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회 기념식 축사서 “대통령직 물러나십시오”…정권퇴진 투쟁 변질된 광복절
광복회 ‘정치인 오지말라’ 공지에도…야당 100여명 참석
광복회 보도자료로 ‘정쟁 수단 방지 조치’ 설명
박찬대, 조국, 용혜인 등 야당 인사 100여명 참석
광복회 “사전에 ‘불가’ 알렸지만 현장 통제 불가”
정부 공식 광복절 행사에 불참한 광복회가 독자적으로 개최한 기념식 축사에 나선 광복회 인사가 윤석열 대통령 퇴진을 주장하는 등 광복회 주최 기념사가 정쟁의 장으로 변질됐다.
15일 이종찬 광복회장에 이어 축사에 나선 김갑년 광복회 독립영웅아카데미 단장은 윤석열 대통령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는 "대통령은 건국절 논란에 먹고 살기 힘든 국민에게 무슨 도움 되냐고 했다. 이것도 똑같이 되묻겠다. 누가 건국절 논쟁을 야기시켰느냐"면서 "지금까지 친일 편향의 국정 기조를 내려놓고 국민을 위해 옳은 길을 선택해달라. 그것이 후손들과 국민 모두가 사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럴 생각이 없다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십시오"라고 목청을 높였다.
김 단장은 "광복절 기념식마저도 이렇게 쪼개져 찢어지고 흩어져 거행되고 있다. 대통령은 그 책임을 광복회와 국민에게 전가하고 있다"면서 "누가 이배용(국가교육위원장)을, 누가 김광동(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장)을, 누가 이진숙(방송통신위원장)을, 누가 김낙년(한국학중앙연구원장)을, 누가 김형석(독립기념관장)을 임명했나"라고 꼬집었다. 축사 도중에 일부 참석자들이 "윤석열 퇴진"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이종찬 회장도 기념사에서 최근 윤 대통령의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임명을 비롯한 친일 논란에 대한 비판에 가세했다. 그는 광복절 기념사 머리말에서 "최근 진실에 대한 왜곡과 친일사관에 물든 저열한 역사인식이 판치며 우리 사회를 혼란에 빠트리고 있다. 독립운동가들의 후손이 모여 독립정신을 선양하고자 하는 광복회는 결코 이 역사적 퇴행과 훼손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라고 밝혔다.
이어 "한 나라의 역사의식과 정체성이 흔들리면 국가의 기조가 흔들린다. 최근 왜곡된 역사관이 버젓이 활개 치며, 역사를 허투루 재단하는 인사들이 역사를 다루고 교육하는 자리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준엄하게 경고한다. 피로 쓰인 역사를 혀로 논하는 역사로 덮을 수는 없다. 자주독립을 위한 선열들의 투쟁과 헌신 그리고 그 자랑스러운 성과를 폄훼하는 일은 국민들이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번영의 근간을 왜곡하는 일에는 반드시 단죄가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건국절 논란을 두고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건국절인가. 건국절을 만들면 얻는 것은 단 하나, 이승만 초대 대통령에게 ‘건국의 아버지’라는 면류관을 씌어주는 일"이라고 밝혔다. 이어 "하지만 우리는 실로 많은 것들을 잃게 된다. 바로 일제강점을 합법화하게 되고, 독립운동의 역사를 송두리째 부정하게 된다. 나라가 없었다 한다면, 일제의 강점을 규탄할 수도 없고 침략을 물리치는 투쟁도 모두 무의미하고 허망한 일이 되고 만다. 무엇보다도, 일제 강점에 대한 책임을 묻고 일본에 대해 역사를 올바로 기록하라는 우리의 요구가 힘을 잃게 된다."
한편 광복회가 독자적으로 개최한 기념식에 정치인은 받지 않겠다고 공지했음에도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 인사 100여명이 참석했다.
광복회는 15일 오전 10시 서울 용산구 백범기념관에서 제79주년 광복절 기념식을 별도로 열었다. 광복회는 행사 시작을 1시간여 앞둔 오전 8시44분 긴급 보도자료를 통해 "기념식은 광복회원과 초청받은 독립운동단체 회원들만 대상으로 개최되는 것이므로 정당, 정치권 인사 및 일반 시민단체, 초청받지 않은 시민들은 참여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자칫 이 행사가 정치적 행사로 변질되어 정쟁의 수단이 되는 것과 시민들 간 시위로 인한 충돌을 우려해 사전 방지하기 위한 조치"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실제로는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 조국 조국현신당 대표, 용혜인 기본소득당 대표 등 야당 인사 100여명이 참석했다. 광복회 관계자는 "정치인 참석이 불가하다고 전화 연락이나 언론 보도를 통해 사전에 알렸다"며 "당일 현장에 많은 참석자들이 엉켜 통제할 수 없었고, 참석 의원을 일일이 파악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고 말했다.
광복회는 전날 오후에도 보도자료를 통해 기념식에 "정당·정치권 인사를 일절 초청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이를 두고 일부 의원들은 광복회가 별도 초청을 하지 않을 뿐 참석 자체를 막지는 않겠다는 입장이라고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독립운동가 후손 단체인 광복회는 ‘뉴라이트’ 논란에 휩싸인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사퇴를 요구하며 정부가 주최한 공식 경축식에 참석하지 않고 자체 행사를 열었다. 광복회가 정부와 별도로 광복절 행사를 개최한 건 처음이다.
정충신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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