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에서 솟은 무지개다리 건너간 학수 형, 이젠 편안하겠지

한겨레 2024. 8. 15.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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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신이의 발자취] 3일 별세한 안학수 시인을 추모하며
고인(왼쪽)과 필자 박남준 시인. 필자 제공

산이라면 산책처럼 편안한 앞산 뒷산 옆산이었다. 시인 안학수, 등 기대어 먼 하늘을 바라보는 평화로운 나무였으며 그 나무들이 별빛을 내거는 따뜻한 언덕이었고 화가 중섭의 벌거숭이 아이들이 뛰노는 뻘밭 같은 놀이터가 되어주고는 했다.

아동! 아동~. 우리(박남준, 유용주, 한창훈, 이정록 등 고인과 친하게 지냈던 문단 후배들)는 키 작은 형을 그렇게 놀려대듯 불렀다. 버릇없는 우리의 호칭에도 형은 언제나 아이처럼 깔깔거리며 웃음을 잃지 않았다. 저거 봐. 저거 봐. 글쎄 저렇게 웃는 것 좀 봐. 지난 8월3일 시인 안학수(1954~2024) 형이 “언젠가는 나도 조금은 빛나는 존재가 되지 않을까?” 소원하던 말처럼 별이 되어 무지개 다리를 건너갔다. 내 마음속에 아름다운 아동, 안학수 형이 아주아주 작고 가벼워져서 꽃 배를 타고 떠나갔다.

안학수 시인은 어릴 적 사고로 척추에 장애를 가지고 살며 겪었을 고통스럽고 끔찍한 좌절과 절망을 딛고 일어나 세상의 바닷가 갯벌에 숨어 사는 작고 눈여겨 보지 않는 것들을 맑고 아름다운 언어로 캐서 씻기고 빚어 싱싱하고 맛있는 동시의 밥상을 차려놓은 시인이다.

‘내가 시마에 빠진 취기로 비틀거리던 젊은 날 언젠가 잡범들에게 끌려갔다. 지갑에 들어 있던 돈 2만원 꺼내며 어~ 카드도 있네. 비밀번호를 대라고 한다. 수치심을 일으키도록 손바닥으로 내 얼굴을 확 쓸어내린다거나 나를 때리지도 욕도 하지 않았다. 그게 고맙고 돈이 조금밖에 없어서 미안했다. “죄송해요.” 손가락에 끼고 있던 반지를 빼서 건넸다.

그 금반지, 당신 칠순잔치를 하는데 형제간들이 모두 50만원씩 내서 준비한다. 그런데 너는 가난한 시인이니 20만원 깎아주겠다는 어머니의 전화, 얼굴이 화끈거렸다. 못난 자존심이 상했다. 돈 만원이 아쉬울 무명 시인일 때였다. 염치불구하고 꽃집 하는 분을 찾아갔다. 저 돈 좀 빌려주세요. 그러고 보니 그 50만원 여지껏 그냥 떼먹고 갚지 않았다.

쭈삣쭈뼛 칠순잔치의 문을 열고 들어섰다. 어머니께서 니들이 보낸 돈으로 사위들은 넥타이 핀을, 며느리들에겐 실반지를 해줬다. 그런데 너는 사위도 아니고 며느리도 없지만 술 좋아하니까 술집에 가서 돈 없을 때 봉변당하지 말고 비상금으로 이거 녹여 가지고 반지를 해서 끼어라. 그 반지, 아무튼 비상금으로 썼다.’

언제였더라. 서산 청년문학회 초청으로 강연갔을 때 그 반지 이야기를 했다. (물론 그 사건이 일어나고 얼마 후 전혀 생각지도 않게 출판사에서 산문집 계약금을 받았으며 전주시 예술가상 수상으로 그분들이 카드에서 슬쩍 빼간 액수의 두 배는 넘게 보상을 받았다. 그러니 긍정적인 사고를 하라는 취지의 강연 내용이었다.) 뒤쪽 중간쯤 누가 손을 든다. “그 반지 끼었던 손가락 만져봐도 될까요?” 그 사람이 걸어 나올 때 보았다. 아, 등에 산을 지고 다니시는 분이구나.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지만 다른 사람의 못된 발길질로 다쳐서 척추장애를 갖게 된 것이었다.

10여일쯤 되었나. 소포가 왔다. 뭘까. 누가 보냈을까. 소포 속에는 서산 강연에서 내가 말했던 별 모양이 새겨진 금반지가 들어 있었다. 가슴이 쿵쾅거리며 울컥거렸다. 아 그분이구나. 보령에서 천보당이라는 금은방을 하던 시절의 안학수 시인과 그렇게 만났다.

“어찌 그리도/ 주름 잡았니?/ 다리미도 없이/ 두꺼운 옷을.// 어찌 그리도/ 예삐 지었니?/ 재봉틀도 없이/ 고운 무늬로.// 모래밭에 뿌려진/ 더운 햇살에/ 솜씨 좋은 파도가/ 다려 주었지.// 밤마다 떨어진/ 별똥별 모아/ 바늘성게 불러서/ 누벼 입었지.”(안학수 시 ‘조가비’ 전문)

학수 형의 첫 동시집 ‘박하사탕 한 봉지’를 펼쳤다. 조개껍질의 주름이 툭 튀어나왔다. 언젠가 술이 잔뜩 취해 옆에 누워 있는 학수 형 굽은 등을 만지며 형 내가 꼬막 같이 주름진 조개 말고 백합처럼 반질반질 반듯하게 다림질 해줄까 하며 짓궂은 장난을 치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형은 깔깔거리며 그래 그래 어디 한번 다려보라며 천진하게 대꾸를 하기도 했다.

몇 번이나 죽음을 떠올렸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고 보니 닮았다. “밀릉슬릉 주름진 건/ 파도가 쓸고 간 발자국,/ 꼬물꼬물 줄을 푼 건/ 고둥이 놀다 간 발자국”. 의태어의 생동감이 꿈틀거리는 뛰어난 작품 ‘개펄마당’(안학수 시)을 건너는 느릿느릿 비단 고둥이. “개펄에서 캐낸 비단 자개/ 등딱지에 담아 지고// 비단 무지개를 띄우겠다고/ 길 없는 길로 구불꼬불/ 마냥 가는 꼬마 고둥이다”. 학수 형이 바로 비단고둥이다. 무지개를 보며 내걸며 우리는 참 많이도 늙어갔다. 그 무지개를 띄우던 안학수 형이 아름답고 슬픈 자전적 성장소설 ‘하늘까지 75센티’와 동시집을 남기고 떠나갔다. “아름다움이란 다시 만날 수 없는 사람을 그리워하는 마음…”이라고 형이 그랬지. 그래 이제 형과 내게는 아름다움밖에 남지 않았네.

떠나는 마지막에도 눕지 못하고 기도하듯 엎드려 가셨다지요. 늘 내게 노래를 청하던 가곡 ‘비가’, 장례식장에서 기타를 치며 불렀는데 살아서 귀는 밝았으니 잘 들렸지요?

작은 언덕 같은 형의 등에서 솟아난 무지개 다리를 건너 간 학수 형, 이제 편안하겠지. 71살, 멀고 오랜 기지개를 켜고 네 활개를 쭉 펴며 자유롭겠지. 지장골 동산 철쭉꽃 환한 하늘에 있을 거라고? 그래, 꽃 피는 어느 날 찾아갈게.

박남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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