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 장악 3년, 암흑 속 아프간 여성들, 한국 530억원 지원… ‘희망의 빛’이 되다
여성 자립·자활에 상당한 기여
유엔난민기구(UNHCR)는 최근 소셜미디어에 사진 한 장을 올렸다. 머리와 얼굴을 검은 천으로 가린 18~25세 여성들이 모여 앉아 수업받는 사진이었다. 이슬람 무장 단체 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가니스탄에서 지난해 UNHCR 지원으로 시작된 조산사 양성 과정을 듣는 수강생들이다. 이들은 3년 과정을 수료한 뒤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아프가니스탄의 임산부·영아 사망률은 낮추고 상태가 위험한 갓난아기들은 안전하게 살려내는 임무를 맡는다.
수강생 다이애너(19)는 UNHCR에 “조산사가 될 거라는 꿈은 엄두도 못 냈지만, 지금은 어서 빨리 우리 마을을 위해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 속 교실 벽엔 이 수업이 진행될 수 있도록 돕는 30여 나라의 국기와 기업들의 로고가 담긴 포스터가 걸렸다. 이 중에는 태극기도 있었다.
15일로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지 3년이 된다. 극단적 이슬람 원리주의를 신봉하는 이들의 치하에서 많은 여성은 직장에서 쫓겨났다. 이제 여자아이들은 중학교 이상 진학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탈레반 1차 집권기(1996~2001년)와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점도 있다. 국제사회 지원으로 여성과 소녀들을 위한 직업·교육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어 그나마 숨통을 터주고 있는 것이다.
이들을 돕는 국제기구 중 하나가 유엔세계식량계획(WFP)이다. 외부 활동이 불가능한 여성들도 가족을 먹여 살리는 가장(家長) 역할을 지속할 수 있도록 전통 양탄자 제작 기술 전수를 돕고 있다. 이들이 무늬를 새긴 양탄자와 수공예품을 시장에 팔아 빈곤한 가계에 보탬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최근 낭가하르주에서 여성 기업가 과정을 진행했다. 사업 운영에 필요한 노하우, 여성이 경제 활동을 통해 얼마나 공헌할 수 있는지 등을 여성 60여 명에게 가르친다.
유니세프는 아프간 전역의 어린이집과 초등학교에 학용품과 학습 교재를 보낸다. 물 사정이 좋지 않은 열악한 농촌 마을에 급수 시설도 짓는다. 물 긷는 일을 도맡은 여자아이들이 최대 수혜자다. 열 살 소녀 파우지아는 유니세프에 “아침에 물을 긷기 위해 30분을 걸어가 차례를 기다리느라 학교 수업을 빼먹는 일이 앞으론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아프간 여성들의 자립과 자활에 한국의 기여도 상당하다. 한국 정부가 탈레반 집권 후 WFP·UNHCR·유니세프 등에 지원한 금액은 3150만달러(약 428억원)에 달한다. 이 돈으로 위생적인 식수 시설이 만들어졌고, 긴급 구호 식량이 전달됐다. 학교와 어린이집 시설도 갖춰졌다.
한국은 탈레반 집권 전인 2003년부터 2007년까지 공병 부대인 다산부대를 주둔시키며 평화 유지 활동에 힘을 보탰고, 이 과정에 2007년 2월 한국군 윤장호 하사가 테러 공격으로 숨지는 등 희생도 치렀다. 2021년 8월 탈레반 장악 직후 현지 주민들의 대탈출 땐 한국과 협력했던 390여 명을 특별기여자로 지정해 한국으로 신속하게 데려와 정착시키기도 했다. 최근 방한했던 신디 매케인 WFP 사무총장은 “도움을 받던 나라에서 반세기 만에 도움을 주는 나라가 된 한국이 어려운 나라들에 희망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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