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목 칼럼] 가사도우미 서비스 획기적 개선이 저출산 해법이다
필리핀 가사도우미(가사관리사) 100명이 8월초 입국했다. 서울시와 고용노동부가 추진하는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에 참여하러 온 것이다. 서울에 거주하는 가구 가운데 12세 이하 자녀가 있거나 출산 예정인 가구가 이들을 고용 신청할 수 있다. 하루 4시간 이용에 월 119만원가량 월급을 지불하는 조건이다.
우리나라가 지금 직면한 가장 큰 난제는 저출산이다. 가임여성 1명당 출산율은 OECD 국가중 단연 꼴찌인 0.72명이다. 현재의 인구 규모를 유지하기 위해 요구되는 출산율인 2.1명에 크게 미치지 못하고 있다. 평균 초혼 연령도 2022년 기준 남성 34세, 여성 31.5세로 점점 늦어지고 있다.
고령화 사회에서 출산율이 가장 낮다는 말은 곧 그 국가가 가장 빈곤해진다는 뜻이다. 경제활동 세대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급속히 낮아지기에 각종 사회적 비용을 감당할 수 없게 된다. 소비시장 위축, 노동력 감소, 재정 악화, 연금 조기 고갈, 지방대 폐교 등 우리 사회 곳곳에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대대로 정부의 대응은 한발 늦었다. 1980년대 초부터 인구 감소 징후가 느껴지기 시작했으나 1996년이 돼서야 산아제한 정책을 폐기했다. 2006년부터 2024년까지 저출산 대응을 위해 네 차례에 걸쳐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막대한 예산을 투입했음에도 저출산이 해소되기는커녕 더 심각한 수준으로 악화됐다.
다급해진 윤석열 정부는 지난 6월 '인구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하고 인구전략기획부 신설을 발표하는 등 저출산에 대한 범국가적 총력 대응 체계에 돌입했다. 그동안 집행되온 예산 대부분은 일반적 주거 및 고용 등 결혼과 출산 결정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요소에 쓰였다. 그리고 정부가 청년들에게 출산을 직접 권하는 시각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출산하면 OO을 지원한다'는 식의 '출산 권고적' 정책과 평가 방식의 효과는 한계가 있다. 보다 근본적으로 젊은 세대 스스로 '출산해도 차별받지 않고 직장생활을 할 수 있다', '이젠 여건상 출산해도 되겠다'는 확신을 느끼도록 환경을 조성해주어야 한다.
이런 확신이 들기 위해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는 젊은 여성이 사회적 활동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가사 부담에서 해방시켜주는 것이다. 2030이 집을 사려면 맞벌이가 불가피한데 여성은 가사 부담이 따르는 마당에 출산을 할 여력이 없기에 저출산이 고착화되는 것이다.
50대 후반인 필자는 3040시절에 홍콩과 싱가폴에서 지내는 경험을 했었다. 그 당시에 크게 가사 부담을 느끼지 못했던 이유는 필리핀 가정부를 저렴한 가격에 고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달 100만원 이하의 싼 월급에 비교적 유능한 가사도우미를 24시간 고용할 수 있었기에 필자의 아내는 마음껏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두 아이를 키울 수 있었다.
홍콩 정부는 전략적으로 필리핀 정부와 가정부 임금 협상을 벌였고,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홍콩의 젊은 세대가 가정부를 고용할 수 있도록 표준화된 가정부 임금체계를 형성했다. 그 덕에 우리 가족도 표준화된 가정부 고용시스템의 혜택을 누리며 젊은 시절을 무난하게 보냈다. 싱가폴에서의 경험도 유사하다. 이런 국가 주도의 시스템이 없었더라면 당시 홍콩과 싱가폴의 젊은 세대의 출산율은 떨어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홍콩과 싱가폴에서 서울로 복귀할 때마다 너무 답답한 한국의 육아 환경과 가정부 고용 상황때문에 몇 배의 비용을 들이고도 항상 불안했었다. 월급을 몇백만원을 주고 명절때마다 봉투를 건네더라도 항상 불만의 목소리를 들었고, 항상 심적으로 불안한 상태에서 가사도우미 서비스를 받았다.
이런 환경에서라면 도저히 서울에서 아이를 낳아 키울 수 없음을 이해했었다. 결국 저출산 해법의 중심에는 가사도우미 서비스의 획기적 개선이 있었다. 만시지탄이지만 오늘에서야 정부가 그걸 깨닫고 겨우 100명의 필리핀 가사도우미 시범사업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정부 주도 정책에만 의존하던 기존의 저출산 대응방식에서 벗어나 기업이 인구위기 해결 주체로서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정부가 저출산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기업을 대상으로 세액 공제, 금리 인하, 입찰 시 우대 등 다양한 혜택을 제공할 수도 있다.
기업의 출산·육아 지원 제도 확대는 근무환경의 질을 높이고 우수인력을 영입할 수 있어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속가능한 경영에 도움이 된다는 인식 전환도 필요하다. 그래야 직장생활을 하면서 꺼리김 없이 출산하는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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