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화약고마다 중재자 자처하는 中, 무얼 노리나
중국의 외교 사령탑 왕이 외교부장이 14일 미얀마 수도 네피도에서 군부 최고지도자인 민 아웅 훌라잉 최고사령관을 만났다. 왕이는 “중국은 미얀마가 국내 평화와 안정, 경제 발전에 전념하는 것을 확고히 지지한다”면서 “하루 빨리 정치 화해를 이루고, 민주 전환 과정을 회복해 장치구안(長治久安·사회 질서가 장기간 안정되고 평화가 유지된다)의 길을 찾길 바란다”고 했다.
왕이의 이번 방문은 미얀마가 사실상 내전 상태로 빠져든 상황에 이뤄졌다. 앞서 미얀마 군부는 2021년 2월 쿠데타를 일으켜 아웅산 수지가 주도하는 민간 정부를 축출했다. 군부는 쿠데타 반대 시위대를 유혈 진압하며 권력을 유지해왔으나 최근 1년 새 아웅산 수지 추종 세력과 소수민족 무장 세력이 연합한 반정부 무장 세력과의 교전에서 잇따라 패퇴하면서 사실상 무정부·내전 상태로 빠져들고 있다. 이런 상황에 중국이 평화적 해결을 외치며 중재자를 자처하고 나선 것이다. 최근 전쟁·내전·정변 등이 일어난 지구촌의 주요 ‘화약고’에서 중재자를 자처한 중국의 활동이 두드러지자 ‘평화 수호자’ 이미지를 부각해 미국과의 글로벌 패권에서 앞서나가려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중국은 확전 위기를 맞고 있는 중동에서도 중재자를 자처했다. 팔레스타인의 14개 정파 지도자들을 지난달 21~23일 베이징으로 초청해 대화를 주선했다. 일정 마지막 날 각 정파들은 분열을 종식하고 단결해 이스라엘과의 가자 전쟁이 끝나면 함께 임시정부를 꾸리자는 내용의 ‘베이징 선언’에 서명했다. 전쟁 자체를 끝내는 것과는 무관하지만, 대(對)이스라엘 노선을 두고 강경파와 온건파로 갈려 장기간 분열·대립했던 하마스와 파타(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이끄는 정당)가 서명에 동참하자 미국과 이스라엘 등 서방국가들은 크게 당황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지난해 10월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하며 전쟁이 발발한 직후부터 기민하게 움직였다. 자이쥔 중동 특사를 중동국에 파견해 중국의 역할을 부각시켰다. 지난달 하마스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가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암살되고 이란과 이스라엘의 무력 충돌이 임박하자 왕이는 바드르 압델라티 이집트 외무장관, 아이만 사파디 요르단 외무장관과 잇따라 전화 통화를 하며 중동 정세를 논의했고, 이스라엘을 겨냥해 보복을 공언한 이란과도 소통했다. 앞서 중국은 지난해 3월 이슬람 패권을 다투며 7년간 국교 단절 상대였던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고위 당국자들을 비밀리에 베이징으로 불러들여 전격 화해시킨 뒤 중동 내 보폭을 넓히고 있다.
중국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중재자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지난달 22일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은 중국 광저우에서 왕이와 만났다. 전쟁 발발 뒤 우크라이나 외교 사령탑의 첫 방중이었다. 쿨레바는 “우크라이나의 참여하에 주권과 영토 통합성이 완전하게 존중되면 어떤 협상에도 참여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고, 왕이는 “평화에 도움이 되는 모든 노력을 지지하고 건설적인 역할을 지속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미국과 서유럽 국가들의 군사 지원으로 러시아에 맞서고 있는 우크라이나가 중국과 종전 협상 문제를 심도 있게 논의하는 장면이 연출된 것이다. 앞서 중국은 지난 5월 브라질과 공동으로 우크라이나 평화안을 발표하고, 리후이 유라시아사무특별대표를 우크라이나에 파견하기도 했다.
이렇게 지구촌의 화약고에서 적극 행보를 이어가는 중국에 대해 ‘미국을 대체하는 유능한 평화 중재자’의 이미지를 굳히려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서방이 중국을 공격적 세력으로 묘사하는 상황에 자국이 책임감 있고 평화로운 강대국이라고 전하고 싶은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러시아와 밀착하며 권위주의 진영의 핵심으로 인식되고 있는 중국의 중재자 행보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닐 토머스 호주전략정책연구소 연구원은 “중국은 중재자를 자처하면서도 양보나 희생 의지는 약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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