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정통성 내걸었던 뉴라이트, 좌파의 타깃 전락
광복회 등이 비난의 표적으로 삼고 있는 ‘뉴라이트(New Right)’는 한국에서 2000년대 중반 이후 등장한 용어로 ‘새로운 보수주의자’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반공을 우선시한 기존의 보수(올드라이트) 대신 시장경제 이념을 표방했고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지금은 보수 진영 전체를 폄훼하는 용어로 사용하면서 의미가 변질됐다.
기존 보수를 혁신하는 개념으로 출발
뉴라이트라는 말은 2000년대 중반 나왔다. 노무현 대통령이 2003년 취임사에서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하는 굴절된 풍토는 청산되어야 한다”고 말한 뒤 대한민국의 현대사가 부정적으로 평가되는 정치적 분위기에 대한 반박으로서 힘을 얻었다.
2004년 신지호 서강대 겸임교수 등 과거 운동권 출신 인사들이 주도한 자유주의 연대는 뉴라이트라는 용어를 수면 위로 올렸다. 이들은 “수구 좌파, 수구 우파의 정치 모두 막을 내려야 한다”며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대한민국의 역사적 정통성을 수호하고, 종북(從北)에서 벗어나 북한 민주화 운동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과거 운동권의 필독서였던 ‘해방전후사의 인식’의 좌편향 인식을 해소하기 위해 집필된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에 대한 전국 강연에 나서기도 했다.
박효종 서울대 교수가 공동대표를 맡아 2002년 출범한 바른사회시민회의도 이 무렵 대표적 뉴라이트 단체로 꼽혔다. 박 교수는 기존의 보수 우파에 대해, 과거 민주화나 인권이 이슈로 떠올랐을 때 눈을 감았고, 지도층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 고위층에게 요구되는 도덕적 의무)를 실천하기는커녕 특권을 누리는 데 급급했다고 비판했다. 박 교수는 2005년 ‘좌편향 역사서’를 바로잡기 위한 ‘교과서포럼’을 출범시켰다.
이때 박 교수와 함께 교과서포럼의 공동대표를 맡은 학자가 이영훈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였다. 이 교수가 소장이었던 낙성대경제연구소는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가 창립한 경제사 연구 학회로, 뉴라이트의 한 세력을 형성했다. 일제 치하에서 경제발전이 있었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해 한국 사학계의 ‘내재적 발전론’을 반박했고, 대한민국의 현대사와 시장경제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1945년 8월 15일 ‘해방(광복)’보다 1948년 8월 15일 ‘건국’의 의미를 더 강조했다.
이 당시 뉴라이트는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북한의 인권 상황을 비판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주창하는 세력이란 의미가 더 강했다. 안병직 교수가 이사장을 맡은 ‘뉴라이트재단’이 설립됐고, 8개 단체의 연대 기구인 ‘뉴라이트네트워크’와 학자 중심의 ‘뉴라이트싱크넷’도 생겨났다. 김진홍 목사가 주도한 ‘뉴라이트 전국연합’은 한때 회원이 17만명에 달한다고 알려졌다.
당시만 해도 ‘뉴라이트’는 긍정적인 용어였다. 기존 우파의 약점을 극복한 ‘대안’이나 ‘새로운 본보기’로 여겨지기도 했다. 뉴라이트 운동이 권력 단체가 돼 버린 시민 단체들 간의 상호 감시를 촉진할 것이라는 희망도 나왔다. 2006년에는 ‘뉴레프트’를 기치로 내건 좋은정책포럼(공동대표 임혁백·김형기)과 교과서포럼이 공개 토론회를 벌이기도 했다. “이제 이념은 달라도 서로 말이 통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는 기대도 있었다. 뉴라이트는 이명박 정부의 출범에도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명박 정부 때부터 오히려 쇠퇴
이명박 정부 들어서 뉴라이트는 침체와 쇠퇴를 겪었다. 뉴라이트재단은 ‘사단법인 시대정신’으로 이름을 바꿨고, 뉴라이트네트워크와 뉴라이트싱크넷은 활동을 접었다. “뉴라이트라는 용어가 촛불 시위로 곤욕을 치른 이명박 정부와 오버랩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김일영 성균관대 교수(작고)는 2008년 조선일보 시론에서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이들 중 일부가 개인적 또는 집단적으로 정치에 참여하거나 정치색을 띠면서 순수성을 잃었고, 보수를 지속 가능하게 만들 체계적 프로그램을 구비하지 못했다”며 뉴라이트가 정치화·권력화 및 역량 부족의 한계에 도달했다고 지적했다.
뉴라이트 인사들로 분류된 필자들이 좌편향을 바로잡겠다며 집필한 ‘교과서’ 역시 잇단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교과서포럼이 2008년 내놓은 ‘대안 교과서 한국 근·현대사’는 식민지 근대화론이 깃든 서술과 ‘김구가 항일 테러 활동을 했다’는 기술 등으로 인해 ‘한국판 후쇼사 교과서’라는 반발에 직면했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뒤 2013년 나온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역시 ‘우편향 교과서’라는 비판을 받고 전국 채택률이 0%에 가까워진 사태가 일어났다. 박근혜 정부가 2015년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를 시도한 것은 ‘뉴라이트’에 대한 거부감을 키우는 결과를 낳았다.
‘적폐’ ‘친일’을 공격하는 말로 변질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과 문재인 정부의 출범 이후 ‘뉴라이트’는 ‘적폐’와 비슷한 이미지로까지 추락했다. 이제 스스로 ‘뉴라이트’임을 표방하는 단체나 학자는 거의 없어졌고, ‘뉴라이트’란 말이 과거 ‘빨갱이’처럼 프레임을 씌워 공격하는 용어가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영훈 교수 등 낙성대경제연구소 관련 학자들이 2019년 책 ‘반일 종족주의’를 낸 이후 ‘뉴라이트는 친일(親日)’이라는 대중의 편견에도 한몫했다. 조선은 일제에 식량을 수탈당하지 않았고 조선인이 강제 동원되지도 않았으며, 독도가 원래 우리 땅이라는 역사적 근거도 없었다는 등의 주장 때문이었다. 이후에도 이들은 ‘위안부는 강제 동원된 것이 아니다’ ‘김구는 테러리스트였다’는, 대다수 국민이 납득하기 쉽지 않은 주장을 이어갔다.
윤평중 한신대 명예교수는 “뉴라이트는 과거 한국 보수 우파의 수구화(守舊化)를 자기 정화하려는 취지로 시작했고 유의미한 성과를 거뒀지만, 시민운동 차원에서 내실을 기하는 데 실패한 결과 역할을 하지 못한 채 소멸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심지연 경남대 명예교수는 “당초 학문적 영역의 용어였던 뉴라이트가 정치적 의미로 변질되다 보니 상대 진영으로부터 비난의 대상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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