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이 칼럼] 의료전달체계 확립이 중요한 이유

이상이 제주대 의과대학 교수 2024. 8. 15.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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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이 제주대 의과대학 교수

의료전달체계는 국민이 건강·질병 문제가 발생했을 때 동네의원부터 상급종합병원에 이르기까지 의료서비스를 단계적으로 이용하도록 관련 절차를 제도화한 것을 말한다. 이게 잘 갖추어진 나라일수록 의료 이용의 효율성과 만족도뿐만 아니라 제도의 지속가능성도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선진국에서는 중앙정부와 광역 지자체가 이런 체계를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여기서 벗어나려는 원심력을 최대한 제도적으로 제어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의료전달체계의 확립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의료전달체계가 매우 부실하다. 형식적으로는 존재하지만 실제로는 잘 작동하지 않고 있다. 동네의원을 이용한 환자가 상급종합병원을 방문하려면 진료의뢰서를 발급받아 제출해야 한다는 것 정도가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고 있는 의료전달체계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부와 의료계 모두가 지난 수십 년 동안 의료전달체계 확립을 거론해 왔지만, 진전된 사항은 거의 없다.

최근 20여 년에 걸쳐 병원 치료 중심의 의학 기술이 고도로 발전하면서 국민 의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게 높아졌다. 이는 입원뿐만 아니라 외래에서도 뚜렷했다. 동네의원 입장에서 대형 병원의 입원 비중이 높아진 것은 어찌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대형 병원의 외래 비중이 커진 것은 동네의원으로 가던 환자들이 대형 병원의 외래로 몰리는 것을 의미하므로 심각한 문제로 이해되지 않을 수 없다.

대형 병원 외래 환자 집중으로 상대적 비중 축소의 길을 걷던 동네의원들은 큰 목소리로 의료전달체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동안 정부도 이 주장에 힘을 보탰다. 그래서 경증 질환자는 동네의원을 이용하는 것이 대형 병원 외래 방문보다 본인 부담에서 경제적으로 유리하도록 건강보험제도를 설계했다. 지금까지 정부와 의료계는 이런 식의 임기응변으로 의료전달체계의 명맥을 유지했다. 하지만 이는 문제의 본질을 오해하거나 의도적으로 얼버무린 미봉책에 불과하다.

의료법 제3조에 따르면 병원급 의료기관은 주로 입원 환자를, 의원급 의료기관은 주로 외래 환자를 진료하는 곳으로 정의되어 있다. 이는 대형 병원과 동네의원이 각각 입원과 외래 진료를 모두 행할 수 있다는 뜻이고,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다. 입원의 경우는 동네의원이 대형 병원의 경쟁자가 되기 어렵다는 현실 때문에 일찌감치 정리가 된 형국이다. 의료법의 취지에 따르면 대형 병원은 입원에 집중해야 하므로 외래는 당일 수술이나 입원 환자의 퇴원 후 최소한의 사후 관리 등으로 국한하는 게 옳다. 선진국 모두 그렇게 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예외적으로 대형 병원의 외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30여 년 전부터 우리나라의 병원 업계는 규모와 기술이 고도화된 대형 병원 중심으로 재편되기 시작했고, 입원 환자들이 여기로 집중되면서 동네의원들은 입원실 운영을 포기해야 했다. 이후 외래 환자를 놓고 병원과 의원 간에 무한 경쟁이 펼쳐졌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외래마저 병원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의료계의 위기가 커지면서 의료전달체계를 주장하는 동네의원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외래 진료는 동네의원에서 받도록 관련 제도를 강화하거나 각종 지원을 늘려달라는 것이었다.

높은 수준의 의료 기술이 필요한 환자들을 치료하는 값비싼 대형 병원을 경증 질환자들이 이용하는 것은 효과성과 효율성이 떨어진다. 그럼에도 지금까지의 방식대로라면 외래 환자를 둘러싼 무한 경쟁에서 동네의원이 대형 병원을 이기기는 어려울 것인데, 이는 의료계의 패착일 뿐만 아니라 의료전달체계의 부실로 인해 의료서비스의 질·효과·효율·만족도 저하가 고착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해서 한국 의료는 지속할 수 없는 곳으로 내몰리고 있다.

의료법 제3조의 취지에 따라 병원급 의료기관은 주로 입원 환자를, 의원급 의료기관은 주로 외래 환자를 진료하면 된다. 이게 의료전달체계의 확립이다. 그런데 이게 되지 않는 이유, 그러니까 환자가 대형 병원을 선호하는 진짜 이유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의료계와 정부가 의료전달체계 강화를 위해 사용한 방식은 환자가 대형 병원 외래에 가지 못하도록 재정적 장벽을 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는 부수적인 처방일 뿐이다. 본질적 처방은 동네의원의 역할 재설정을 통해 주민과 환자들이 동네의원을 압도적으로 선호하게끔 만드는 것이다.


아파서 찾아오는 환자를 진료하는 데만 머문다는 측면에서 동네의원은 본질적으로 병원 외래와 다른 게 없다. 이런 상황이라면 많은 경우, 본인 부담을 더 하더라도 대형 병원을 선택하게 된다. 동네의원이 치료 서비스로 대형 병원의 외래와 경쟁하는 것은 옳지 않다. 스스로 의료전달체계 확립을 저해하는 단견이기 때문이다. 진짜 해법은 동네의원의 역할 확대를 통해 의료서비스의 목적을 병원의 외래와 달리함으로써 질적·내용적 우월성을 확보하는 것인데, 바로 동네의원이 건강주치의 제도를 통해 질병의 치료뿐만 아니라 예방과 건강증진까지 포함하는 포괄적·지속적이고 책임성 강한 지역사회 일차의료기관으로 우뚝 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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