그만해야 한다. 준다고 넙죽 그 자리를 받아 가는 당사자도 꼴불견이다. 거절하고 학계에서 자신의 소신을 계속 관철한다면 그 소신도 존중받을 수 있을지 모르는데 말이다.
최진주 기자 parisc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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