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독트린' 내놓은 尹…北 주민까지 포용 '액션 플랜' 가동
'적대적 두 국가론' 맞서 새 통일 패러다임 구축
(서울=뉴스1) 정지형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자유민주주의에 기반한 통일을 이룩하기 위한 구체적 실행 계획(action plan)이 담긴 '8·15 통일 독트린'을 내놨다.
북한이 '적대적 두 국가론'을 내세우며 등을 돌린 상황에서 정부가 북한 주민을 직접 포용하며 통일에 관한 주도권을 가져가겠다는 의지가 반영됐다는 평가다.
◇이상론에서 현실론으로
윤 대통령이 이날 제79회 광복절 경축식을 계기로 발표한 통일 독트린은 1994년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계승하되 변화된 시대 상황에 맞게 보완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구소련이 붕괴한 뒤 자유민주주의 진영이 승리했다는 도취감 속에 만들어진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에는 통일을 위한 실행 계획이 담기지 않았다는 게 대통령실 설명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발표한 연설에서도 "자유민주주의를 추구한다"는 언급이 있긴 했지만 한반도에 자유를 어떻게 확산시킬 것인지에 관한 방안은 부재한 이상적 모델에 가까웠다.
30년 전에 나온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은 화해·협력→남북연합→통일국가로 이어지는 3단계 통일이 골자다.
윤 대통령이 제시한 통일 독트린에 3대 통일 비전, 3대 통일 추진 전략과 함께 7대 통일 추진 방안을 담은 것은 통일을 단순히 이상으로만 볼 게 아니라 당장 실현해야 하는 목표로 보겠다는 취지에서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1단계조차 시작하지 못한 현실에서 7가지 방안 중 최소한 5가지 방안은 지금 정부가 2년 동안 실천해 왔고 앞으로도 강화할 것이라는 확신을 담고 있다"고 했다.
남북 당국 간 대화협의체 설치나 북한 주민을 위한 인도적 지원은 북한 정권 호응이 필요하지만 북한 주민 정보접근권 확대, 북한 인권 개선, 국제 한반도 포럼 창설 등은 윤 대통령이 주도할 수 있다.
'독트린'(doctrine)이라는 명칭이 최종적으로 붙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부는 지난 2월부터 30년 만에 통일방안을 새로 업그레이드하는 작업을 추진하면서 '새 통일 담론'이라는 표현을 내부적으로 쓴 것으로 전해졌다.
구상·정책·방안 등 여러 용어를 두고 내용이 아닌 명칭을 둘러싼 혼란이 가중되면서 가장 큰 추상적 범위인 담론을 사용해 왔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뉴스1 통화에서 "행동 원칙과 목표가 명확하게 정해진 정책을 독트린이라고 한다"며 "이번에 통일에 관한 대한민국 정부의 원칙과 행동 방향, 정책이 제시됐으니 최종적으로 독트린이라고 명명한 것"이라고 했다.
◇"북한 정권 선의만 바라보지 않겠다"
북한이 대남 절연(絕緣)에 나선 대목도 윤 대통령이 통일 독트린을 구상한 배경으로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은 지난해 말부터 남북관계를 '적대적 교전국'으로 규정할 뿐 아니라 헌법에서 '통일'을 지우고 '두 국가론'을 내세우며 남한과 모든 관계를 끊었다. 핵·미사일 실험과 무력 도발, 오물풍선 살포 등 각종 대남 위협에서 나아가 통일이라는 남북 공통의 목표마저 폐기했다.
지금처럼 남북 간 합의가 필요한 화해·협력이 불가능해진 상황에서는 대한민국 정부가 독자적으로 통일을 위해 움직여야 할 필요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이제는 북한 정권의 선의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선제적으로 실천하고 이끌어 나갈 행동 계획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이 경축사에서 "북한 동포 여러분"이라고 청자를 확대한 것도 직접 북한 주민을 대상으로 자유를 향한 열망을 일깨우겠다는 뜻으로 풀이됐다.
◇남북대화 문은 계속 '활짝'
다만 대통령실은 적대적 두 국가론에 대응해 마찬가지로 북한 정권을 더 이상 상대하지 않겠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윤 대통령도 "남북대화 문은 활짝 열어놓겠다"며 "남북 당국자 간 실무 차원의 '대화협의체' 설치를 제안한다"고 했다.
북한이 응하기만 하면 대화협의체에서 2년 전 담대한 구상에서 밝힌 비핵화 문제를 포함해 경제협력, 인적 왕래, 문화 교류, 이산가족, 인도적 현안 등 어떤 것도 다룰 수 있다는 설명이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현재로서 북한이 언제, 어떻게 나올지 낙관적으로 기대할 수는 없다"며 "깜짝 이벤트식으로 내용이 뭔지 모르고 갑자기 남북 정상이 만나 악수하는 장면은 남북관계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전임 문재인 정부가 남북 화해 분위기 속에서 잇달아 남북 정상회담을 했지만 결과적으로 빈손에 그친 실책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또 다른 대통령실 관계자는 통화에서 "북한 정권에서 당장 반응이 없다고 해도 언젠가 원한다면 우리에게 다가올 수 있다는 메시지"라고 말했다.
kingkong@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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