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 쓴 역사, 혀로 못 덮어”…윤 정부 ‘친일 국정’ 규탄 목소리

오동욱 기자 2024. 8. 15.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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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몰린 광복회 기념식
광복절인 15일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임명 철회 등을 요구하는 시민단체 행사가 서울시내 곳곳에서 열렸다. 함세웅 신부가 항일독립선열선양단체연합 주최로 서울 효창공원 삼의사 묘역에서 열린 기념식에 참석하고 있다(왼쪽 사진). 기념식 후 참석자들이 대통령실을 향해 행진하고 있다(가운데). 평화나비 네트워크 등 대학생단체 소속 회원들이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정부의 뉴라이트 인사 등용과 굴욕적 역사외교를 규탄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연합뉴스
정부 향해 “뉴라이트 내쳐라”
‘항단연’ 등 25곳도 자체 행사
3㎞ 행진하며 “분통 터진다”

‘대한민국 106년 8월15일.’

광복회를 비롯해 56개 독립유공단체가 15일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연 79주년 광복절 기념식 무대 뒤에 내걸린 문구다. 1919년 3·1독립선언과 함께 중국 상해 프랑스 조계지에서 대한민국이 세워지고 임시정부가 수립된 지 106년이 됐다는 뜻이다. 이승만 전 대통령 추종세력 등 사회 일각에서 내세우는 ‘1948년 건국론’을 반박하는 의미에서 못 박아 둔 것이다.

광복회 등은 이날 윤석열 대통령이 참석한 정부 공식 광복절 경축식에 불참하고 기념식을 따로 열었다.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을 비롯해 뉴라이트로 지목된 인사들이 역사 관련 단체장에 줄줄이 임명된 데 대한 항의 차원이었다. 백범기념관엔 300석이 마련됐지만 두 배가 훨씬 넘는 시민이 기념식장을 찾았다. 참석자들은 “뉴라이트 인사 임명을 철회하고 친일사관을 뿌리 뽑으라”고 정부에 촉구했다.

이강년 의병장의 손자 김갑년 고려대 교수는 축사에서 “광복 79주년인데 하나였던 나라는 둘로 찢어져 쪼개져 있고 쪼개진 나라 안에서도 이리 찢기고 저리 찢겼다. 마침내는 광복절 기념식마저도 이렇게 흩어져 거행되고 있다”며 착잡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김 교수는 이어 “대통령은 그 책임을 광복회와 국민에게 전가하고 있다”며 “(대통령은) 친일편향 국정기조를 내려놓고 국민을 위해 옳은 길을 선택하고, 그럴 생각이 없다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라”고 말했다.

이종찬 광복회장은 기념사에서 “피로 쓰인 역사를 혀로 논하는 역사로 덮을 수는 없다”며 “건국절을 만들면 얻을 것은 이승만 초대 대통령에게 ‘건국의 아버지’라는 면류관을 씌워주는 것 하나이고, 그 외엔 일제의 강점을 규탄하는 일도, 침략을 물리치는 투쟁도 모두 무의미하고 허망한 일이 되고 만다”고 말했다.

민족문제연구소와 항일독립선열선양단체연합(항단연) 등 25개 독립운동가 선양 단체도 이날 오후 2시부터 효창공원 삼의사 묘역에서 자체 기념식을 진행했다. 시민 500여명이 모였다. 참석자들은 현 정부에서 벌어지는 역사 퇴행을 좌시할 수 없다고 했다. 태극기를 손에 든 김지은씨(62)는 “이영훈(낙성대경제연구소 소장) 같은 사람은 우리 영토가 분명한 독도를 ‘우리 땅이라는 증거가 있냐’는 식으로 말하고, 정부는 그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을 기관장으로 임명했다”며 “분통이 터져서 나왔다”고 했다.

서울 마포구에 사는 김모씨(63)는 “최근 사도광산에 강제노역 문구가 포함돼 있지도 않은데 정부가 찬성한 것, 위안부 문제를 물어보니 ‘사상의 자유가 있다’고 한 이진숙 방통위원장 발언을 보면서 제2의 국치가 시작됐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어 “식민지배를 36년 받으면서 주권을 찾으려 독립 투쟁했고 그 결과 광복이 됐다는 기본 상식마저 바뀔 수 있다는 위기감이 들었다”며 “좌우를 떠나 나라 걱정을 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이들은 기념식 뒤 용산 쪽으로 약 3㎞를 행진했다. 두 개 차로에 걸쳐 85m가량 늘어선 시민들은 태극기를 등에 두르거나 손에 들고 이동했다. ‘친일관장 임명철회 매국정권 규탄한다’는 문구가 적힌 손팻말도 흔들었다.

오동욱 기자 5do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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