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정권 붕괴론’ 깔고 내민 손…북 ‘호응’ 끌어내기엔 역부족
북 주민을 ‘통일 주체’로 명시…남북 협력 공간 줄어들어
역대 통일방안과 모순…전문가들 “흡수통일 공식화 의도”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8·15 통일 독트린’을 발표했다. 통일의 지향점을 ‘자유 통일’로 못 박고, 통일의 주체를 ‘북한 주민’으로 삼은 것이 특징이다.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하며 통일 포기를 선언한 북한 김정은 정권을 상대로, 남한과 북한 주민이 함께 공세적으로 통일을 만들어가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그러나 이는 북한 정권의 내부 붕괴론을 염두에 둔 것으로, 북한 정권이 이에 호응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통일 독트린은 ‘자유’ 등 3대 비전과 ‘북한 주민에게 자유 통일에 대한 열망을 촉진한다’는 등 3대 전략을 골자로 한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에서 “통일은 정권 간 인위적인 협상이 아닌, 대한민국 국민과 북한 주민이 자유평화 통일의 주체이자 추진세력으로서 이뤄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구체적인 실현 방법은 7개다. 이 중 남북 간 ‘대화협의체’ 설치 제안과 인도적 지원은 북한 정권을 카운터파트로 삼는다. 나머지는 교육·연구 활성화, 펀드 조성 등 북한 인권 개선, 민간단체의 대북방송 등 북한 주민의 정보 접근권 확대, 북한이탈주민 역할 확대, 기존 ‘한반도 국제포럼’의 확대 등 5개다.
대화협의체 설치를 제안한 것 이외의 방안은 기존 정책을 확대한 것에 불과하다.
정부는 통일 독트린이 ‘민족공동체 통일방안’(공식 명칭 한민족공동체 건설을 위한 3단계 통일방안)을 보완하는 것이라 강조했다.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은 1994년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선언한 것으로, ‘자주·평화·민주’를 기본원칙으로 두고 ‘남북 화해·협력 → 남북연합 → 통일국가 완성’이라는 단계적 통일을 추구한다.
하지만 통일 독트린은 사실상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우회’한 것에 가깝다. 김 차장은 “(통일방안이 발표된 지) 30년이 흐른 지금도 전체주의·권위주의 세력의 자유민주주의 규범 기반 국제질서에 대한 도전이 지속되고 있다”며 “북한 정권의 선의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선제적으로 실천하고 이끌어 나갈 행동계획이 필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통일의 지향점을 ‘자유 통일’로 못 박음으로써 남북 협력의 공간은 더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에서 통일 지향가치를 명시하지 않았던 이유는 남북 간 대화의 공간을 열기 위한 것이었다. 협력을 위해 ‘전략적 모호성’을 택한 것이다. 그러나 ‘자유 통일’이란 가치를 못 박음으로써, 북한이 이에 호응할 여지는 크게 줄어들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북한 내 주민혁명을 일으켜 통일을 달성하겠다는 것으로 북한 체제 붕괴론과 연결된다”면서 “흡수통일을 공식화한 의도가 다분하다”고 말했다.
통일 실현 방안에도 북한이 불편해할 내용이 다수 담겼다. 북한은 인권에 대한 문제제기를 정권에 대한 공격으로 인식하며, 대북방송 등 주민들의 정보 접근권 강화는 2020년 반동사상문화배격법 제정 등으로 외부 문화 유입을 차단하려는 북한 정권의 흐름과 정면 배치된다.
이 때문에 북한 정권이 대화 제의나 인도적 지원에 응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정부는 지난 1일 압록강 유역 수해 복구 물자를 지원하겠다고 밝혔지만 북한은 대응하지 않고 있다. 오는 19일부터 치러지는 한·미 연합군사연습도 북한에 달갑지 않은 상황이다.
곽희양·유새슬·정희완 기자 huiy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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