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뷰] 여의도와 경기도까지 번진 ‘격노’ 바이러스
표출 못 하고 쌓아 두는데
격노는 권력자들의 특권
절제 없는 격노, 심판받을 것
야당의 공세가 효과를 거둔 것인지 격노 하면 대통령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1년 전 해병대원 사건 시작이 대통령 격노였다는 게 야당 주장이고, 대통령실은 아니라고 반박한다. 여권에선 “대통령은 화도 못 내냐”고 했다. 그러나 사건 전후로 용산 주변에서 대통령의 격노와 고성(高聲) 이야기가 계속됐다는 게 찜찜한 구석이다.
어느 때부터 대통령실 근무자들에겐 상관들 심기 관리가 일과가 됐다고 한다. 최상부에서 격발된 격노가 수석 및 비서관급으로 완충지대 없이 전달되고, 결국 실무자에게 도착하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누군가는 “큰 소리가 자주 들렸다”고 했고, 다른 누구는 “질책을 듣고 너덜너덜해진 수석을 마주하는 게 힘들었다”고 했다. “화를 내지 않으면 일이 안 돌아간다”는 말을 들었다는 인사도 있다.
여당 참패로 끝난 4월 총선 이후 대통령실서 나오는 격노 이야기는 뜸해졌다. 그런데 이젠 여의도로 ‘격노 바이러스’가 퍼졌다. 상임위원장 최민희는 탈북자 의원에게 전체주의 국가에서 살다 보니 민주주의도 모르느냐고 했고, 여성 공직 후보자에게는 뇌 구조를 물었다. 군미필자 정청래는 제복의 장군에게 일어나라, 앉아라, 나가라고 명령했다. 이 정도 혐오와 차별, 모욕이면 형사처벌까지 각오해야 하지만, 이들에겐 완장과 면책특권이라는 방패가 있다. 200석 가까운 의석을 확보한 총선 결과가 격노에 거침없는 날개를 달아줬다.
용산의 격노가 베일에 싸여 있다면 여의도 격노는 유튜브를 통해 무한대로 퍼진다. “퇴장하라” “몇 살이냐”는 고성은 지지자들에게 보내는 구애 신호다. 놀라운 건 국회 경력 두 달 남짓의 초선들까지 “건방 떨지 말라” “웃지 마라”며 격노의 옥타곤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이다. 컵라면을 끓인 여직원에게 격노했다는 경기지사 동영상은 스위트남의 ‘미담’인 줄 알았더니 연출 논란의 ‘괴담’이 됐다. 용산, 여의도 곳곳이 격노와 고성으로 몸살이다.
그렇다고 격노를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공개된 장소에서 버럭 화를 낸다는 것은 그 공간을 지배하는 권력자의 특권이다. 눈치 볼 일 없는 사람들만 소리 지르며 화낼 수 있다. 보통 사람들은 참는다. 화낸다고 문제가 풀리는 것도 아니고, 화내는 사람이나 화를 받아내야 하는 사람 모두에게 분노는 득보다 실이 크다. 격노는 권력 남용과 갑질로 가는 입구다.
격노하면 일이 내 뜻대로 풀리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건 착각이다. 눈앞에서만 복종할 뿐 조직은 망가지는 데, 그게 권력자에겐 보일 리 없다. 칼이 두려운 건 칼집에 들어 있을 때다. 일단 휘둘러 버리면 그때부터는 너 죽고 나 살자의 투쟁이다. 칼집 속 칼처럼 분노도 가슴에 품고 있을 때가 가장 무섭고 두렵다.
영국 밴드 오아시스는 ‘화내며 돌아보지 말라(Don’t Look Back In Anger)’ 노래했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유권자들은 4년 또는 5년 동안 임시로 부여된 권력이 격노라는 특권을 제 것인 양 휘두르는 것을 보며 분노를 꾹꾹 담아 둔다. 어떤 누적된 분노는 병이 되기도 하고, 어떤 축적된 분노는 금메달의 원동력이 됐다. 권력자들의 격노와 달리 유권자들은 분노를 새겨두며 터트릴 때를 기다린다. 4월 총선에서 권력을 향해 누적된 분노가 한번 터졌고 이제 다음 심판 대상을 노리고 있다. 절제하지 못하는 권력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땅속 마그마처럼 꿈틀거리고 있음을 용산과 여의도 모두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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