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씨에 새긴 항일 정신…동농 김가진 서예전 '백운서경'
[EBS 뉴스]
오늘은 제79주년 광복절입니다.
전국 각지에서 독립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행사들이 이어졌는데요.
일제 치하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획을 그었던, 한 독립운동가의 특별한 서예전이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먼저 영상부터 보고 오겠습니다.
[VCR]
항일비밀조직 '대동단' 총재
동농 김가진
조선왕조의 대신으로 임시정부에 참여한
유일의 '독립운동가'
당대에는 최고의 서예가
창덕궁 후원 등 역사에 새긴 글씨
흔들리지 않는 기개로
글씨의 정법을 구사한 대가
동농 김가진의 첫 서예전
'백운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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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현아 앵커
당대의 명필로 이름을 날렸던 독립운동가, 동농 김가진 선생의 서예전을 통해 광복의 의미를 되짚어봅니다.
‘백운서경’ 전시를 기획한,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 연결해서 자세한 이야기 나눠봅니다.
교수님 안녕하세요.
지금 작품이 전시된 현장에서 함께하고 계십니다.
동농 김가진 선생님은 독립운동가이면서 명필로도 유명했는데요.
어떤 인물이었는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유홍준 교수
동농 선생님은 본래 조선왕조 말기에 판서를 지내셨던 분이고 대한제국 시절에 광무개혁을 주도하신 개화파 인사이면서 또 독립협회에도 참가하신 독립운동가이십니다.
동농 선생님은 일제의 강압에 의해 가지고 나라를 잃게 되니까 칩거하다가 3.1운동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노구를 이끌고 74세였을 거예요.
상해 임시정부로 망명을 해서 상해 임시정부의 고문을 대신 당시 국로 나라 국자 노인 노자 나라의 큰 원로로서 대접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77세에 세상을 떠났을 적에 상해 임시정부 최초로 국장으로 성대하게 장례를 치렀던 우리 암울했던 시절에 훌륭한 나라의 큰 어른이셨던 분입니다.
서현아 앵커
이런 삶을 살아오셨던 동농 선생님의 작품들 이번 전시를 기획하신 배경과 의미도 궁금한데요.
유홍준 교수
사실 동농 선생님의 서예전 같으면은 나라에서 국가기관에서 벌써 전에 했어야 되는데 서거 120주년이 돼가지고서 이제 와서 열린다고 하는 것은 참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는데 후손들이 이 작품을 많이 수집을 해가지고 이렇게 예술의전당에서 기획을 할 수 있게 돼서 제가 적극 참여를 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남기신 그 유적들을 중심으로 하면서 독립운동과 관계됐던 이 자료와 사진들을 함께 전시를 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선생님의 위협을 기리고 우리가 국가가 독립하기 위해 가지고 얼마나 많은 분들의 힘든 노고가 있었는가 하는 거를 상기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면서 전시회를 꾸몄습니다.
서현아 앵커
창덕궁 후원에 걸린 현판이 대부분 동농 선생님의 글씨라고 합니다.
그만큼 당대 최고의 서예가였다는 건데 이번 전시에서 주목할 만한 작품들 또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유홍준 교수
창덕궁 후원의 현판 13점 이외에도 안동에 있는 그 봉정사 현판도 선생님 글씨고요.
특히 서울 창의문 아래 서울 성곽 아래에 백운동이라고 하는 곳이 선생님이 사시던 곳에요.
거기에 큰 바위에 백운동천이라고 하는 바위 글씨가 새겨 있는데 그 길이가 10m가 넘습니다.
그래서 이거를 이번에 흥선 스님이 아주 정밀하게 탁본을 해가지고 모든 사람들이 감상할 수 있게 했고, 그리고 박연폭포에 새겨져 있는 김가진이라고 하는 큰 글씨도 아주 장중합니다.
글씨의 정법으로 썼다고 하는 것에 큰 의미가 있습니다.
서현아 앵커
현재 서울 서대문에 있는 독립문 현판 글씨도 동농 선생님의 작품이라는 설이 있는데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유홍준 교수
아마 맞을 거예요.
