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자유 통일” 외친 윤 대통령, ‘적대국 남북’ 해소가 먼저다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제79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광복은 자유를 향한 투쟁의 결실”이라며 “한반도 전체에 자유 민주 통일 국가가 만들어지는 그날 비로소 완전한 광복이 실현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8·15 통일 독트린’이라고 이름 붙인 통일 방안을 발표했다. 대한민국 역사의 근본 가치인 자유를 북한으로 확장해 통일을 이루겠다는 윤석열식 구상이다. 하지만 남한 내 공론화 작업이 없었고, 파탄난 남북관계 회복을 위한 실질적 조치도 없는 통일 구상에 북한이 화답할지는 회의적이다.
광복절은 일본의 식민지배에서 벗어난 것을 기념하는 행사다. 그러나 윤 대통령 연설에서 독립운동가에 대한 헌사도, 일본의 그릇된 과거사 인식이나 굴욕외교에 대한 언급과 성찰은 없었다. 대신 ‘자유 통일’을 전면에 내세우고 통일을 위한 3대 비전, 3대 추진 전략, 7대 추진 방안을 밝혔다. 핵심 내용은 국내에서 자유에 대한 가치관 강화, 북한 주민의 자유 통일 열망을 촉진하기 위한 정보접근권 확대, 국제적 지지 확보를 위한 국제한반도포럼 설립이다. 정부의 공식 통일 방안은 1994년 발표된 ‘민족공동체 통일 방안’이다. 대통령실은 그동안 변화한 남북관계와 국제질서를 반영해 보완했다지만, 윤석열 정부가 핵심 가치로 삼는 자유주의를 입힌 것에 다름 아니다.
통일 구상에 동력이 생기려면 우리 내부부터 의견을 모아야 한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이날도 통합이 아니라 분열의 언어만 쏟아냈다. 자신을 비판하는 야당 등을 향해 “가짜 뉴스에 기반한 허위 선동과 사이비 논리” “검은 선동세력”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 입장과 다르면 “반자유·반통일 세력”이라고 낙인찍었다. 내 편 네 편으로 갈라 국론만 분열시키는 통일론에 무슨 힘이 생기겠는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남북관계를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하고, ‘통일’을 공식 폐기했다. 그렇다면 통일 구상은 북한의 실체를 인정하고 분단 극복을 위한 현실적 방향, 북한이 관심을 가질 의제와 메시지를 담았어야 했다. 그와 달리 윤 대통령은 북한 체제 붕괴를 전제하고, 남한 주도의 흡수 통일을 노골화했다. 북한 정권의 변화를 기대할 수 없으니 당국과 주민을 분리해서 접근하겠다는 발상도 비현실적이다. 그래놓고 남북 간 대화협의체를 제안했는데, 북한이 응하겠는가. 북한 주민의 정보접근권 확대를 구실로 대북전단을 방치하고 대북확성기를 계속 틀겠다는 건지 우려스럽다. 이런 식이면 윤 대통령의 통일 구상은 독백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 이명박 정부 ‘통일 항아리’, 박근혜 정부 ‘통일 대박론’도 말만 거창했지 국내 동의를 얻지 못하고 남북 대결로 일관하다 사라진 걸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현재 남북관계는 군사적 대치 수위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 남북이 서로 말을 붙일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당장 해야 할 일은 따로 있다. 한반도에서 무력 충돌이 일어나지 않도록 정세를 관리하고, 대화의 모멘텀을 만드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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