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바 회계부정’ 제재 취소에도 ‘이재용 항소심’ 안심 못 하는 이유

박종오 기자 2024. 8. 15.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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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사법당국, 3가지 다른 결론
증선위-이재용 1심 ‘상반된 판단’
행정법원은 고의 회계부정 인정
금감원 “이재용 2심 영향 미칠것”
연합뉴스

갑돌이는 약국을 창업하며 미국 친구인 마이클과 공동 투자를 했다. 약국은 누구 소유일까? 마이클이 약국 지분 절반을 사올 수 있는 권리를 갖긴 했으나, 처음엔 약국을 갑돌이 소유라고 했다. 그러다 갑돌이는 느닷없이 마이클이 약국 지분 절반을 사갈 가능성이 커졌다며 막대한 지분 평가이익을 올렸다고 동네 관청에 신고했다. 약국을 ‘단독 지배’에서 ‘공동 지배’로 바뀌면 갑돌이 보유 주식 가격도 시가로 다시 평가해 매겨야 한다는 정부 규정에 따라서다.

이는 삼성그룹의 불법 경영권 승계 의혹의 주요 갈래 중 하나인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혐의를 비유한 것이다. 이 사안을 놓고 금융당국과 사법당국이 제각기 다른 판단을 내리며 향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2심 재판에 미칠 영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각 기관의 판단과 근거, 전망 등을 짚어봤다.

①사실관계: 옛 제일모직(현 삼성물산) 산하 삼성바이오로직스(이하 삼바)는 2012년 미국 바이오젠과 합작 투자해 삼성바이오에피스(이하 에피스)를 차렸다. 삼바는 에피스 지분 90% 이상을 보유한 까닭에 2014년까지 에피스를 삼바가 단독 지배하는 ‘종속기업’으로 분류했다. 그러다 2015년 바이오젠이 에피스 콜옵션(정해진 가격에 주식을 살 수 있는 권리)을 행사할 가능성이 커졌다며 에피스를 삼바와 바이오젠의 ‘공동 지배회사’로 재분류했다.

이처럼 종속기업 주식을 공동 지배기업 주식으로 바꾸면, 지분 가치도 기존 순자산(자산-부채)이 아닌 미래 이익을 반영한 시장가치로 평가할 수 있다. 이에 삼바는 2015년 4조5천억원 규모 평가이익을 재무제표에 반영했다. 이는 당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에서 이재용 회장 지분이 많은 제일모직(삼바 모회사)의 고평가를 뒷받침하기 위한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②증권선물위원회: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이하 증선위)는 2018년 11월 삼바가 ‘고의 분식회계’를 저질렀다며 대표 해임, 과징금 부과, 검찰 고발 등을 결정했다. 증선위는 삼바와 바이오젠의 계약 내용 등을 볼 때 애초 에피스가 공동 지배회사였으나, 삼바 쪽이 고의로 기존 재무제표를 고치지 않고 2015년에 지배력 변경이 이뤄졌다는 ‘비정상적인 대안’ 모색을 통해 이익을 뻥튀기했다고 판단했다. 현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담당 검사 시절인 2020년 한걸음 더 나아가 이러한 분식회계(회계 사기)가 “삼바의 자본잠식을 피하고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간) 불공정 합병 논란을 회피하기 위한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③서울중앙지방법원: 올해 2월 이재용 회장의 경영권 불법 승계 혐의 1심 판결에서 무죄를 선고한 서울중앙지법 판단은 증선위 및 검찰과 정반대다. 삼바와 바이오젠의 합작 계약상 바이오젠이 실질적 지배력을 갖고 있지 않고, 2015년 이전엔 에피스 주식을 살 수 있는 콜옵션을 행사할 가능성도 낮았다는 것이다.

반면 2015년 들어선 에피스가 유럽의 약품 허가를 받으며 바이오젠의 콜옵션 행사 가능성이 커졌다고 봤다. 한마디로 에피스를 2015년 이전엔 ‘단독 지배’, 그 이후엔 ‘공동 지배’로 분류한 삼바의 회계 처리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얘기다.

금융감독원. 연합뉴스

④서울행정법원: 지난 14일 증선위의 과징금 부과 등 제재 취소 판결을 한 서울행정법원의 견해는 이 회장 1심 판결을 한 서울중앙지법은 물론, 증선위와도 다르다. 재판부가 2015년 이전 삼바가 에피스를 종속기업으로 분류한 건 “회사의 재량권이고 회계 기준 위반이라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도 2015년의 에피스 지배력 변경(단독 지배→공동 지배)의 경우 “삼바 자본잠식 등 문제를 회피하려고 결론을 정해놓고 재량권을 남용한 것”이라고 못박았다. 다시 말해 2015년 당시 삼바가 에피스를 바이오젠과의 공동 지배회사로 재분류하며 대규모 평가 차익을 반영한 게 고의적인 회계사기였다는 점을 분명히 한 셈이다.

금감원이 이날 서울행정법원의 판결을 두고 “(금융당국의) 패소이긴 하지만 서울중앙지법과 달리 2015년 지배력 변경이 정상적인 회계 처리가 아니라고 판시한 점은 의미가 있다”며 “이번 판결이 (이 회장) 형사 소송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는 입장을 내놓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박종오 기자 pjo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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