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러시아~독일 가스관 폭발 작전…“술 기운에 나온 아이디어”

조기원 기자 2024. 8. 15.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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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9월 노르트스트림 가스관 폭발
WSJ “잘루즈니 우크라 총사령관 지휘”
소식통 인용해 보도…잘루즈니는 부인
노르트스트림2 파이프라인이 파괴되고 이틀 뒤인 지난 2022년 9월28일 새어나온 가스가 수면에 기포를 만들고 있다. 덴마크군 사령부 제공

지난 2022년 9월 발트 해저에 일어난 노르트스트림 가스관 폭발 사건은 발레리 잘루즈니 당시 우크라이나군 총사령관이 지휘해 벌인 우크라이나 ‘민관 합동 작전’이었다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익명의 소식통들을 인용해 1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노르트스트림 가스관 폭발 사건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서로 상대방을 배후로 지목하며 실체가 불분명한 사건으로, 사건 발생 2년이 되도록 전모가 명확히 밝혀지지는 않고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에 따르면 작전의 시작은 2022년 5월께였다. 우크라이나군 고위 장교와 사업가 몇명이 모여 2022년 2월 말 시작된 러시아의 침공을 잘 막아내고 있는 것을 자축하는 자리에서 아이디어가 나왔다. 참석자 중 일부가 술 기운과 애국심에 러시아와 독일을 잇는 천연가스관 노르트스트림을 파괴하자고 제안했다. 러시아는 독일 등에 천연가스를 노르트스트림을 통해 우크라이나를 거치지 않고 수출해 막대한 돈을 벌고 있으니, 이 가스관을 파괴하면 러시아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타격이 된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경유하는 가스관을 통해서도 서유럽에 천연가스를 수출하지만 우크라이나는 이 가스관에 대해서는 통행료를 받고 있으며, 우크라니아 경유 가스관은 전쟁 중에도 가동 중이다.

특수작전 경험이 있는 현직 장군이 잘루즈니 당시 총사령관에게 직접 보고하기로 했고, 우크라이나 사업가는 전쟁 초기 자금이 부족했던 군에 작전 수행비용 30만달러(약 4억원)를 지원했다. 우크라이나군은 자금이 부족했고 이 작전은 서방에서 지원을 받을 성격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 작전 참가자는 이 작전을 “민·관 협력”이라고 표현했다.

작전에 참가한 장교 한 명과 소식통 3명에 따르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작전에 대해 보고받은 지 며칠 만에 작전을 승인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보안을 위해 문서를 남기지 않고 구두로만 의사소통이 이뤄졌다.

하지만 이 작전 계획은 네덜란드 정보기관에 흘러들어갔다. 2014년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 내전 당시 네덜란드인이 대거 탑승한 말레이시아 항공 여객기가 친러시아 반군이 쏜 것으로 추정되는 미사일에 격추된 사건이 발생한 뒤, 네덜란드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 상당한 정보망을 구축해 놓고 있었다.

네덜란드 정보기관은 미국 중앙정보국(CIA)에 알렸고, 미국은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작전을 중지하도록 압력을 넣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잘루즈니 당시 총사령관에게 작전 중지를 명령했으나, 잘루즈니는 이를 무시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잘루즈니 당시 총사령관은 작전 실행 뒤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질책을 받았으나 해외로 간 작전 팀과 연락을 하기 어려왔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지난 3월 주영국 우크라이나 대사로 임명된 잘루즈니는 이와 관련한 질문에 대해 자신은 그런 작전을 알지 못한다고 주장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그는 우크라이나군은 해외 작전을 할 권한이 없었고 따라서 자신은 해외 작전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작전은 최초 제안이 나온 지 넉달 뒤인 9월에 실행됐다. 레저용 요트를 빌려서 30대 여성 한 명을 포함해 6명이 참가했다. 민간 잠수사도 포함됐다. 30대 여성을 참여시킨 이유는 그가 잠수 능력도 뛰어났지만 작전 팀이 휴가를 즐기러 온 친구들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잠수사들은 두 명씩 짝을 지어 어두운 발트해 해저로 들어갔고, 타이머가 달린 기폭 제어장치에 연결된 에이치엠엑스(HMX)라는 강력한 폭발물을 설치했다.

작전에 참가한 장교 한 명은 신문에 “언론에서 잠수함과 드론 그리고 인공위성이 동원된 거대한 작전이라는 추측을 내놓을 때마다 나는 웃었다”며 “모든 것은 조국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소수의 용감한 사람들의 강철 같은 결단력에서 비롯된 것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작전에 참여한 요원들은 요트 안에 폭발물 자국과 지문 등 흔적을 남겼고 이는 독일 수사당국에 포착됐다. 슈피겔 등 독일 언론들은 최근 독일 수사당국이 노르트스트림 가스관 폭파사건 용의자로 우크라이나 국적자들을 지목해 추적 중이라고 보도했다.

앞으로도 노르트스트림 폭파의 진실이 명확히 밝혀지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작전에 관여했거나 알고 있는 익명의 우크라이나 당국자들은 어떤 지휘관도 재판에 회부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월스트리트 저널은 전했다. 익명의 당국자들은 최고위 당국자들 사이에 적어도 초기에는 모든 합의를 구두로만 했기 때문에 증거가 남아있지 않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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