그 본래 동농 선생님이 독립협회에 참여하셨고 그리고 당시에 그렇게 큰 글씨를 이 한자하고 한글로 쓸 수 있는 분은 동농 선생님뿐이 없었어요.
그 며느님인 정정화 여사가 쓴 장강일기에 보면 동농 집안에서는 당연히 동농 선생이 썼고 탁본도 있었다고 해요.
근데 그게 이사하고 하는 과정에 어디로 갔는지 아직 찾지 못했다고 해서 그것만 찾아오면은 확실하게 동농 선생님의 글씨라고 앞세워서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서현아 앵커
그 어려웠던 시기에 정말 독보적인 작품 세계를 펼쳐오신 동농 김가진 선생님 동농 선생의 항일투쟁 정신과 서에는 어떤 연관성이 있다고 보시는지요?
유홍준 교수
이분이 보여주고 있는 서체에 아주 단정하면서도 흔들림 없이 쓰고 있는 정법을 구사했다고 하는 데에서 어지러운 시절에 흔들리지 않으려는 그러한 기개를 볼 수 있고 한편으로는 그 자결하신 민충전공 민영환 선생의 만사를 쓴 글 같은 거를 보면은 아주 숙연한 분위기가 일어납니다.
서현아 앵커
교수님 그렇다면 이번 전시에서 가장 신경 쓰신 부분은 어디에 있을까요?
유홍준 교수
무엇보다도 동농 선생님의 서예가 서예가로서 당대 최고 관은 행서를 쓴 서예가로서의 모습을 작품으로 유감없이 보여줄 수 있게 하기 위해서 개인이 갖고 있고 기관에서 갖고 있는 작품도 대여를 해서 동농 선생님의 글씨체가 젊어서 돌아가실 때까지 쭉 변했던 모습도 보여주고 또 전국에 흩어져 있는 현판 글씨들도 다 수집을 해가지고 탁본을 하고 사진을 찍어서 전시를 했고.
그리고 글씨를 통해서 선생님의 정신, 삶을 기르기 위해서 독립운동 관계 자료, 그리고 동농 선생님이 안동 김씨 청풍계 백운동의 주인이었기 때문에 그 청풍계와 백운동에 관계되는 겸재 정선의 그림도 국립박물관에 있는 것을 사진으로 실물대로 해서 놓고 실제 유족이 갖고 있는 겸재 정선의 백운동 작품을 전시할 수 있어서 그림도 볼 수 있고 독립운동 자료도 볼 수 있고 동농 선생님의 서예도 볼 수 있고 한데.
유감스러운 것은 요즘에는 한문을 안 가르쳐 가지고 많은 사람들이 그 뜻을 새기기가 힘들 것 같아서 한국고관찰연구회에 부탁을 해가지고 여기에 나온 작품 전체를 다 한글로 번역을 해서 작품 옆에 전시를 했어요.
그 뜻을 다 새기면서 글씨를 감상하면은 예술로서의 서예도 느낄 수 있고 무엇보다도 동농 선생님의 위대한 족적과 삶을 기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이 많이 와서 봤으면 좋겠습니다.
서현아 앵커
여러 가지 의미에서 아주 의미 있는 자리가 될 것 같은데요.
이 전시를 보러 올 관람객들에게도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유홍준 교수
서예 작품을 보실 적에는 재미가 없을 거예요.
그런데 그 옆에 써 있는 해설문을 읽어보면은 아 이게 이런 의미가 있구나 하고 이 한문도 또 공부를 좀 해야겠구나 하는 그런 생각이나 반성이 있을 수 있고.
또 3층에 전시돼있는 현판 글씨들을 보면 저렇게 큰 글씨를 쓴 붓은 얼마나 있을까 하는 그런 생각도 하면서 서예의 세계라고 하는 것이 요즘에 캘리그래피라고 하는 말로 더 많이 통용됩니다마는 이 붓맛이라고 하는 거가 저런 건가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서현아 앵커
혼탁한 현실 속에서도 꼿꼿한 글씨로 민족의 얼을 새겼던 동농 김가진 선생의 글을 통해서 많은 사람이 광복의 의미를 다시 새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교수님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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