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윤석열 정권의 연이은 역사 퇴행

기자 2024. 8. 15.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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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담하다. 윤석열 정권 출범 이후 3년이 되지 않는 동안 벌어진 일련의 역사 퇴행이!

최근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동원의 현장이던 일본 사도광산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이 과정에서 강제동원 역사를 은폐하려는 일본정부에 한국정부는 적극 협력했다. 오죽했으면 미국의 외교전문지 <디플로맷>에 윤석열 대통령이 “(일본) 기시다 내각이 자국 역사를 세탁하는 데 발견한 완벽한 공범”이라는 내용의 글이 실렸겠는가. 사도광산 문제는 윤석열 정권의 망국적 대일외교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빼앗긴 대한제국이 5년 뒤 나라의 주권마저 빼앗긴 비극의 역사가 연상되기도 한다.

일본 극우세력이 일제의 식민지배나 침략전쟁과 관련된 각종 범죄를 부정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회피하려 내세우는 역사수정주의는 더 이상 일본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에서도 같은 주장을 하는 역사부정세력이 발호한 지 20년 가까이 지났다. 이들은 ‘뉴라이트’라 자처했다. 우리말로 옮기면 신우익 정도일 텐데 사실은 친일극우세력에 지나지 않는다.

친일극우세력은 이명박 정권 이후 조금씩 세를 넓혀나가다가 윤석열 정권에서 전성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대통령실과 정부 곳곳에 친일극우세력이 똬리를 틀고 역사쿠데타를 벌이는 중이다. 동북아역사재단, 국사편찬위원회, 한국학중앙연구원에 이어 며칠 전에는 독립기념관 관장 자리마저 ‘친일파의 명예회복’을 주장하는 인물이 꿰찼다.

사람들은 독립기념관이 친일기념관이 됐고, 3·1절과 광복절은 친일절이 됐다고 탄식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제10대 조선총독’이고 대통령실과 정부는 ‘용산총독부’라는 이야기도 널리 퍼져 있다.

윤석열 정권 이전만 하더라도 역대 대통령은 3·1절과 광복절 기념사에서 늘 과거사에 관한 일본정부의 반성과 사과를 촉구했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직후인 2022년 광복절 기념사 이래 한·일 두 나라 사이의 과거사 현안을 외면했다. 식민지배는 합법적이었고 조선인 강제동원은 없었다고 강변하는, 따라서 반성과 사과도 거부하는 일본정부에 면죄부를 주겠다는 뜻을 거듭 밝혔다. 더 나아가 일제강점기에 우리 민족이 겪은 고통은 자초한 것이며 가해자인 일본에겐 책임이 없다는, 일제가 식민지배의 논리로 내세운 식민사관과 다를 바 없는 인식을 드러냈다.

윤석열 정권은 일본과의 협력을 위한 명분으로 ‘보편적 가치의 공유’를 내세웠다. 청일전쟁, 러일전쟁, 만주사변, 중일전쟁, 그리고 아시아태평양전쟁을 일으켰던 일본은 군국주의 침략 역사를 진정으로 반성한 적이 없다. 그런데 일본이 어떻게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할 수 있다는 말인가?

되레 일본은 지금 군국주의 부활에 혈안이 돼 있다. 아베 정권 때부터 평화헌법 개정을 시도했으며 이것이 여의치 않자 헌법해석과 집단자위권 도입을 통해 사실상 전쟁을 할 수 있는 일본을 선언했다. 독도를 놓고 영토분쟁을 끊임없이 유발하는가 하면 북한을 향한 선제공격마저 공식화했다. 그런 일본과 가치를 공유한다는 건 결국 일본과 군사동맹을 맺어 일본이 북한이나 중국을 공격할 때 일본 자위대 지휘 아래 전쟁에 참여하겠단 말과 같다.

윤석열 정권은 ‘식민지배는 불법’이라는 헌법의 근본정신을 훼손했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정권 내부는 물론이고 제도권 언론에서 제대로 된 비판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이러다가는 독도는 일본 영토가 맞고 동해는 일본해로 부르는 게 바르다는 이야기가 나올지도 모를 일이다. 대한제국이 그랬듯이 고유의 영토조차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나라, 주권을 포기하고 외세에 의존하는 나라로 돌아가는 현실이 안타깝다.

이 글을 마무리하려는 데 놀라운 소식이 들려온다. 뉴라이트의 대표적인 인물이자 집권여당의 전략기획부총장인 신지호가 이번 독립기념관 관장 사태를 놓고 윤석열 정권을 비판하는 이종찬 광복회장을 “일본 극우의 기쁨조”라고 힐난했다는 것이다. 어처구니가 없다. 정작 ‘일본 극우의 기쁨조’로 불려 마땅한 자들이 누구인지를 양식 있는 국민이라면 잘 알고 있다.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한다. 그러나 잘못된 역사의 전철을 다시 밟을 수는 없다. 그래서 우리는 두 눈 부릅뜨고 윤석열 정권과 역사부정세력의 행태를 감시하고 비판해야 한다. 불의의 정권이 역사의 심판을 받고 역사 정의가 제대로 실현되는 그날까지 싸우고 또 싸워야 한다. 2024년을 제2의 독립운동 횃불이 타오르기 시작한 해로 만들어야 한다.

이준식 전 독립기념관장

이준식 전 독립기념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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