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차별 통신조회...검찰, 일가친척과 지인 개인정보까지 털어

최윤원 2024. 8. 15.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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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2일 금요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수많은 대한민국 국민의 휴대폰에 잇달아 알림 문자가 도착했다. 제목은 ‘통신이용자정보제공 사실 통지’, 발신자는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반부패수사1부’였다.

검찰이 해당 휴대폰 가입자의 개인정보, 즉 이름과 주민번호, 주소, 아이디, 가입 일자 등을 통신사에서 받아갔다는 통보였다. 검찰이 정보를 수집한 날은 무려 7개월 전인 지난 1월 4일과 5일. 조회 사용 목적은 '수사'로, 모두 똑같았다.

▲ '통신이용자정보제공 사실 통지' 문자 메시지 

문자에 기재된 ‘조회 사용목적’ 항목의 ‘수사’란 바로 ‘윤석열 명예훼손 사건’ 수사로 추정된다. 검찰이 불특정 다수의 일반 시민들을 ‘윤석열 명예훼손 사건’의 관련자로 의심했고 이를 확인하기 위해 통신 정보를 조회한 뒤 그 사실을 통보한 것이다. 그 대상자는 최소 수백 명에서 수천 명 이상 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윤석열 후보 시절 “통신 사찰... 미친 사람들 아닙니까?”

윤석열 대통령은 2021년 대선후보 시절 국민의힘 소속 의원 80여 명에 대한 공수처의 통신 정보 조회를 사찰로 규정했다. 또 공수처를 미친 사람들이라며 원색적으로 비난하고 공수처장을 당장 구속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 (2021년 12월 30일 국민의힘 대구 선대위 출범식) 

많은 언론인들 통신 사찰하고, 우리당 의원의 현재 확인된 것만 60~70%가 우리 의원님들 통신 사찰을 받았습니다. 저도 저, 제 처, 제 처 친구들, 심지어 제 누이동생까지 통신 사찰했습니다. 이거 미친 사람들 아닙니까?
국회의원과 언론인을 이렇게 사찰하면... 국회의원 보좌관만 사찰해도 난리가 나는 것입니다. 원래... 그런데 심지어 우리당 의원들 단톡방까지 털었어요. 그러면 결국 다 열어본 거 아닙니까. 이거 놔두어야 되겠습니까? 이 공수처장 사표만 낼 것이 아니라 당장 구속 수사해야 되는 것 아닙니까
-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후보 (2021년 12월 30일 대구 선대위 출범식)

통신 조회 당한 시민들, "너무 불안하고 화난다"

뉴스타파는 이번 무더기 통신정보 조회 사태의 양상을 파악하기 위해 피해 사례를 제보받고, 수집했다. 뉴스타파 제보 창구에만 3일만에 검찰 문자를 캡쳐해 보낸 피해사례가 100건 넘게 쏟아졌다. 다른 경로를 통해 수집한 사례를 합하면 250여 건에 이른다. 

이 중 언론인이 절반 가량으로 나타났다. 뉴스타파에서도 윤석열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김용진 대표와 한상진, 봉지욱 기자뿐만 아니라 전체 구성원의 절반 이상이 통신조회를 당했다. 민주당이 자체 집계한 의원과 당직자 130여 명은 제외한 숫자다.

통신 조회 사실을 제보한 시민들은 ‘명예훼손 사건과 전혀 관련이 없다’, ‘통신 조회 이유를 알고 싶다’라고 입을 모았다. 한 시민은 통신정보 조회 문자를 받은 뒤 검찰 직원에게 문의한 통화 녹음 파일을 뉴스타파에 보내왔다. 검찰청 담당자는 지금까지 연락받은 게 없다면 관련이 없는 분이니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 ‘통신이용자정보제공 사실 통지’ 제보자와 검찰청 담당 직원과의 대화

검찰청 담당자는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말했지만, 통신 조회 통지 문자를 받은 일반 시민들은 놀라고,  불안해 했다. 어떤 식이든 검찰 수사에 내가 연루됐다는 사실, 검찰이 나의 개인 정보를 가져갔다는 사실, 검찰이 나에 대해 수사했다는 사실은 두려운 일이었다.

▲  ‘통신이용자정보제공 사실 통지’를 받은 김영준 씨

검찰 반부패부에서 통지를 받고 나는 가진 돈이 없는데 너무 의아했고, 당황했고. 뭐지? 내가 알지도 못하는 거를 누가 사찰했고 사찰의 목적이 수사라고 분명히 밝혀져 있잖아요. 검찰이 나를 수사한다는데 불안하죠.
- 김영준 / 한양대학병원 노조 조합원

아침에 메시지를 받았는데 하루 종일 출근도 못하고 머리가 하얘지더라고요. 그저 조그마한 음식점을 하면서 하루하루 근근이 살아가고 있는데 내가 무슨 일로 검찰에서 이런 조사를 받아야 되고… 아직도 불안해요.
- 국옥현 / 봉지욱 기자 지인

저녁때 이 문자를 받고 깜짝 놀랐죠. 아직도 집에서는 제가 제 전화번호가 털렸다는 것을 몰라요. 집에서 걱정을 할까봐 얘기를 안 했고… 너무 화나는 거예요. 사실은 약간 좀 뭐라고 할까  소름 돋는다는 느낌 있잖아요. 빅브라더가 있다는 느낌, 그런 것들이 사람을 굉장히 기분 나쁘게 하고 사람을 위축되게 만드는 거죠. 그걸 노리는 것 같아요.
- 박정남 독립PD

무더기 통신이용자정보 조회... 법원 허가 불필요

검찰이 전화번호를 매개로 불특정 다수 시민의 민감한 개인 정보를 확인하고 통지하는 과정은 2단계로 나뉜다.

