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에서] 파리 올림픽의 친환경 여진
지난 11일 폐막한 파리올림픽은 친환경을 둘러싼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인류가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새삼 상기시켰다.
올림픽에 앞서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주요 20국을 대상으로 선수단에 이동식 에어컨을 제공할지 묻는 설문을 진행했다. 미국·영국·캐나다·이탈리아 등 응답한 8국은 모두가 “그렇다”고 답했다. 친환경 분위기가 강한 독일도 일부 선수에게 에어컨을 제공하겠다고 했다. “우리는 소풍을 가는 것이 아니다”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파리올림픽 조직위원회는 ‘가장 친환경적인(greenest)’ 올림픽을 만들겠다며 재생에너지를 활용한 냉방 시스템을 갖췄다. 선수촌 식당 메뉴는 30%를 채식으로 준비했다. 온실가스를 내뿜는 에어컨을 배제하고, 사육 과정에서 탄소 배출이 많은 육류를 줄여 2012 런던올림픽보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절반 이하로 감축하겠다고 한 것이다.
하지만 조직위의 이런 ‘친환경 결정’은 현실에서 박수를 받지 못했다. 많은 나라가 에어컨을 파리로 공수하며 ‘각자도생’에 나섰다. 형편이 어려운 가난한 국가에선 “우리는 어쩌라는 거냐”는 불만이 나왔다. 조직위는 당초 방침을 깨고 에어컨 2500대를 임시로 선수촌에 설치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아예 선수촌을 나와 호텔로 숙소를 옮기는 경우도 이어졌다. 식단도 부랴부랴 육류 등 단백질 공급을 늘렸지만 불만은 쏟아졌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호주, 영국 등 자체적으로 식사를 제공한 국가들은 부러움의 대상이 됐다.
올림픽을 앞두고 안 이달고 파리 시장은 “선수들의 편안함도 존중하지만, 인류의 생존 문제를 더 생각한다. 파리올림픽이 환경의 관점에서 모범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어쩌면 이상고온이 덮친 한여름 파리올림픽이야말로 기후 위기 대응의 중요성을 세계에 알리는 좋은 기회였을 수 있다. 하지만 4년 이상의 시간을 올림픽을 위해 노력한 선수들이 마지막 힘까지 짜내고, 모두가 국기를 흔들며 자국 선수를 응원한 각 경기장에서 이상이 설 자리는 없었다.
올여름은 인류 역사상 가장 더운 해가 될 것이라고 한다. 이런 현실에서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탄소를 줄이자는 건 모두가 따라야 할 대의(大義)다. 하지만 올림픽에서 드러난 각국의 모습 또한 현실이다. 여러 국가의 대표팀 관계자들은 공식적으로는 “탄소 감축을 위한 조직위의 방침에 공감한다”면서도 앞다퉈 이동식 에어컨을 파리 현지로 보냈다.
기후 위기 대응을 두고서 우리의 재생에너지 여건이나 제조업 중심 산업 구조를 외면하고 탄소 감축만을 주장하는 이들이 많다. 주변을 냉정하게 돌아보지 않고 이상만 좇다가 현실을 놓쳤을 때, 생각보다 큰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 그 대가를 오롯이 감당해야 하는 건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이라는 걸 늘 염두에 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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