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이주노동자이다 [세상읽기]
김인아 | 한양대 교수(직업환경의학)
10여년 전, 이주노동자들의 산재 사망 원인이 무엇인지 분석할 기회가 생겼다. 업무상 사고 사망자 1천여명 중 이주노동자가 100명이 넘은 지 얼마 안 되는 시점이었다. 이주노동자들이 소규모 사업장에서 위험한 일을, 열악한 조건에서 하고 있는 상황이었으니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했다. 언어적 차이 때문에 작업 중 발생하는 다양한 위험을 충분히 전달하거나 인지할 수 없는 리터러시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건 당연히, 그리고 여전히 가장 중요한 장벽이다.
그런데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면담조사를 진행하면서 중요한 한가지를 놓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국에 오기 전 이미 그들은 노동자였다는 사실이다. 다만, 일의 성격이 너무 달랐다. 학교 교사를 하던 사람도 있었고, 회사에서 사무직으로 일을 하던 사람도 있었고, 판매직으로 근무를 했거나 대학원에서 공부를 하던 사람도 있었다. 어찌 보면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 한국에 일을 하러 오는 것은 자국의 모집 기관에 상대적으로 큰돈의 수수료를 주어야 하는 돈이 많이 드는 일이고 낯선 외국에서 살아가겠다는 도전이 필요한 일이었다. 이런 결심을 하기 위해서는 일정 정도의 돈을 마련할 여력이 있어야 하고, 이러저러한 상황을 물어볼 수 있는 지인이나 인적 네트워크도 있어야 한다. 이렇게 자국에서 어느 정도의 자원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이 생전 처음 보는 열악한 작업환경에서 일하는 것도 힘든 일인데, 심지어 직장과 일상에서 무시를 당하고 있었다.
최근 사회적으로 관심이 집중된 한 집단의 이주노동자들이 있다. 바로 필리핀 가사노동자들이다. 정책의 목표와 실효성, 또는 찬반에 대한 문제와는 별개로 최저임금을 주지 않아도 되게 해달라는 공공연한 요청과 이를 보도하는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면서 10여년 전에 만난 이주노동자들이 생각났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과 돌봄노동, 그리고 여성 노동자에 대한 저평가가 복합되어 드러난 현상을 바라보며, 혐오와 차별이 담긴 단어들이 달린 댓글을 보면서, 이러한 문화적·정책적 환경이 이주노동자들의 산재예방을 더 어렵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주노동자의 안전보건과 관련한 각종 국제 지침이나 가이드라인에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은 문화적 장벽과 언어적 장벽에 대한 문제다. 정부도 고용허가제로 들어와 일을 하고 있는 20여만명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비자의 형태로 일을 하고 있는 90만명이 넘는 전체 이주노동자에게 관련 정보가 가닿을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하고 있다. 이들의 모국어를 기반으로 한 안전보건 콘텐츠와 전달 방식을 개발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아직까지 그들의 커뮤니티와 긴밀하게 협조하면서 정보가 잘 전달되고 있는 것 같지는 않고, 현재의 집단 교육 방식에서 벗어나 낯선 작업환경에 적응을 도울 수 있는 직무중심훈련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노력들은 한계가 있는 상황이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에 못지않게 각종 지침과 가이드라인에서 다루고 있는 것이 사회적 배제와 차별의 해소다. 실제로 이주노동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은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난민이 늘어나면서 수준 높은 시민사회의 상징과도 같았던 프랑스나 독일, 북유럽에서도 동일하게 겪고 있는 문제다. 그래서 이런 가이드라인에서는 그들의 커뮤니티를 존중하고, 정책 수립과 시행에 있어서 중요한 참여자로 인식하는 한편, 이주노동자들을 제도권 내로 인입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차별과 혐오의 언어로는 안전보건의 기본 조건인 괜찮은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독일 탄광에 일을 하러 가기 위해서 영화 ‘국제시장’의 덕수는 시험도 보고 면접도 보고, 군대 공병대 경력을 강조하면서 애국가까지 불렀다. 시장에서 잡화점을 하던 덕수가 맞이한 탄광의 낯섦과 무서움은 교육과 훈련, 정보 전달의 방식으로 노동자가 자기를 보호하면서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들이 느끼는 차별과 고립감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덕수가 한인 모임에 나가면서 정서적 안정을 찾았듯이 그냥 각자가 알아서 정서적 안정만 찾으면 되는 일은 아닌 것 같다. 한국의 주요한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참여의 기회를 제공받고 존중을 받을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우리도 이주노동자였고, 지금도 어딘가에서는 이주노동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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