먼저 첫번째 단계로 검찰은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라 사건 피의자와 참고인 등의 전화번호를 대상으로 통신사실 확인자료 제공요청 허가를 법원으로부터 받는다. 이를 흔히 '통신 영장'이라고 한다.

▲ 법원의 허가가 필요한 검찰의 '통신사실 확인자료 제공요청'(통신 영장). 검찰은 이를 통해 피의자나 참고인 등의 발신/역발신 통화나 문자 교신 상대방의 전화번호, 통화 및 교신 일시와 지속 시간 등의 통신 내역을 확보한다.  

검찰은 법원의 허가를 받으면 SK텔레콤이나 KT 등 통신 3사로부터 피의자나 참고인 등이 통화하거나 문자를 주고받은 상대방 전화번호와 통화 일시, 교신 시간 내역 등을 모두 확보한다. 기간이나 통화 상대의 수에 따라 전화번호가 수십 개에서 수천 개가 수집될 수도 있다. 

다음 두번째 단계로 검찰은 이렇게 확보한 전화번호의 가입자 신원을 파악하기 위해 통신사에서 통신이용자정보자료를 요청한다. 이 단계에서는 법원의 허가가 필요 없다. 전기통신사업법 상 통신자료는 가입자 이름, 주민번호, 주소, 아이디, 가입일 등이 해당된다. 이번에 검찰 문자를 받은 사람들은 이처럼 검찰에 자신의 통신자료, 즉 주민번호, 주소, 아이디 등이 털린 경우다. 

▲ 법원의 허가가 불필요한 검찰의 '통신이용자정보', 즉 '통신자료' 제공 요청

2024년 이전에는 검찰 등 수사기관이 통신자료를 털어가도 당사자에게 이를 통보조차 해주지 않았다. 이번에 ‘통신이용자정보제공’ 사실 통지를 받은 사람들의 대다수가 2023년 9월과 12월 사이에도 통신 자료를 조회당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지난해 하반기에 자신의 통신자료가 검찰에 제공된 사실은 이런 문자 통지조차 받지 못했다.  

▲ 취재 기자가 통신사에 직접 확인한 '통신자료 제공내역 확인서' - 2023년 10월과 11월에 조회한 내역이 확인된다. 이 조회 사실과 관련해서는 검찰에서 아무런 통보를 받지 못하고, KT에 직접 요청해 관련 사실을 확인했다.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으로 올해 1월부터는 통신자료 제공 뒤 1개월 안에 당사자에게 통지를 하도록 했다. 하지만 이번 윤석열 명예훼손 사건에선 검찰이 정보 제공 7개월이 된 시점에야 통지를 했다. 국가안전보장이나 생명안전 등의 사건일 경우 3개월간 두 차례 유예할 수 있다는 규정을 적용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이른바 윤석열 명예훼손 사건을 진짜 국가 안전보장이나 생명 안전과 동급의 사건으로 보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 정도다. 또한 언론 보도 관련 명예훼손 사건은 기사 자체가 가장 뚜렷한 증거다. 반부패수사부가 명예훼손 사건을 수사한다며 수많은 사람의 통신 정보를 조회하고 수집하는 건 전례가 없는 일이다. 과잉금지 원칙에도 위배되는 수사다.

참고인 일가 친척과 지인까지 모두 윤석열 명예훼손 수사 대상?

심지어 수사 대상자의 '지인의 지인'까지 통신자료 정보가 털린 경우도 있다. 이번 사건으로 검찰에서  참고인 조사를 받은 노동인권저널리즘센터 탁종열 소장은 일가 친척뿐만 아니라 지난 1년간 자신과 통화했던 거의 모든 사람이 통신자료를 털렸다고 말했다.

▲ 탁종열 노동인권저널리즘센터 소장

일단 제 가족 같은 경우에는 제 처, 그리고 누나 3명, 그다음에 조카 2명까지는 제가 직접 확인을 했고요. 지인들 중에서는 학교 친구들, 학교 친구들 중에서도 특별하게 제가 연락하고 있는 사람들은 굉장히 소수거든요. 과 친구 중에 1명 그다음에 과 후배들 몇 명인데 이 인원들은 통째로 다 이번에 통신 조회가 됐다는 걸 확인을 했고요. 
제가 통화했던 사람들하고 일일이 다 이번에 통신이용자정보 조회를 했는지를 확인했는데 거의 대부분이 통신 정보 제공 사실 통지를 받았다고 하는 걸로 봐서는 검찰에서는 제 개인의 통신자료 정보뿐만 아니라 (통신영장을 받아) 제 통화 내역에 대해서 확인한 것은 분명한 것 같아요.
- 탁종열 노동인권저널리즘센터 소장

검찰이 탁종열 소장의 주변 인물 통신자료도 대거 조회한 것으로 보면 참고인 신분인 탁 소장에 대해서도 통신영장을 받아 그와 연락한 사람의 신원을 샅샅이 뒤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까지 뉴스타파 취재를 종합하면 검찰의 이 같은 저인망식 통신 정보 수집은 다른 목적이 있지 않느냐는 의구심마저 불러일으킨다. 윤석열 정부에 비판적 기사를 쓴 언론인과 그와 연락한 사람을 대상으로 한 무차별 개인 정보 수집은 언론 통제의 또 다른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주민번호, 주소, 아이디 등이 무방비로 검찰 손에 넘어간 상황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사상 최대의 통신 사찰 스캔들로까지 불리는 이번 사태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선 먼저 검찰의 통신 영장, 그리고 통신자료 요청 대상과 규모 등에 대해 국회 차원에서 철저한 조사가 진행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뉴스타파 최윤원 soulabe@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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