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촌에서 오래 살아남는 방법 [전범선의 풀무질]
전범선 | 가수·밴드 ‘양반들’ 리더
얼마 전 우리 집 앞에 섬뜩한 전단지가 나붙었다. 이른바 “신통”에 관한 것이었다. “남산 고도제한 완화! 신속통합기획 지정 시 아파트 신축 가능!” 집뿐만 아니라 내가 운영하는 책방과 라이브클럽, 그리고 밴드 작업실까지 전부 “신속통합기획 예정지역”에 포함되어 있었다. 부동산 전화번호와 함께 적힌 빨간 글씨가 나를 움찔하게 만들었다. 우리 남산골 해방촌을 싸그리 부수고 재개발하겠다는 것 아닌가?
전역하고 해방촌에 들어와 산 지 어언 6년이다. 내가 여기 터를 잡은 이유는 간단하다. 먹고살기 편해서다. 서울에서 채식주의자에게 가장 우호적인 동네가 해방촌이다. 비건, 퀴어, 난민 등 한국 사회의 소수자에게 열려 있는 곳이다. 외국인이 많이 살기 때문이다. 애초에 1945년 해방될 때 이북에서, 만주에서, 일본에서 돌아온 동포가 모여 살기 시작한 난민촌이라 이름이 해방촌이다. 이제는 삼대째 내려오는 토착민들이 마을의 중심이다. 경로당에 가면 건물주 어르신들이 여럿 계신다. 미군부대 앞에서 80년 가까이 지내셨다 보니 외국인들과도 거리낌이 없다.
물론 나도 해방촌의 낡은 건물과 좁은 길목, 어지러운 전봇대와 나뒹구는 쓰레기가 답답하다. 아무런 도시 계획 없이 생겨난 달동네다. 여름에는 내가 운영하는 세 곳 전부 물이 샌다. 전문가를 모셔도 해결이 안 된다. 애초에 해방촌 거리가 남산 계곡이었다고 한다. 난민들이 산 중턱까지 올라와 얼키설키 집을 지은 것이다. 나야말로 해방촌 건물이 깔끔하고, 물도 안 새고, 길도 반듯하길 누구보다 바란다. 그러나 “신속통합”이라는 말은 신통하기보다는 무섭다. 우리네 삶을 단숨에 쳐부수고 아파트를 짓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놈의 아파트! 나는 아파트에서 태어나 아파트에서 자랐다. 머리 크고 상경하여 자취를 시작한 이후 원룸과 오피스텔과 빌라를 전전했다. 아파트란 무엇인가? 아파트먼트(apartment), 말 그대로 우리를 산산이, 따로따로, 떨어뜨리는(apart) 것이다. 근대 산업 문명의 주거 방식이다. 나는 공동체로부터 분리되어 개인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넌더리 난다. 그런 삶은 지속 불가능하다. 대한민국이 왜 자살률 최고, 출생률 최저인가? 공동체가 없기 때문이다. 아기를 하나 키우기 위해서는 마을이 필요하다. 아파트는 우리를 나누고 가두고 옮기는 죽임의 메커니즘이다.
뱅뱅사거리 오피스텔 20층에 살 때가 있었다. 그 건물 하나에만 수백명이 살았다. 마을 하나 인구다. 그러나 바로 옆집에 누가 사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몇 개월 지나면 세입자가 바뀌었다. 창문 밖 거리를 다니는 사람들을 내려다보면 일개미 같았다. 작고 검은 물체들이 정해진 시간마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나는 소외되었고 그들은 타자화되었다. 너무나도 쾌적한 복층 오피스텔이었으나, 계속 살다 보면 미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말죽거리를 떠나 해방촌으로 왔다. 아파트가 아닌 마을을 찾아서. 따로따로가 아니라 모여 살고 싶었다.
외국인들이 “HBC”라고 부르는 해방촌 거리 신흥로는 도로폭이 좁다. 차 두 대가 겨우 지날 수 있으며 인도가 없는 곳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양쪽 가게들이 가까이 마주 보며 옹기종기 모여 있다. 고도 제한 덕분에 3층 넘는 건물이 없다. 남산 타워가 보이는 이 길을 걸으면 마치 런웨이 같다. 마을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하루에도 몇번씩 인사를 하게 된다. 덜 개발되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강남은 사람이 아닌 자본을 위해 설계되었다. 난민들이 어설프게 만든 해방촌은 아직 사람의 눈높이에 맞춰져 있다. 나는 이곳마저 부서지면 서울에서 더 이상 숨쉴 곳이 없을 것 같다.
젠트리피케이션을 막으려면 마을 주민의 화합이 중요하다. 이번주 광복절을 맞아 해방촌 마을축제 ‘HBC해방위크’가 열린다. 수요일부터 일요일까지 풍물놀이, 경로당 잔치, 라이브 공연, 디제잉, 퀴어 해방 쇼, 장기자랑, 언어교환, 플리마켓 ‘해방장’까지 다채로운 주민 주도 행사가 이어진다. 금요일 오후 1시에는 용산2가동 주민자치센터에서 ‘해방촌에서 안 쫓겨나고 오래 살아남는 방법'이라는 주제로 로컬 포럼이 열린다. 주민과 상인, 전문가가 머리를 맞대고 상생의 길을 꾀한다.
축제를 통해 해방마을 사람들이 하나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짜 신통한 “신속통합”이 아닐까? 내가 사랑하는 이곳에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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