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창호와 김문수, 그리고 개소리에 관하여2[에디터의창]
‘전광훈 그리고 개소리에 관하여.’ 2019년 6월 쓴 칼럼 제목이다. 미국 철학자 해리 고든 프랭크퍼트(1929~2023)의 <개소리에 대하여>를 참조했다. ‘개소리’는 ‘bullshit’의 번역어다. 요약하면 개소리는 ‘진리에 대한 관심에 연결되어 있지 않고, 사태의 진상이 실제로 어떠한지 무관심하며, 정확성을 신경도 쓰지 않은 채 특정한 방식으로 자신의 속셈을 부정확하게 진술’하는 말이다. 당시 칼럼에서 예로 든 게 개신교 우파 목사 전광훈의 “동성애, 이슬람, 차별금지법은 사탄” 같은 말이다.
https://www.khan.co.kr/opinion/morning-column/article/201906092057005
인물도, 자리도 다르지만 한국의 인권 인식은 5년 사이 한발도 더 나아가지 못했다. 동성애와 차별금지법 문제를 두고 전광훈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태극기 집회장이 아니라 공공의 장에 나와 5년 전 주제로 다시 칼럼을 쓴다.
“차별금지법이 도입되면 에이즈·항문암·A형 간염 같은 질병 확산을 가져올 수 있다.” 국가인권위원장 내정자 안창호가 지난 6월 출간한 책 <왜 대한민국 헌법인가-헌법의 이념과 기본원리> 7장 ‘최근 논란이 되는 헌법 쟁점들’에 쓴 말이다. 그는 “신체 노출과 그에 따른 성 충동으로 인해 성범죄가 급증할 수 있다”고도 했다. “차별금지법이 도입되면”이란 가정 아래 여러 비약으로 도덕과 윤리가 무너진 ‘지옥도’를 펼쳐 놓는다. 내가 진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거나 정확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안창호가 국가인권위원장이 되면 한국의 인권은 북한과 비슷한 수준으로 떨어질 수 있다’라고 말한다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이 문제를 보도한 사회부 기자는 원래 안창호 말 하나하나를 두고 ‘팩트체크’를 하려 했다. “감염병 원인을 모르던 1980년대에나 할 법한 비합리적인 말을 2024년에 한다는 것이 놀랍다. 논리가 없어 오히려 반박이 힘들 정도”라는 한 보건학 교수의 말을 듣고는 접었다. 7장을 읽으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글은 쟁점을 다투며 논지를 전개하는 학술 논문인 양 써 내려가는 듯하면서도 결국은 핵심 주장 근거를 <성경> 즉 “성경적 윤리관”에 기댄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라는 <구약> ‘창세기’ 1장 27절을 인용하며 “차별금지법이 성경적 세계관 및 창조질서와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했다. 딸을 노예로 팔거나 아들을 제물로 바치는, 현대 실생활에서 폐기한 <구약>의 수많은 규범까지 따를 참인가 싶다.
오락가락하기도 한다.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것은 성적 소수자 등의 자유와 권리를 훼손하고 억압하려는 것이 아니다. 성적 소수자 등에 대한 증오를 부추기거나 혐오를 조장하기 위한 것도 아니다”라면서 “동성애의 죄성(罪性)” 같은 표현으로 단죄한다. 동성애를 수간(獸姦)의 동일선상에 놓은 진술도 나온다.
안창호 말을 팩트체크 하겠다면 유엔이나 앰네스티 영문 자료를 뒤질 일도 없다. 인권위가 홈페이지에도 올린 ‘평등법(차별금지법) 쟁점과 팩트체크’만 봐도 된다. 인권위 설명자료는 인권위 업무와 존재 의미를 부정하는 사람이 인권위원장을 목전에 둔 비상한 상황을 일깨워준다. 윤석열이 정권의 정부 부처와 공공기관 인사 문제도 아울러 보게 된다. 일종의 ‘극우 유니버스’ ‘개소리쟁이 어벤저스’가 만들어지는 듯하다는 생각도 든다. 이 정권은 그 자리에 가장 안 어울리는 사람, 그 자리에 일해서는 안 될 사람만 골라 앉힌다. 한 사람 더 예를 들면, 고용노동부 장관 내정자인 김문수는 반노동, 반세월호 발언만 한 게 아니다. 그는 2018년 “동성애는 담배 피우는 것보다 훨씬 유해하다. 한번 맛 들이면 끊을 수가 없다”고도 했다.
5년 전 칼럼에서 ‘전광훈류’와 단절하려면 차별금지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썼다. 문재인 정권은 행정, 의회 권력을 갖고도 노란봉투법도, 차별금지법도 제정하지 않았다. 지금 더불어민주당은 무슨 이유인지 노란봉투법은 다시 꺼냈지만, 차별금지법은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윤 정권 거의 모든 인사에 문제를 제기한 민주당은 15일까지도 안창호 관련 논평만은 내놓지 않았다. 안창호의 ‘건국’에 관한 말을 독립기념관장 경질 촉구 논평 중 한 줄로 문제 삼았을 뿐이다.
2022년 2월10일 열린 미래목회포럼 주최 ‘대선과 기독교에 대한 토론회’에 침묵의 이유가 나온다. 당시 민주당 의원 김회재는 “300명 국회의원 중에 제가 가장 센 (차별금지법) 반대론자”라고 했고, 김진표는 2013년 당시 민주당 의원 김한길이 발의한 차별금지법 법안을 철회시킨 ‘장본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이 자리엔 황교안도 참석해 차별금지법 반대 뜻을 같이했다. 민주당 사람들도 차별금지법에 관한 문제에서 ‘극우 유니버스’를 함께 구성한다. 안창호의 등장은 윤석열 정권과 야권이 함께 이룬 일이다.
여러 시민사회 단체는 안창호 내정에 분노하며 한국 인권 미래를 걱정한다. 안창호가 국가인권위원장이 되고, 세상이 아무리 역행해도 시민의 존재 덕에 인권이 당장 북한 수준으로 떨어질 일은 없을 것이다. 안창호의 가정법을 빌린 다음 진술이 개소리가 되는 일도 없을 듯하다. ‘안창호가 국가인권위원장이 되면 혐오, 배제, 차별의 확산을 가져올 수 있다.’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408131715001
https://www.khan.co.kr/opinion/morning-column/article/201912012033025
https://www.khan.co.kr/culture/religion/article/202202271611001
김종목 사회부문장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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