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종교] 신앙인들이 해야 할 일은

경기일보 2024. 8. 16.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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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잖은 종교인이 아직 신앙을 갖지 않은 사람 혹은 무신론자와 대화할 때 자기네 종교의 신을 비호하려고 애쓰거나 섣부르게도 상대를 설득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럴 때 그들은 자신의 신을 비호하는 게 아니라 결국엔 자기 자신을 더 비호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므로 신앙인들이 그런 때 차라리 해야 할 일은 자신이 믿는 신이 지금 자신 앞에 있는 이에게 과연 어떤 말을 하고 싶어 할까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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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두영 천주교 수원교구 신부

적잖은 종교인이 아직 신앙을 갖지 않은 사람 혹은 무신론자와 대화할 때 자기네 종교의 신을 비호하려고 애쓰거나 섣부르게도 상대를 설득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럴 때 그들은 자신의 신을 비호하는 게 아니라 결국엔 자기 자신을 더 비호하고 있는 셈이다. 신은 인간의 두둔이 필요한 존재가 아니다. 물론 나에게 소중한 분을 누군가 대놓고 비하한다면 그것은 분명 무례한 일이고 또 마음 상하는 일이지만 그럼에도 신은 우리의 두둔이 필요치 않다.

그러므로 신앙인들이 그런 때 차라리 해야 할 일은 자신이 믿는 신이 지금 자신 앞에 있는 이에게 과연 어떤 말을 하고 싶어 할까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아마 신은 애써 자신에 대해 설명하려고 하기보다 오히려 신을 부정하는 그 사람의 마음, 그가 지나온 삶의 역사, 그 안의 아픔들을 온전히 껴안아 주고 싶어 할 것이다. 또 기존의 종교인들이 저질렀던 과오들을 자신이 대신해서라도 사과하고 싶어 할 것이다.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고 용서를 청하며 그의 상처와 분이 풀릴 수만 있다면 자신의 뺨이라도 치라고 내줄 것이다. 필자가 아는 신은 그런 분이다.

사실 인간들이 저마다 신을 뭐라 부르든, 그게 예수든 부처든 하느님이든 하나님이든 여호아든 알라든 뭐든, 혹은 자연의 이치든 뭐라 부르든, 신은 고작 그런 인간들의 언어나 개념 안에 갇혀 계실 분이 아니다. 그렇기에 지존께서는 한낱 인간이 신을 비호하고 설명하고, 오만하게 다른 이를 설복하려 하고, 또 실은 자신들의 욕망을 위한 일일 뿐이면서 거기에 신의 이름을 팔아 다투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으신다. 신은 인간들에게 자신이 설명의 대상이나 비호의 대상이 되길 바라지 않으신다. 그보다 신은 인간에게 사랑의 대상이 되기를 바란다. 그것이 곧 인간이 신적인 존재가 되는 길이므로.

그래서 신은 ‘경직되고 메마른 종교인’이 아니라 ‘살아있는 인간’을 두고 더 기뻐한다. 예컨대 세상의 부조리와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보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하늘을 우러러 ‘신 너는 대체 뭐하고 있냐’고, ‘너 같은 신은 필요 없으니 나라도 이들을 돕겠다’고, 그렇게 하늘에 대고 욕을 퍼붓는 인간, 그렇게 뜨겁게 살아 있는 인간이 오히려 신과 더 친하다. 그는 누구보다 간절히 정의를 찾고 있기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신을 사랑하고 있고, 이미 신께 가까워지고 있다. 그러한 사람은 스스로 고민하고 선택하면서 온전히 ‘자기 삶을 책임’지고 있으니 과연 신과 친구가 될 자격이 있다.

그러나 제 아무리 성당이며 교회며 절이며, ‘거룩한 곳’에 오래 앉아 있는다 해도, 제 아무리 무슨 성직자라 해도, 그렇게 아예 ‘그런 곳에서 사는’ 사람이라고 해도, 제 것이 아닌 남의 말만, 남에게 들은 교리만 앵무새처럼 말하며, 그렇게 스스로 고민하지 않고 책임지려 하지 않는 이는, 자기 종교에서 정해진 의무는 했으니 그것으로 자기 할 일은 다했다고 생각하는 이는, 안타깝지만 이미 영성의 불이 꺼져 가고 있다.

“네가 이렇게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으니, 나는 너를 입에서 뱉어 버리겠다.”(묵시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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