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풀에서 곤충까지…전쟁의 업보 속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친 열도인들[책과 삶]

박경은 기자 2024. 8. 15.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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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일본인의 밥상을 어떻게 바꿨나
사이토 미나코 지음 | 손지연 옮김
소명출판 | 211쪽 | 1만7000원

거무튀튀한 보리밥은 요즘 젊은이들도 간간이 별미로 즐기는 음식이다. 하지만 한국전쟁을 겪고 자란 70·80대 이상에겐 진저리나는 맛일지도 모른다. 쌀을 구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먹어야 했던, 입에서 겉도는 그 거친 보리의 맛 말이다. 전쟁은 총칼과 폭탄으로 목숨을 위협하기도 하지만 먹거리를 구하지 못해 생사의 갈림길에 처하게 만들기도 한다. 살아남기 위해 평소 같으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무언가를 입안으로 밀어넣을 수밖에 없다.

<전쟁은 일본인의 밥상을 어떻게 바꿨나>는 중일전쟁부터 아시아·태평양 전쟁에 이르기까지 일본이 전쟁을 거치는 동안 일본인들의 밥상이 어떻게 피폐해져 갔는지 살펴본 책이다. 문예평론가인 저자는 ‘폭탄이 떨어진대도 요리코너를 이어가며 목숨을 부지한 몇몇 여성지’를 통해 이 과정을 들여다봤다.

1937년 중일전쟁이 시작되면서 쌀이 부족해지자 등장한 구호는 ‘절미’. 쌀을 줄여 같은 분량의 음식을 만들어내는 요리법은 쌀 대신 잡곡과 구황작물, 각종 채소를 넣어 밥을 짓거나 밀가루, 고구마, 감자를 활용해 밥을 대체하는 것이다. 전쟁이 이어지면서 식재료의 범위는 점점 ‘확장’되는데 해초가루와 생선뼛가루, 들풀뿐 아니라 말벌 유충, 뱀잠자리 따위의 곤충에 이른다. 흥미로운 점은 여성지 특유의 분위기와 체면을 유지하며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시든 잎, 뿌리, 껍질 등을 아까운 줄 모르고 버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제 해수만 있으면 가정에서 손쉽게 소금을 만들 수 있습니다.”

언뜻 보기엔 궁하면 통하는 요리법을 다룬 책쯤으로 여겨질지 모르나 그건 아니다. 전쟁과 같은 불행이 왜 반복되어선 안 되는지를 구체적이고 실증적 사례를 통해 강조하고 촉구한다.

박경은 기자 k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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