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난장] 부산에서 문학을 한다는 것의 의미
부산 지역성 특화된 시도 외에 안정적인 창작 환경 구축해야
김요아킴 시인·부산 경원고 교사·부산작가회의 회장
부산에서 발간되는 시 전문 문예지 ‘신생’이 이번 가을호로 통권 100호를 맞이한다. 그 기념 특집으로 ‘지역 문예잡지의 발간과 전망’이라는 주제의 간담회에 대담자로 참석한 적이 있는데, 부산이라는 지역의 문학적 의미와 그 위상을 새로이 살펴볼 수 있는 유의미한 기회가 되었다.
지난 우리 사회는 근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자본의 논리에 의해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과 그 외의 지역은 지방으로 분리되고 소외되면서, 점점 격차가 커지는 양극화 현상을 겪어온 것이 사실이다. 흔히 중심은 끊임없이 주변을 흡수하려는 관성의 힘이 작용하는 것에 반해 주변은 이에 편입되지 않으려고 하는, 어쩌면 이러한 팽팽한 긴장감이 사회를 보다 건강하게 발전시킬 수 있는 요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면이 결국 서울이라는 중심에 쏠리고 말았다.
문학도 예외가 아니다. 우선 작가들 공동의 이익과 문학적 가치를 실현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문학단체에 대한 정부 지원과 혜택에서 각 지역은 서울을 중심으로 한 단체에 비해 상당히 적고 불리한 상황이다. 단체에 소속된 회원의 숫자에 따라 차등 지원한다는 행정 논리로 보면 대부분 작가가 수도권에 몰려있는 상황을 고려해 볼 때 틀린 말은 아니지만, 문학을 단순히 계량적 잣대로 접근한다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일인지는 재고(再考)해봐야 할 부분이다. 게다가 창작 출판 등 문학 관련 분야에 지원하는 다양한 프로그램과 사업 규모가 각 지역의 문화재단보다도 훨씬 크고 막대하기에 중앙과 지역은 늘 주종(主從)의 관계로 성립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한 거대 자본을 가진 출판사뿐만 아니라 작품 발표의 통로가 되는 문예지 또한 거의가 서울에 위치해 있기에 타 지역의 작가는 창작 능력과는 별개로, 중앙에 대한 동경과 열등감이 상호 교차하면서 자조적 행태를 보일 수밖에 없다. 아무리 뛰어난 역량을 가진 지역의 작가라도 중앙이 주도하는 문학적 트렌드와 상업적 마케팅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결국 그 지역의 한계에 부딪쳐 사장되고 마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 같이 불균형적인 상황에 대한 자성(自省)의 차원에서 지역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우리가 사는 모든 곳은 다 지역이다. 여기서 지역은 서울 중심에 대한 주변의 의미가 아니라 자기중심을 가진 개념으로 봐야 할 것이다. 그러기에 지역은 상대적이고 다층적인 의미로 파악돼야 하며 부산이 지역인 것처럼 서울도 똑같은 지역이기에, 동등한 층위로서 각 지역이 가지는 고유한 문화적 특성과 구체성을 살려내 새로운 지역문학의 의미를 구축하려는 시도가 꾸준히 이어져왔다. 결국 오늘날 탈근대의 시대에 따른 탈중심주의, 즉 중심의 해체를 통한 다양한 변주의 양상들이 앞으로의 지역문학을 바람직하게 계승할 주요 인자(因子)가 아닌가 한다.
그런 면에서 부산도 부산만이 가지는 독특한 지역성에 뿌리를 둔 문학이 지속적으로 양산되어야 함은 주지의 사실이다. 부산은 신문물이 유입되는 개항의 전초기지이자 한국전쟁에서의 마지막 피란지이며, 근대 산업화와 부마항쟁으로 대변되는 민주화의 상징으로 남다른 사회역사적 의미를 지닌 도시다. 따라서 이를 바탕으로 한 작가의 경험과 사유를 질적으로 확장시키고, 지역 공동체로서의 정체성을 담보하는 작업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또 금정산과 낙동강, 태평양으로 이어지는 부산의 지리 생태적 개념의 문학적 서사가 장소성을 통해 발현되면서 지역성을 중층적으로 심화시켜나가야 할 것이다.
하지만 문학에 대한 관심이 점점 감소하는 추세에다 가뜩이나 열악한 부산시와 문화재단의 재정적 지원이 현 정부 들어 줄어드는 상황에서 부산의 작가들이 마음 놓고 창작활동에 매진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지역의 문학이 살기 위해서는 결국 지역의 작가가 안정적으로 글을 쓸 수 있는 환경이 구축되어야 하고, 독자와 연계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풍성한 시민 독서문화가 형성될 수 있는 체계가 구조적으로 마련돼야 한다. 특히나 올해 부산작가회의 회장을 맡으면서 더욱 이러한 부분이 피부에 와 닿는다. 문학은 세속적 차원을 넘어 현실에 대해 어떤 가치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함께 고민하는 장을 펼치는 실천적 행위이기 때문이다.
다가올 9월엔, 부산의 문학매체인 생명-생태주의를 지향하며 1999년 창간된 ‘신생’ 100호가, 그리고 모더니즘-현대성을 추구하며 창간된 ‘시와 사상’이 30주년을 맞이한다. 아울러 국내 유일의 비평 계간지이자 지금까지 꾸준히 발간되고 있는‘오늘의 문예비평’과 소설 전문지 ‘좋은 소설’이 부산의 지역성을 담보하며 여전히 지역문학의 마지막 보루로 우리 곁을 지키고 있기에, 그나마 마음 든든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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