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 멸종 시킨 ‘칙술루브’…혜성 아닌 탄소질 소행성

독일 쾰른대 연구진,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발표
백악기 말 칙술루브 충돌로 생물종 60% 멸종
충돌 지역의 동위원소, 탄소질 소행성과 유사

6600만년 전 공룡을 멸종 시킨 칙술루브의 충돌 장면을 상상한 모습. 칙술루브는 공룡 멸종의 직접적인 원인이지만, 그 정체가 혜성인지 소행성인지에 대해서는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칙술루브는 탄소로 이뤄진 소행성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챗GPT 달리3

6600만년 전 지구의 공룡을 멸종시킨 ‘칙술루브(Chicxulub)’가 태양계 내부에서 만들어진 소행성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공룡의 멸종을 두고 논란이 이어진 가운데 최근 칙술루브가 지구에 충돌하면서 공룡을 멸종시켰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하지만 정작 칙술루브의 정체에 대해서는 전문가 사이에서 의견이 갈리고 있었다. 이번에 공룡 멸종의 미스터리를 해결할 중요한 단서가 제시된 셈이다.

마리오 피셔 괴테 독일 쾰른대 교수가 이끄는 국제 공동 연구진은 16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백악기-팔레오기(K-Pg) 생물 대멸종을 일으킨 칙술루브가 탄소질 소행성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백악기-팔레오기 대멸종은 중생대 백악기에서 신생대 팔레오기 사이인 6600만년 전에 일어난 사건이다. 당시 공룡을 포함해 지구에 살던 생물 종(種)의 60% 이상이 사라졌을 정도로 지구 생태계에 큰 변화가 나타났다.

대멸종이 일어난 이유는 크게 소행성 충돌과 화산 폭발이 꼽혔다. 이 시기 지층에는 지구에서 찾기 힘든 희귀 원소가 다량 포함돼 있으며, 화산 폭발의 흔적도 남아 있다. 지금은 두 가지 시나리오 중 소행성 충돌이 직접적인 공룡 멸종의 원인이라는 주장이 정설로 굳어지고 있다.

이 시기 지구에 충돌한 소행성 칙술루브의 정체에 대해서도 오랜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칙술루브가 혜성이라는 주장과 소행성이라는 주장이 첨예하게 맞붙고 있다. 혜성은 소행성과 마찬가지로 태양 주변을 긴 타원 궤도를 따라 도는 작은 천체이지만, 꼬리가 있다는 점이 다르다. 칙술루브가 소행성이라는 이론이 가장 큰 지지를 받았으나, 여전히 혜성일 가능성을 제시하는 연구 결과도 꾸준히 발표됐다.

피셔 교수 연구진은 백악기와 팔레오기의 경계 지층에서 루테늄(Ru) 동위원소를 분석해 칙술루브가 탄소로 이뤄진 소행성이라고 결론 내렸다. 연구진은 대멸종 시기 지층 3곳과 3억 600만~4억 7000만년 전 소행성 충돌 지층 5곳, 35억년 전의 충돌구 1곳에서 각각 토양 시료를 채취한 후 루테늄 동위원소 비율을 조사했다.

동위원소는 원자번호는 같지만, 질량이 다른 것을 말한다. 루테늄 동위원소 비율은 소행성의 종류에 따라 차이가 커 소행성 연구의 핵심 물질이다. 특히 소행성 충돌구는 오랜 시간이 지나더라도 루테늄 동위원소 비율이 그대로 유지돼 ‘소행성의 지문’이라고 불린다.

연구진은 백악기-팔레오기 대멸종 당시 지층에 남은 루테늄의 동위원소 비율이 탄소로 이뤄진 탄소질 소행성의 흔적과 가장 비슷하다고 분석했다. 반면 혜성의 충돌로 만들어진 흔적과는 큰 차이가 나타났다. 루테늄과 함께 소행성 연구에 쓰이는 크로뮴(Cr) 동위원소 분석에서도 마찬가지 결과가 나왔다.

연구진은 “칙술루브가 혜성일 가능성은 배제해도 될 정도로 낮다”며 “루테늄 동위원소 분석은 다른 소행성의 기원을 연구하는 데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진은 “칙술루브 충돌은 한참 과거에 일어난 일이지만, 소행성의 충돌이 지구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알 수 있는 기회”라며 “과거 우주에서 소행성의 이동 경로에 대한 연구가 이뤄진다면 태양계의 진화 과정도 확인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로 칙술루브가 소행성이라는 과학자들의 주장은 더욱 힘을 얻을 전망이다. 다만 논란을 완전히 종식하려면 후속 연구가 더 필요하다. 미국 하버드대 연구진은 2021년 태양계 바깥에서 만들어진 혜성이 칙술루브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을 정도로 최근까지도 논쟁은 이어지고 있다.

참고 자료

Science(2024), DOI: https://doi.org/10.1126/science.adk48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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