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사 반성·책임 요구 없어…시민사회 “역사도발 용기 준 셈”
윤석열 대통령은 15일 제79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일본의 식민지배 등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에서 ‘일본’이라는 단어는 단 두 차례 등장했다. “작년 우리의 1인당 국민소득은 처음으로 일본을 넘어섰고” “올해 상반기 한국과 일본의 수출 격차는 역대 최저인 35억달러를 기록했다”는 부분이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대한민국이 일본과 대등하게 선의의 경쟁을 펼칠 수 있을 정도로 커졌다는 함의가 있다”며 “한·일관계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광복절을 기념하는 자리인데도 식민지배에 따른 우리 민족의 고난과 일본을 향한 비판 및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위한 요구 등은 한 줄도 담기지 않았다. 내용만 봐서는 광복절 경축사인지 알 수도 없을 정도다. 최근 일본 사도광산의 세계문화유산 등재와 관련한 문제도 담기지 않았다. 이 때문에 윤 대통령이 역사 문제를 한·일관계 개선의 ‘걸림돌’로 여기고 회피하려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앞서 취임 이후 두 차례 광복절 경축사에서도 과거사 문제를 구체적으로 거론하지 않았다. 지난해에는 일본을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파트너” “안보와 경제의 협력 파트너”로 규정했다. 2022년 경축사에서도 “일본은 이제, 세계시민의 자유를 위협하는 도전에 맞서 힘을 합쳐 나아가야 하는 이웃”이라고 했다.
시민사회와 학계는 “광복절에 일본의 반성과 책임조차 언급하지 않은 것은 일본의 역사도발에 용기를 준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국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은 “다른 날도 아닌 광복절 경축사에 일본에 대한 언급이 아예 없는 것은 매우 충격적이고 전례가 없다”며 “일본에 대한 굴욕외교 기조 속에서 일본에 부담이 되거나 갈등이 생길 수 있는 것을 스스로 회피하는 경축사”라고 말했다.
일본군 위안부 연구를 해온 김창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경축사에서 과거사 언급을 아예 하지 않은 것은 ‘과거사 청산이 끝났고 더는 한국의 과제가 아니다’라고 보는 것”이라며 “일본 정부는 국가적으로 위안부 소녀상을 지우려 하고 있고 강제동원이 아니었다고 주장하는 상황에서 광복절에 ‘과거사 청산이 끝났다’는 메시지를 주는 것은 심각한 일”이라고 말했다.
정의기억연대는 논평에서 “대한민국 대통령이 일본의 역사 왜곡과 부정에 공범을 자처했으니 일본 총리의 반성이나 유감 표명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 됐다”고 비판했다.
정희완·김송이 기자 ros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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